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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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영과 혼으로 보는 실상의 믿음과 허상의 믿음

샤론의 수선화 2023. 1. 4. 17:53

 

 

스크랩 영과 혼으로 보는 실상의 믿음과 허상의 믿음

 

 

 
 
복음....
복음이란 뜻은.. 기쁜 소식이며 예수님 그 자체이십니다.
육의 죄를 멸절하고, 영을 깨워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복음을 온전히 받은 성도라면... 
삶이 예전과 전혀 다르게.... 완전히, 뒤집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바뀌게 합니다.
이것은 능동형이 아닌 철저히 수동형으로 이루어집니다. 


질문해보겠습니다. 
진짜 나는 복음을 충실히 받아들인 성도입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상황에서 왜! 그토록 오랫동안 교회 다니면서도 
삶이 거룩하게 바뀌지 않고...
교회에서만 경건의 모습을 갖추려고 하는지
왜! 나머지 삶에서는 경건이 실종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 사실을 면밀히 고민하며 파헤쳐야 합니다. 
이 고민을 못 풀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목적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교회 다니면서 복음을 받고 믿음 있다 했겠지만,
실은... 혼(생각, 관념, 패러다임)의 상황만 바뀌었을 뿐
영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복음을 받고 교회에 다니며 믿노라 하겠지만.
실은... 영은 여전히 잠자면서 
혼의 상태만 바뀐 것을 믿음이라 오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영을 통하여 생명으로 접한 것이 아니라, 
혼으로 복음의 정보만 받고 믿음이라 집착하는 것입니다. 
혼으로 받는 것은 복음의 정보만 받은 것입니다. 
정보는 능력과 생명력이 전혀 없습니다.
영이 아닌, 혼의 상태만 바뀌는 경우는
이교도나 이방인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적 계기로 인하여 정치적 이념이 전환됩니다.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고,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고...
철학적 사상을 접하면 사고체계가 변화되고... 
구시대적 생각에서 신시대적 생각으로의 전환... 등등 
이와같이, 이런 관념의 전환을 혼적 변화라고 합니다.
이방인의 세계에도 혼적 변화는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허상의 잘못된 믿음 역시... 복음을
영의 생명으로 변화 받지 못하고 사상으로만 흡수하여
영이 깨이지 않고.. 혼적인 관념만 바뀐 것입니다. 
실제.. 이런 종교인들은 이 땅에 홍수를 이룹니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각종 이방 종교에도 허다합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 역시
그들의 혼적 변화로 인하여 이단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들 역시 혼적 집착을 믿음이라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런 혼적 변화는 믿음의 본질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 증거의 열매는 확인할 필요도 없이 바로 보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로 세상을 향해 덕이 되고, 
능력이 되고, 주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하여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이 깨어나지 못하고 혼적 의지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다른 말로 혼의 믿음 혹은 지식 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혼적 교인)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영이 안 깨어남)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장 14절)


그들이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디도서 1장 16절)


입으로는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왜 행위로는 부인합니까.
영으로 복음의 생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혼으로 복음의 정보(지식)만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거룩한 영성이 나올 리 없습니다.
거룩의 능력은...
혼의 변화가 아닌, 반드시 영이 깨어나야 피어오릅니다.
그게 삶에 드러나는 열매의 증거입니다.
영이 깨어난 성도들은 반드시 거룩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생명의 복음을 진짜 받아들인 것이며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분들은 참으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그게 현실입니다.


영으로 복음을 진짜 받았다면 삶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메시지이고 복음의 역할이자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교인들은
이 핵심적인 메시지를 받지도 인정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혼과 육이 이미 세상에 중독되었기에 
입술로는 주님을 믿노라 하지만
세상의 법칙에서 빠져나오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죄의 편한 길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거룩에는 관심이 없이, 혼의 관념 속에서만 꿈틀대며
혼적 이성체계의 전환에만 관심을 두고 의지하려 듭니다.
즉, 자기 부인도 없고, 자기 십자가를 들지도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구원만 받으려는 계산만 깔려있습니다.
그걸 믿음이라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과 회개 없이는...
영이 깨어나지 않는데 온전한 영의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바로... 이 기점에서부터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혼의 가짜 믿음이...
이 시대의 교회를 장악하여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이론과 말 잔치만 하도록 방향을 세차게 틀어버렸습니다.
하여... 여전히 세상의 죄와 타협해도
이에 대하여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혼적 가치관만 바뀌면 다 된 것이라 여겨
온전한 자기 부인과 회개와 거듭남도 없이...
여전히 죄에 붙잡혀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믿음 안에 있다' 착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 육적 바램을 입맛에 맞도록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혼적 교리를 저마다 집대성하여 창조해냈으며
사람이 만든 '오직 믿음'(사실은 혼의 믿음)란 교리가...
복음의 본질인 성경을 참고서 정도로 격하시키고 
교리가 교과서(복음의 본질)의 자리를 강탈해버립니다.
즉, 주객을 전도시켜버립니다.
이 결과로 예수님께서 피를 토하듯 간절히 전파하신 
산상수훈 같은 불덩어리의 말씀들을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로 한순간에 식혀버립니다. 
하여, 어떤 목회자는 성경은 볼 필요도 없다면서
자기가 설교하는 말씀만 의지하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까지 합니다.
순종을 거부합니다.
순종은 행위일 뿐,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믿음이 있으니 당연히 순종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복음의 본질 아닙니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혼의 허상적 믿음으로 점철된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 기독교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디도서 1장 16절)


말로는 입버릇처럼 '오직 믿음'이라고 외치지만...
그 '오직 믿음'은 깨어난 영이 아닌,
관념적 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본질적 '오직 믿음'은...
깨어난 영의 믿음이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혼의 믿음(?)은... 머릿속의 철학만 바뀌게 할 뿐,
근본적으로, 거룩의 삶으로 전환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혼만 바뀌어서는 절대 육의 죄성을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영의 믿음은 모든 것을 뒤집어버립니다.
영이 바뀌어야(깨어나야) 육의 죄성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론만 따지는 혼의 믿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영의 거듭난 믿음)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20절)


왜 그런지 이제부터...
'영혼육'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상관관계를 모르면 윗글이 이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먼저 육과 혼을 만드시고
맨 나중에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는 영이 깨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만든 사람의 형체는 육이라는 하드웨어가 있고, 
그 안에는 이 하드웨어를 움직이도록 결정하는
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영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영은 맨 위 상위구조이기 때문에 
중간에 위치한 혼적 의지가 영을 반응시키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철저히 장치하셨습니다. 
만약, 내 혼적 의지로 영을 맘대로 반응하게 한다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질 것이며 
창조 질서에 엄청난 혼란이 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쯤 되어, 영이 내 몸을 빠져나와  
건강하고 젊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생명을 연장한다든지
내 영이 귀신과 영합하여 악한 음모를 꾸민다든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사람의 영 만큼은 주님의 간섭이 아니면 절대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드신 이유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내 의지적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내 의지와 능력에 대하여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주님이 아니면 도무지 안 된다는 갈급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았을 때...
이에 화답하여 내 잠자는 영이 성령님 은혜의 터치로
깨어나게 됩니다.
그 후부터, 주의 성령님과 먹고 마시고 동행하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미리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가나의 혼인집에서 맹물이
예수님의 터치로 인하여 포도주로 변하듯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철저히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육은 혼에서 나오는 생각의 지배를 받도록 정하셨으므로
우리 몸은 혼이 인식하는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혼은 또 영의 지배를 받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후, 
영이 잠들게 되었으므로 혼이 영의 통제를 받지 않고
마귀에게 세뇌된 그 죄 된 속성 그대로
거침없이 육을 지배하며 죄 중에 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하여.. 이런 사람을 영이 아닌, 혼의 사람이라고 칭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죄 된 속성으로 세뇌당하면서
지금 이 형상이...
사람의 진짜 원래의 모습이라 속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원래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안 지을 수 없다.
원래 죄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처럼...
자신이 변화되지도 못하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이방인과 별 차이 없는 모습으로 살면서
육적 자신의 삶을 핑계하기에 말은 참 논리적이고
그럴듯합니다만...
'원래'라는 말은 마귀에게 철저히 세뇌된 의지입니다.
이 말은 이게 아니라,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세뇌되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린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하다...'
차라리 이게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변명인지 아십니까?
이 말은 곧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속아놓고,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변명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여, 현대 교인들도... 
우리는 원래 죄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 모든 사실을
주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니 믿기만(?) 하면
주님의 은혜로 구원될 수밖에 없다는 교리를 만들어
그럴듯하게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애초에 아담과 하와는 죄가 있었어도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로 에덴에서 쫓겨날 이유조차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의 기준이 아닌, 완전히 사람 중심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거듭날 이유가 무예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도무지 안 되기 때문에
돌이켜 부인하고 회개하여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핵심적 메시지 아닙니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
사람은... 원래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주님과 동행할 정도로 거룩한 영혼육을 지녔었습니다.
이게 아주 정확한 표현입니다.


복음이란 바로, 마귀에게 세뇌되어 죄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하여, 회개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게 거듭남이고 마귀에게 세뇌되기 전 원래 모습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원래의 진짜 모습대로 회복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자체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잠자는 영을 깨워 원래 대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셨습니다.  
또한...
회개하고 거듭난 영의 사람들에게 십자가 핏값으로
죄를 사하여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하여, 온전히 마음을 찢으며 회개한 적도 없이
계속 마귀에게 세뇌된 모습으로 사는 분들이
예수님의 핏값을 자신에게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핏값은 영에 관련된 사건이지 혼에 관련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복음으로 인해 영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며
혼적으로 사상적 이념이나 관념이나 철학이 바뀐다고
그걸 믿음이라고 성경은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적 견해나 사고 같은 
패러다임의 체계만 바뀐 것입니다.


온전히 거듭난 믿음은 혼이 아닌 영이 바뀌는 것...
즉, 영이 깨어나는 게 거듭난 진짜 믿음입니다.
깨어난 영이 거룩하신 성령님을 따라갈 때
영의 지배를 받는 혼 역시 거룩함으로 변화하게 되고 
혼의 지배를 받는 육 역시 거룩한 모습으로 따라갑니다. 
그것이 그대로 삶 속에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잘 돼야(영이 깨어나 성령님과 동행)
그 지배를 받는 혼이 거룩한 생각을 하게 되고
거룩한 생각의 지배를 받는 육이 거룩한 행동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인 요한 사도는 그렇게 증거하는 이유입니다.


 영혼이 잘됨(성령으로 거듭남, 깨어남) 같이 네가
범사(혼과 육)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장 2절)
 
성경 말씀은...
그냥 대략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영혼육의 심오한 질서를 기준으로 한 실상적 표현입니다.
그 질서를 분명히 깨달아야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기준이 잡힙니다.

막연한 믿음의 설정은 교인을 장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혼이 아닌, 영의 깨어남이 진짜 믿음입니다. 
혼의 사고적 체계만 바뀌었다고 그걸 믿음이라 여기다가는 
다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허상적 혼의 믿음으로는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실상적인 영의 믿음이라야 삶이 거룩히 변화되어,
성령님의 은혜에 이끌려 영원한 본향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부디... 대한민국 대부분의 교회에서 크게 유행하는
허상적 혼의 믿음에서 벗어나십시오. 
지금 선생(교역자)들이 거듭남도 없이 눈뜬 소경이 되어 
영의 믿음이 무엇인지 혼의 믿음이 무엇인지
영적인 깨달음도 없이 신학교에서 착실히 배운 교리로만 
교인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어냅니다.
영적 믿음의 정확한 개념도 없이
대충 뭉뚱그려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구원을 확신시킵니다.
여기에 세뇌된 대다수의 교인들은
자신에게 나오는 열매가 육인지 생명인지 분별도 않고 
온전한 믿음의 정체성조차 모른 체 멸망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회만 다니면 구원이 결정된 것으로 속고 있습니다.
심판은 안으로부터 시작되고 구원될 자가 적다는
성경의 말씀과 정면 배치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이 깨어나기 위해 
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 알고
애통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출했던 탕자가 이 땅에서 자신의 힘으로 안 됨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리라는 갈급한 마음가짐입니다.
이 글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달아 알고
온전한 방향으로 가신다면 참으로 감사드릴 것입니다.
부디...
영이 깨어나도록 주님께 갈급히 간청하십시오. 
지금 우리의 혼은, 나를 지배하는 데 쓰일 게  아니라,
주님을 구하는 목적에 온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랑별파파 (daum cafe: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온라인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