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가을이 자꾸만 깊어간다. 우리는 한 해를 말할 때 달력으로는 1월에서 시작하여 12월로 마친다. 그러나 자연으로 느끼는 삶으로는 봄에서 시작하여 가을로 마친다. 그래서 춘추(春秋)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고, 나이를 춘추로 물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향년으로 표시한다. 우리말의 '철'은 계절이나 절기 또는 시절을 뜻하는 낱말인데, 이 말로 사람의 성장이나 성숙의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철부지'라는 말은 때가 왔지만 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철들었다'는 말은 제 때를 알 정도로 자랐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철이 들었다.' 라는 뜻은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때맞춰 지을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물론 '철'이라는 것은 고유한 우리나라 말로서 농사를 지으려면 모내기철, 김매기 철, 추수철과 같은 뜻으로 때(철)에 맞춰 행동해야 된다. 결국 철이 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인생의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를 깊이 깨닫고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성숙을 맛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해 한해를 봄철로 시작하여 여름을 보내고 가을로 접어들어 가을 걷이를 통해 한 해를 마감한다. 이런 마감을 몇 번 했느냐가 곧 그 사람의 나이가 되고, 그리고 그 나이는 몇 번의 철이 들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가을은 철이 드는 계절이다.
새싹에서 봄의 기운을 느끼고 청록에서 여름의 색감을 맛본다. 청록(靑綠)은 하늘과 바다와 숲의 푸르름을 함께 아우르는 색깔이다. 세계적 자랑거리인 고려청자가 빚어내는 색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가지에서 막 돋아나오는 연두 빛 잎사귀들이 짙은 초록으로 바뀌면서 숲은 넉넉한 어머니의 품이 된다. 그러나 이런 푸름도 그 빛을 다하고 시들어 퇴색되어 청록은 황금색으로 누렇게 바뀐다.
결국 가을의 들과 산은 온갖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감에서 어떤 영성적 교감을 얻는다. 영성의 색깔은 밝고 화려해서 누구라도 좋아하는 그런 빛만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어둡고 탁한 빛으로 드러난다. 영성을 넓이나 높이 보다는 '깊이'로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깊이 있는 색들은 어두운 색이 깃들여져 나타내게 마련이다. 검을 색을 검붉다, 오묘하다, 심오하다, 신묘하다, 깊다, 고요하다 등으로 확장되어 더욱 중후한 자태를 갖춘다.
그렇다면 신앙적으로 믿음의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철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이 깊어지며 영적 성숙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견고한 믿음이, 아름다운 믿음이, 감사하고 감격하는 믿음이 자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이,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는 믿음이 생겨난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이기심, 교만, 게으름과 안일함이 사라진다. 믿음과 신앙의 철이 든다는 것은 하늘 소산의 은총의 산물이다.
히5:12-14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된다.
"12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절: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절: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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