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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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나를 만나고 나와 연애하라

샤론의 수선화 2015. 6. 26. 14:02

 

샬롬! 찬미예수

 

화통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정선희가 나왔다. 

"인생이 알려준 것들" (가와카미 미에코)의 책을 그녀가 번역하면서 얻은 진귀한 것들을 풀어 놓는다.

 

자기애를 가지고, 자기개발을 하고, 다가오는 시련을 기쁘게 맞이하라.

나의 시련을 도전하듯 즐기며 사는 것, 주어진 일상에 노예로 버티듯 사느니 도전하듯 즐기며 사는 것이다.

시련을 딛고 견디고 이겨내라. 남에게 보이는 나만 생각하지 말자.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본적이 있니?"

숨 가쁘게 살다보니 정작 스스로에게는 인색하다.

 

오늘을 즐기기 위해 자기 자신과 연애(열애)하라.

나는 소중하다. 나와 연애하며 스스로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자존감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대화하라. 나를 사랑하다보면 자신의 매력과 가치가 보인다.

내가 사는 오늘을 간신히 버티기보다 즐겨보라.

자신을 사랑하고 다시 보는 만큼 인생은 달라진다.

늘의 나를 만든 것은 오늘을 즐기는 것, 자존감 바로 그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눈이 부시기 때문이다."

찬란한 미래를 낙관하는 건 결코 철부지들의 특권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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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공감을 하며 내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파악해 보았다.

나는 파도를 타듯 외롭고 고독한 것을 잘 즐기는 편이다.

내가 자주 듣던 말 중에 하나가 바로 '혼자서도 잘해요'이다.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서도 즐겁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사실이다. 외로움과 고독의 질료는 결국 기쁨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체휼(體恤)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나와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나만의 골방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간은 내 영혼이 나의 삶에 건네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이고, 나와 하나가 되는 나 자신과의 거룩한 만남이다.

마치 이산가족이 부둥켜안듯 눈에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내가 만나는 정겨운 시간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깊이 성찰할 때, 진정한 나와 대화하며 내 속에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자기애'를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 그동안 '자기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애'와 '이타심'은 서로 반대가 되는 개념이 아니다.

나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는다면 타인 또한 소중하다는 것도 궁극에는 알게 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과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인류'를 사랑한다는 면에서 서로 같은 내용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진정한 '자기애'는 나만 생각하는 '탐욕'이나 '이기심'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타인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그렇게 지극한 사랑을 주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나보다 더한 이가 없고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  

'자기애'는 나의 허물을 덮거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바라봐 주고 아껴주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모진 질책을 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분노(화)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밖으로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는 나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나의 자존감이 극도로 추락했을 때, 상대에 대한 문제 탓으로 집착했을 때 영락 없이 나는 추락한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내게 총질을 할 때, 그 총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변명이지만, 내 인내에 대한 한계의 마지노선을 긋고 전쟁을 치를 때를 극적인 표현의 과장법으로 말하자면,

내 사지의 마지막 한 쪽 다리가 남아 있을 때까지도 거의 치사율에 가까운 총상에도 제법 잘 견딘다.   

그러나 전쟁할 마음조차 없고, 준비가 전혀 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빨리 투하되는 포탄 세례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러한 전쟁이 내게 있어왔고 이 전쟁에서 나는 늘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이기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나를 제어하지 못하고 차라리 자폭하지 못한 끈질긴 나의 마지막 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너무 아프고 진저리가 나는 나의 고백론이다. 

 

나를 진지하게 만나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탐색하자.

나를 사랑하고, 나를 격려하고, 나를 만나 연애하자.

 

내 젊은 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까지의 시간들,

그 이후, 신앙에 입문하고 지금까지 견뎌온 내 모든 삶의 역사는

더 많은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들 속에서 빚어진 얼룩들이고 쌓아온 신앙의 지평들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피 묻은 자유와 평안을 빼앗기지 않고 감사의 체질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핵심이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몸이다.

우리의 지체의식과 공동체 의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삶을 추구하고 성취하며 주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며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자.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서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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