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사모님! 늘 주의 평강과 강건하심을 기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총체적인 본질이 무엇인가를 묵상합니다.
성경은 죽음을 존재가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재와 존재 사이의 분리, 단절, 떠남, 소외가 곧 죽음이라고 말한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죽음이 왔고,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죽음이라고 말한다.
죄도 마찬가지다. 죄를 윤리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율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죄 역시 관계적으로 말한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것,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곧 죄라고 말한다. 성경은 이처럼 죄와 죽음을 철저하게 관계론적 차원에서 본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지 않고 관계론적 차원에서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조차 지극히 세속적이고 비성경적인 관점에서의 죽음을 생각한다.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죽음의 현상들을 목격하며 이 땅의 그 어떤 사람도 결국은 다 죽음을 맞이하기에 죽음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고, 죽음은 창조질서의 일부분이며, 생명의 자연스런 순환이라고 생각을 한다. 심지어 의롭게 산 예수도 죽임을 당했고, 구원받았다는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기에 자연히 사람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죽지 않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지, 죽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에서조차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라고 증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성경에 의하면 죽음은 결코 창조질서의 일부분이 아니다. 자연의 순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태어나서 죽는 것을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죽음을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 육체적인 생명활동의 멈춤이 죽음의 전부라면 죽음을 자연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생명활동의 멈춤은 죽음의 본질도 아니고 죽음의 전부도 아니다. 죽음의 일부분이긴 하나 죽음의 전부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생명활동이 멈추는 것보다 훨씬 깊고 근원적이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다.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의 분리, 단절, 떠남, 소외가 죽음이다. 형제를 미워하고 외면하며 미움과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사는 것,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사는 것, 해로운 음식 파는 것, 스스로 교만하며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 전쟁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모짝 죽음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삶은 죽음을 사는 것이다. 설령 가족을 먹여 살린다 해도, 돈을 잘 번다해도, 사회적인 성공을 한다 해도, 첨단 지식에 밝다 해도 죄 속에서 사는 모든 삶은 오직 죽음을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죽은 자이고, 죽음을 사는 자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도 결국 이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더 이상 생명을 살지 못하고 죽음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죽음을 살아왔고, 지금도 죽음을 살고 있다. 죽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정지해 있는 명사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동사다.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억압하고 생명을 거스르는 모든 삶의 양상, 죽음을 부르고 죽음을 낳는 모든 삶의 양상이 곧 죽음이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왕 노릇한다고 말했다(롬5:14).
죽음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막강한 힘이자 권세다.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질서를 부패시키는 무서운 독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더럽히는 것도 바로 이 죽음이란 실체이다. 그런데 이 죽음이 자연의 순리라고 여길 수 없다. 죽음은 죄의 삯이다. 그러기에 죽음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기 때문에, 죽음은 관계론적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화목제물이셨다.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참 생명 있음과 참 생명 없음의 최후의 결전장이었다. 세례의 의미 또한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죄와 죽음의 문제를 뒤 엎고 역전시키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연합되는 생명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위대한 사건이다. 세례란 말 그대로 죄에 대하여 완전하게 죽고 예수님의 의로 더불어 부활 생명으로 사는 생명 사건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의 부활로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 사건이다.
기도드린다는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가? 예배를 드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생을 누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요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무엇을 위함인가? 이 모든 기독교의 핵심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 새로운 관계 회복에 이르는 일이다. 기도, 예배, 구원, 영생,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본질은 하나님과의 친밀하고도 깊은 그분의 통치 안에 들어가 거하는 삶이요, 이 모든 것을 누림의 관계에 이르는 것이다.
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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