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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예수님의 보혈 피 은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사명사명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을

샤론의 수선화 2022. 4. 11. 03:32
예수님의 보혈 피 은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품었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평소 악한 모습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들은 동네 불량배들과 몰려다니다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수순에 따라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형 선고는 불가피했습니다. 


이 상황을 전부 알아버린 아버지는, 아들이 죽는 게 너무 가슴 아파 
재판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내가 아들 대신 죗값을 치를 터이니 
아들을 용서하고... 
나를 사형시켜달라고 간청합니다. 
재판장은 이를 받아들여.. 아들 대신 아버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이제 그의 아들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이제 나를 대신해 아버지가 죗값을 치렀으니 
야호~ 이제 죄로부터 해방이다 하며 너무 기쁜 마음에 평소의 모습대로 
또 동네 불량배들과 몰려다니며 죄를 짓습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누가 봐도...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아들놈이 정상적이라면... 어떤 길을 가야겠습니까... 
나를 위한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제부터는 마음을 고쳐먹고 
항상 아버지의 유지를 품고 살아가려 해야 정상입니다.

 
 
이 예화를 읽으며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혈압이 오르며 뭐 저런 후레자식이 있나 분노가 확 치미십니까... 
허나, 이 악한 광경을 보며, 정의감이 타올라, 분노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위 예화에서... 대신 죽은 아버지는 예수님이고... 그 배은망덕한 아들놈이 
바로... 우리 자신의 평소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내가 내 죗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분은 나를 불쌍히 여겨,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피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호~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나는 이제부터 죄에서 자유하다 하며.... 예수님의 보혈 피 은혜만 앞세워 
연약한 인간이 어찌 죄 안 짓고 사냐며 
평소의 죄 된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까... 
위의 예화에 등장하는 배은망덕한 아들놈이, 바로 그런 우리 모습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보혈 피를 헛되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 번 못 박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육이 아닌 영적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자유함을 빙자한 육의 방종)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거듭난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섬기라) 
(갈라디아서 5장 13절) 


십자가에 못 박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그걸로 끝난 게 아닙니다. 
나 자신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내 죄가 못 박히는 걸 의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이제 내 죄에 대한 결산이, 십자가의 보혈 피로 완벽히 다 끝난 줄 압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완벽하게 사느냐... 
그래서 보혈 피의 은혜가 참으로 값진 것이지...' 
하여, 늘 그래왔듯,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죄는 어쩔 수 없으니 죄 가운데 살아도 되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나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에 대해 죄가 
당연히 죽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는 겁니다.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죄가 나에 대하여 죽은 게 아니라.. 내가 죄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죄)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장 1-2절) 


위 말씀은... 인간의 얄팍한 생각으로 
보혈 피 은혜를 앞세워, 자기 죄를 정당화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또, 보혈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더이상 죄 가운데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 말씀을 묵상하며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가 공중권세 잡고 있는 한,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한, 
우리를 위해 죄가 알아서 죽어줄 일은 전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우리가
마귀가 충동하는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죽음도...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주님께 갈급히 도움을 청할 때 
주님께서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죄에 대해 죽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구하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마귀의 공중권세로 인하여 늘 죄와 공존하게 됩니다. 
천국에 가야 이 공존이 끝나겠지만, 그렇다 해서, 죄는 어쩔 수 없다 하며 
죄를 포기할 맘 없이, 교리적 은혜만 앞세워 얄팍하게 살다가는 
그날에 가서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이 참으로 정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4절) 


위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위 말씀 중, 애통한 마음과 가난한 마음은 같은 표현입니다. 
위 말씀을 다시 표현하자면, 애통함이 없이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통한 마음의 정체는 무엇이며 언제 나오는 것일까요...  
내 죄에 대해 괴로워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피 은혜에 대한 감사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다시 죄에 접근하는 걸 확인하게 될 때 '나는 어이할꼬' 하며 
자신을 원망하고 괴로워하며 가슴을 칩니다. 
그게 바로 애통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연약하여 죄에 대해 어쩔 수 없다 하며
은혜만 앞세우는 사람에게 이 애통한 마음이 생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죄 때문에 주님께 매달리지 않습니다. 
애초에 애통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대하는 근본적 동기가 다른데 어찌 애통하겠습니까... 
허나, 죄가 너무 괴로워, 이에서 벗어나고자 애통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 앞에 엎드려 간절한 마음으로 처절하도록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애통한 심령... 그게 바로 회개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애통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편 1절)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동기)을 보십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사람이 지옥이 아닌, 천국을 소유합니다. 
정말 주님의 보혈 피가 흐르는 사람은... 이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피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면 
죄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꼭 기억해주십시오.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 피를 감사히 여긴다면... 
애초에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려는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설령... 피치 못해 죄의 길에 섯을지라도 
자기 죄를 애통히 여기며 죄에 대해 죽으려는 마음(회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보혈 피가 심령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이며 
또 그런 이들에게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랑별파파/ 다움카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