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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언어의 신비

샤론의 수선화 2016. 3. 18. 20:55

 

샬롬! 찬미예수 

 

지난 주에는 언어 속에 녹아든 음식과 관련한 "먹는다"는 표현들에 대한 글을 썼었다.

이번 주에는 기왕 우리 민족의 언어의 우수성과 독특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 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글이 언어학적으로나 음성학적으로 가장 우수한 글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임에 틀림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어의 우수성을 여러 면에서 살필 수 있지만 영어와 단순 비교를 해보아도 대략 놀라운 차이점들이 있다.

한국어 문장은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순서를 마구 섞어버려도 의미가 똑같이 보존되는 것이다.

반면, 영어는 주어와 동사의 순서만 바꾸어도 평서문이 의문문으로 왜곡되어 버린다.

 

한국어의 어휘는 인간의 미묘한 감각차이마저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영어에는 노란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거의 "Yellow"밖에 없는 반면에, 한국어에는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등의 수많은 뉘앙스를 가진 노란색의 단어들이 존재한다.

 

우리 말에 올라갈 때, 내려갈 때를 합쳐서 오르내린다는 표현의 승강기라는 말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엘리베이터(Elevator)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내려올 때 계단으로 내려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지만 올라갈 때만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어차피 엘레베이트는 내려간다는 의미보다 올라간다는 의미에 속한다. 

물론 저들에게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가 있지만 그나마 승강기 개념인 엘레베이트에 이르지 못한다.

 

미국 사람들은 draw를 끄집어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빼닫이라고 한다. 밀고 닫는 것을 미닫이라고 하고, 열고 닫는 것을 여닫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나라 어디에도 있지 않은 한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어령 씨가 말한 대로 '엇비슷하다'라는 말이다.

비슷하면 비슷한 것이지 엇비슷하다는 말은 비논리적인 표현이다.

어긋나면 어긋나고 비슷하면 비슷한 것이지 어떻게 같이 존재하는가?

 

숫자와 관련하여 우리는 정(情)과 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리어카에 과일을 사고 팔 때를 보라.

과일을 살 때 정확한 개수를 말하지 않아도 두어 서너 개, 너 댓 개, 혹은 여 나무 개, 대여섯 개, 예닐곱 개 등등

어느 하나를 말하면 주인이 알아서 준다. 거기다가 덤으로 주거나 심지어는 뺏어가지고 오기도 한다.

서양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찌기 괴테는 "한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언어 속에 그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와 얼이 고스란히 담겨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세계화란 우리의 독특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차별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땅에 수많은 민족의 언어들이 존재하고 같은 민족들 중에도 방언이 존재하듯이

하늘에는 천사들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하늘 나라의 공통 언어는 히브리어일까, 헬라어일까, 아람어일까 아니면 각 나라의 난곳 방언일까?  

고린도 전서 13장 1절에서 바울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천사들의 고유한 하늘 언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성경의 언어는 하나님 계시의 말씀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영원한 언약의 말씀이다.

성경의 언어는 하나님 나라가 작동하는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언어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이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탁월함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한 일이며 인간의 복된 일임을 새삼 깨달아본다.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언어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먼저 우리의 언어의 소중함과

말씀으로 교통하시는 하나님과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생각해 본다.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