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기독교의 역사관은 종말사상으로 집약되고 종말로부터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나님의 계시요 하나님의 나라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온다고 본다.
기독교의 사고는 먼저 저 세계(미래, 하나님 나라)에서 출발한다.
저 세계에 이루어질 일들(혹은 완성될 일들)이 죽음이라는 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미래에서 죽음이라는 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완성된 사실(하나님 나라)은 우리 현재의 삶을 수정하게 한다.
그리고 온전하게 만들어 간다. 그래서 현재는 더욱 더 미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현재는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완성된 미래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 속에 죽음의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라기보다 주님을 만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된 종말의 삶을 지금 여기서 선취하고 사는 우리들은 정말 복된 자들이 아닌가!
기독교적 세계관, 역사관, 생사 관은 우리들에게 참 자유와 영광을 안겨주는 가슴 벅찬 삶이 아닐 수 없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인간의 죽음은 자유를 위해서 걸어가는 길 위에서 펼쳐지는 최고의 축제이다."라고까지 말했다.
목회자 맥스 앤더스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때가 올바로 살 준비가 가장 잘되어 있을 때이다."라고 말했다.
구약성경에서 이 땅에서의 사는 날 동안 이상적인 죽음은 노년기의 죽음으로 되어 있다.
창세기 25장 8절에서 "아브라함이 백발의 노년에 이르러 늙고 만족하게 산 다음에 죽었으며
자기 조상들에게 돌아가 함께 있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고 완성하신 영광으로 들어가는 인간 삶의 마무리로서 믿는 자에게 약속된 죽음이다.
그래서 이삭과 다윗과 욥도 만족한 죽음을 죽었으며(창35:29, 욥42:16, 대상29:28),
그들의 죽음은 음울한 결말이 아니라 평화로운 성취였다.
이러한 면에서의 고령과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행복한 성취일 수 있으며 풍성한 축복의 생애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모든 년한이 주께 있으므로 짧든지, 길든지 성도의 죽음을 귀히 보시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자주 이런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내가 살아온 날 수 만큼보다도 더 많은 묵은 죄인임에 대한 자각이 있게 하시고
그러나 그 모든 죄를 덮고도 남을 사죄하심의 은총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사고나 실수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다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믿음의 선진들처럼 욥과 같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던 것처럼(욥42:17),
그리고 모세와 같이 사명을 다하기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과 사명을 다하고 주님 부르실 때에 준비된 마음으로 기쁘게 떠날 기약을 허락하소서.
바울처럼 '두 사이에서 무엇을 가릴 런지 알지 못하겠노라'는 고백처럼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모두 승리의 순간들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살아온 년 수와 관련 없이 이렇게 기도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공감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 또한 우리가 함께 마땅히 드릴 기도라고 생각한다.
성경학자들과 설교자들에 의해 중년의 시편이라는 별명이 주어진 102편 24절의 말씀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71:18).
"늙은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71:9).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92:1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4).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20:29).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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