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십자가 보혈찬송] 사순절 고난주간 찬송 ??| 중간광고 없음 | 십자가 묵상 | 예수 나를 위하여
스크랩 내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겼더니, 진짜 가벼워졌습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해야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라 하고, 성경에서도 보면...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이것 하지말라 등등... 안 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니 안 하면 안 되겠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라고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이게 보통 큰 고역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큰 짐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합니까... 내가 하려고 하기에 고뇌가 수반된 행위로 보이는 것입니다. 내 의지에 기대므로 믿음 생활이 무겁고 힘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어떤 목사님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것은 행위 믿음이고 종교의 영에 잡힌 자라고까지 선포하면서 이웃에 대하여도 뭔가를 하려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사랑하면 된다고 철석같이 가르칩니다. 그걸 믿음이라 확신시킵니다. 그런데 기록된 말씀에는... 주님을 사랑하듯 내 이웃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니...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시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요한복음 14장 23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2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장 31절) 위 말씀처럼... 뭔 요구상황이 그리도 많은지 도무지 뭐가 뭔지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닙니다. 기록된 성경에는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장 22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주님께서 모든 무거운 짐을 맡기라고 하셔서 내 모든 짐을 맡긴다고 선언하긴 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쉬게 하신다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그 짐이 매우 무겁고 힘듭니다. 선언해도 현실적으로 변한 게 전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식과 입술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맡긴다고 선언했으나, 실제 주님께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는...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영이 아닌, 여전히 혼과 육으로 믿음 생활하려니 고된 것입니다. 이것은 육의 율법에 매인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선생들과 교인들은 네 짐을 내려놓고 맡기라는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여, 말로만 내려놓는다 선포하고, 예수님이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으로 인식하였기에 불순종 하는 것이 곧,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으로 논리화합니다. 이제 너무 홀가분하다 하며, 세상의 흐름대로 육의 자유를 느끼며 이것을 은혜 안의 자유함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찾는 어떤 사람들을 바라보며 은혜 안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미련한 자라고까지 정죄합니다. 이런 분들은 삶에서 육의 모습이 계속 흘러나와도 믿음만 있으면 됐지 인간이 어찌 죄를 안 짓고 사냐고 하면서 은혜는 그럴 때 필요하다고 하며 자신의 육적 모습을 은혜라는 말로 덧씌워 합리화합니다. 똑같은 죄의 경우라도, 이방인에 대하여는 죄라 주장하고 나에 대하여는 죄로부터 자유한 자라고 합리화합니다. 여전히 이방인과 같은 모습으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두렵고 떨림이 전혀 없는 모습을 봅니다. 두렵고 떨리는 모습조차 믿음의 확신이 없는 자라 비판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믿음입니다. 아니... 믿음이라 할 수 없이, 믿음의 모양만 쫓는 것입니다. 짐을 맡기라는 말씀을 육적으로 악용하는 사례입니다. 이런 모습은... 매우 패역한 자의 모습입니다. 이는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육의 편의... 즉, 육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이용하려는 자들의 악한 모습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매우 싫어하는 방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머리는 주님께 가 있고, 마음으로는 육을 뿌리치지 않으려는... 겉과 속이 다른 이런 것이 주님을 가장 분노하게 하십니다. 네 무거운 짐을 내게 맡기라는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하려는 육의 율법에서 벗어나 거듭난 후 영의 율법(성령의 율법 / 사랑의 율법)안에 들어와 내가 아닌, 내 안의 성령께서 지키도록 인도하는 것에 기쁨으로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기쁨으로 하는 것은 무겁지도, 부담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모임의 공동체가 있는데 어떤 이가 리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리더로서 능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결국, 그 공동체는 무능한 리더의 잘못된 인도로 망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쉽을 갖춘 능력 있는 온전한 사람이 그 리더의 자리에 있어야 그 공동체는 건강해지고 굳건하게 바로 섭니다. 능력이 안 되는 리더는 빨리 깨닫고 그 리더라는 짐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최상책이고 그나마 지혜로운 것입니다. 다른 리더에게 내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새 리더의 방식에 철저히 따르겠다는 의미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공동체의 리더를 내려놓고 현명한 새로운 리더에게 맡긴다면서 그 새로운 리더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유하다 하며 내 맘대로 막 행동한다면 그 공동체는 어찌 되겠습니까... 중구난방 (衆口難防)이 되어 바로 망가집니다. 그러므로, 무능한 내가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새 유능한 리더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면 나는 철저히 새 리더의 역할과 통치방식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공동체는 질서가 잡히고 건전하게 보존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무능하고 죄 된 영성으로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 나를 리드한다면 나는 어찌 되겠습니까... 내 영은 멸망(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됨을 포기하고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분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긴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멸망이 아닌, 축복으로 인도됩니다. 그 리더는 바로 온 만물들을 창조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차원을 넘나들며 가장 현명하시며 지혜로운 분입니다. 아니, 지혜조차 창조하신 분이며 지혜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를 이끌 리더로서 주님보다 더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즉, 내가 나를 리드하지 말고, 나를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께서 나를 리드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리드하게 하시겠습니까... 그저 간단히... '주여~ 저를 주님께 맡깁니다~'라고만 선언하면 맡긴 것일까요? 그건 말만 앞세우는 가짜 고백입니다. 이런 분들은 말로만 고백할 뿐, 여전히 삶은 육의 길로 가게 됩니다. 나를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의 모든 방식을 믿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철저히 주님의 방식에 순종하겠다는 결연한 서약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방식은 또 어떤 것입니까... 성경을 열어보십시오... 일단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지 않고 맡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만난다는 말은 맡긴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만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아 29장 13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만나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그렇다고 입술로 구하기만 하면 만나주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철저하고 단호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것, 내가 세상에 젖어 내 의도대로 살아온 육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주님의 방식에 의한 통치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단호한 결단... 이처럼, 돌이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심령을 만나주십니다. 이 상황이 나의 나됨을 포기하고 주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말뿐이 아닌, 삶과 영으로써 굳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영적 리더쉽 안으로 들어가 주님의 뜻을 거부하지 않고 무조건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고자 구하는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그 누구도 주님을 만날 수 없으며, 내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즉, 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그분의 방식대로 이끌어달라는 강한 요청입니다. 즉, 내가 아닌,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살도록 해달라고 나의 모든 전권을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위 말씀이... 이론이 아닌, 영의 세계에서 실상으로 이루어져야 나를 온전히 주님께 의탁한 것이고, 모든 짐을 주님께 내려놓은 것이 됩니다. 이런 심령은 이제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으로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여전히 육의 속성대로 살면서 위의 성경 구절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저절로 거룩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실제 거듭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어야 위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게 바로 간절히 회개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한 수순입니다. 입술로만 '주여주여~ 믿습니다~'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입술의 혀로 다 될 것 같으면... 이 땅에서 구원받지 못할 기독교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왜 구원받는 자가 적다고 하셨는지 빨리 깨닫는 자가 복입니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은 심령이 주님의 통치(은혜) 안에 들어왔기에 그리스도의 형상인 거룩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고자 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성령께서... 거룩하게 살도록 양심을 만지시며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만져진 내 양심은 주님의 인도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성령)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순종하게) 하리니" (에스겔 11장 19절) 주님을 영으로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겁고 힘듭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도 힘듭니다. 이것저것 일이 터지면 걱정과 괴로움이 나를 지배합니다. 기쁨이 없었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저 구원을 확신하라고 하니 막연히 확신할 뿐이고, 천국 소망을 가지라고 하니 막연히 소망만 할 뿐입니다. 말로는 다 될 것같이 주장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근심과 걱정으로 세상일에 찌들어 내일은 또 어찌 되나 세상 일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안 옵니다. 이게 거듭나지 못한 신앙인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으로 만나(성령으로 거듭나) 내 짐을 주님께 내려놓으면 세상의 걱정거리가 다 사라집니다. 육으로는 고통스러워도 성령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분명히 알기에 마음은 늘 행복하고 따뜻합니다. 또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 보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지위, 돈 명예 학식 등... 모든 것이 하찮은 배설물로 보입니다. 땅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기 힘들 것 같은 마음이 마치 공중에 붕 뜬 듯 얼마나 큰 영적 자유함이 몰려오는지 모릅니다. 이전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고, 무겁고, 마치 수행하는듯 험난한 과정으로 보였으나, 이제는 순종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매우 불편합니다. 순종의 삶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안의 성령께서 내 심령을 그렇게 되도록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안의 진정한 영적 자유함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싫은데 억지로 지킬 수 있습니까? 억지로 하는 것은 오래 못 갑니다. 이는 진정한 영적 기쁨의 자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도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어야 즐겁게 하는 법입니다. 하기 싫은 것 억지로 꾸역꾸역 하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이렇듯... 거듭나 주님의 은혜 아래 들어가면 주님의 영역 안에 있는 거룩함의 모든 기쁨이 나에게 전해져 도무지 짐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너무나 가볍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거듭나면) 내 말을 (기쁨으로)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4장 23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세상 고민과 걱정으로 찌든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회개하고 거듭남을 입으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그러므로 거듭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모습이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 있는 심령 상태의 모양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면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나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면 조그만 망치로 내리쳐도 거대한 바위를 부술만한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입술로 '주여주여 믿습니다'를 외친들 거듭나지 못해 내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면 아무리 큰 망치로 작은 바위를 있는 힘껏 친들, 능력이 전혀 없기에 바위가 깨지는 게 아니라, 그 망치가 튕겨져 자신을 때려 다치게 할 뿐입니다. 인마 살상용 탄두가 없는 실탄을 공포탄이라고 합니다. 이 공포탄(입술만의 믿음)은 소리만 요란할 뿐,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결코, 공포탄으로 마귀를 분쇄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마귀에게 비웃음거리로만 전락할 뿐입니다. 그러나... 탄두(성령)가 들어간 실탄은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탄두가 들어가면 적(마귀)들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내 안에 실상으로 성령님이 임재하시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믿음의 능력은 전혀 달라집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면 나를 통해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에 마귀가 주는 두려움도 나를 막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를 비롯한 신약의 많은 사도들이 그들의 개인기와 능력으로 그 험한 사역을 감당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했다면 바로 지쳐버리고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질풍 같은 핍박과 훼방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안에 계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했기에 마귀의 그 핍박과 훼방에도 불구하고 능히, 불타는 사명감과 기쁨으로 해냈습니다. 주님 곁에 가는 그날까지 육체적으로는 매우 힘들었으나, 늘 주님 안에서 진정한 영적 자유함과 기쁨을 누렸고 늘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움 속에서 결국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망치로(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대한 바위(마귀의 방해와 계략)를 깨뜨리는 능력입니다. 거듭나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려 하다가는 자신의 영뿐만이 아닌, 다른 영들마저 배나 지옥 자식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내 안에 그분을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결론입니다.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방법은 말로만 요란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철저히 나를 부인하고 죄로부터 돌이켜 회개하면서 주님을 간절히 부르고 찾아, 주님께서 이에 응답하심으로 인하여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가능합니다. 거듭나면 예전에 무겁다고 느끼던 모든 것들이 신기할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려고 하게 됩니다. 순종 자체가 자신의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거듭나면) 내 말을 (기쁨으로)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4장 23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거듭남을 입으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장 3절) 랑별파파 (daum cafe: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온라인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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