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들판에 피어 있는 하찮은 잡풀에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고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를 통찰할 수 있는 계절의 여왕 5월의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잡초가 만들어내는 작은 우주의 아름다움을 엿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름 모를 꽃을 피워내는 들꽃, 풀꽃을 보면 야생화라 부릅니다. 그러나 꽃이 없으면 잡초라 여기기 십상입니다.
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산으로 들로 신선초, 방풍, 땅 두룹, 돌미나리, 당귀를 뜯는 재미로 삽니다. 1년치 장아치를 종류별로 다 담아 놓고 나누어 먹고 싶어 자랑스러워합니다.
주님이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신 목사, 봄마다 너무 신나게 산으로 들로 나물 뜯으러 다니느라고 기도와 말씀과 예배는 소홀히 뒷전 아녀? 가을이 되면 봄의 계절 이상이나 너무 감성적으로 영성이 방출되는 것 아녀? 여름 육체의 계절에 믿음의 질량이 온전할 수 있겠어? 혹독한 겨울 칼바람 지나는 골목에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어찌 감당할 것인데?
이번 주에는 잡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잡초는 없다 - (전종채)
땅이 생명을 품어낼 땐 어찌 잡초가 있었으랴? 화초라고 칸나만 키우려드니 약초인 개똥쑥은 잡초가 되고 약초만 살리려드니 화초인 국화도 잡초가 된다. 어성 초만 키우려 들면 다른 약초인 삼백 초는 독초가 되고 꽃이 없어도, 땅을 기어도 똑같은 생명인 것을 뿌리까지 뽑아들고 잡초라 한다. 하늘이 해를 비추고 비를 내릴 적에 어찌 잡초로 보았으랴?
이해관계에 따라서 좋고 나쁘고 가 결정되는 사람 사는 세상 자연에선 생명 있는 것이 다 소중하다. 꽃을 달아도 생명이요, 땅을 기어도 생명이다.
윤구병 교수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는 책 '잡초는 없다'에는 이런 표현들이 있다.
뽑고 보니 '잡초'가 산더미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풀들이 예사 잡초가 아니었다. 하나는 별꽃나물이고 또 하나는 광대나물이었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개성 있는 한 인격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존재들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쓸데없는 잡초는 없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일 수 있고, 보리밭에 밀이나면 또한 잡초가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하고, 약초가 되기도 한다.
산삼도 원래 그 소중함의 가치를 몰랐을 땐 잡초였을 것이다. 자신의 목적과 맞지 않아 뽑아내고 제거하려 할 때는 잡초가 되기도 하고 독초가 되기도 하지만 그 존재 차체로서의 효능과 필요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로서 존재한다.
'잡초'라고 치부했던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잡초는 어쩌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존재감 없이 이 땅에서 겸손히 묵묵하게 살아가는 모든 민초들의 마음이 아닐까?
자신이 꼭 필요한 곳, 있어야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를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 그러나 아름답고 훌륭한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고 그것이 곧 잡초는 아니다. 잡초처럼 보일 뿐이다. 오히려 잡초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지만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한 삶이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혀 버려지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잡초들과 날마다 땡볕 속에서 싸워야 할 상황이 빚어졌던 것은 우리가 가꾸는 농작물들이 잡초와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잡초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거리라면 어떨까? 따로 가꾸지 않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약초나 나물의 일종이라면?
농작물 밭에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놓은 그 괘씸한 잡초들을 죄다 뽑아 던져 썩혀버린 뒤에야 그 풀들이 '잡초'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던 농심처럼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먹고 효소 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을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수고롭게 땀 흘려가며 뽑아서 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단다.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름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같은 인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잡초는 없다" 보리출판사 1998)
"당신들은 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온갖 영광을 누리던 솔로몬도 이 나리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는 못했습니다."(눅12:27~28) <박창환 역>
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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