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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웃으시는 하나님

샤론의 수선화 2016. 6. 17. 14:54

 

샬롬! 찬미예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근엄하신 분이기보다 웃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꽃처럼 화사하고 꽃처럼 활짝 웃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본다.

예수님은 말에 대한 유희와 해학, 풍유와 조크를 설교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셨다.

유머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진리를 더 잘 깨닫고 삶 속에서 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구약에서도 수많은 풍자와 수수께끼, 속담 예화 등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웃음은 분명코 하나님의 선물이다.

"쾌활한 마음을 지닌 자의 인생은 끝없는 향연과 같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기독교인의 삶의 본질이야말로 진리, 자유, 기쁨, 환희, 축제, 영광, 은혜, 사랑, 감사, 웃음 등등이 아닐까?

기쁨, 즐거움이란 단어 속에 웃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는 말씀 속에서 과연 웃음을 배제할 수 있을까?

웃음이라는 말 대신에 '기쁨' '기뻐하라'는 말은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웃음이 얼굴 표정에서 묻어나는 외형적인 것이라면, 기쁨은 내면에서 넘쳐나는 것이다.

성경은 내면 깊숙이 들어 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참된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죄인에게나 의인에게나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이 영적 애통의 다음 단계는 영적인 기쁨이다.

회개로 인한 애통이 있은 후, 우리의 삶은 기쁨의 삶, 감격의 삶이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한 영적인 삶은 감사와 기쁨의 찬양으로 양식을 삼아 섬기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얼굴은 기쁨의 얼굴, 웃음 띤 얼굴, 감격의 얼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얼굴이 경건의 상징이요 고뇌하는 얼굴이 영적 은사의 표준처럼 여긴다.

그런 사람들은 엄중한 경계와 심각함으로 언제나 경직되고 율법적인 얼굴표정으로 신앙조차 고착화 될 수 있다.

거룩한 경건과 무게가 가득 실린 근엄한 얼굴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분명 기쁨과 웃음이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경박한 것이라고 한정짓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웃음은 최고의 화장법이다.

말하지 않아도 웃음은 수많은 친절의 언어를 거느리고 있다.

말을 건네도 마음과 얼굴에 웃음과 표정이 없으면 그의 불편한 심기가 내게 수많은 언어로 다가온다.

마귀야말로 웃지 않는다.

오히려 마귀는 사람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간다.

마귀에게는 유머가 없다.

그러나 성령님은 기쁨을 주신시고 유쾌함을 주신다.

성령님의 열매는 희락이다.

밥 호프는 "나는 시련의 순간마다 웃음의 능력을 보았다.

웃는 순간 모든 슬픔은 희망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늘도 주님의 아름다우신 성품을 닮아가기를 사모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 감사하라, 찬양하라, 축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생기 있는 모습으로 내 얼굴의 표정을 밝음으로 가꾸자.

살전 5:16-18절 말씀의 명령 앞에 환희와 축제의 삶을 누려야하는 것이 합당한 삶이 아니겠는가?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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