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VS. 하느님
유석근 목사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
'하느님'이라는 한민족 고유의 신명(神名)은 한국교회가 되찾아 와야 할 아주 소중한 기독교적 용어다. ‘하느님’은 잡귀신 중의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두드러진 지위를 가진다.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 유일신과 동일한 신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부르며 예배했다. 분명히 ‘하느님’은 한민족에게는 천지의 주인인 동시에 또한 민족 조상의 하느님이시다(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한길사, 1933년, 105쪽).
우리 겨레는 창조주 유일신을 하늘(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이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하늘’(天)이라 한 것은 자연물인 푸른 하늘을 절대자로 생각한 것이 아니고 ‘하늘’(天)을 빌려서 절대자를 표시한 것이다. 유대인도 유일신을 가리켜 '하늘'이라고 하였다(눅 15:18). 창세기 19장 24절은 여호와를 가리켜 '하늘'(天)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느님’ 즉 ‘하늘님’은 하늘을 신격화한 명칭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랏님을 존경하자’라고 했을 때, 나라를 인격화하여 존경하자는 말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나랏님’은 ‘나라를 다스리는 이’를 뜻하는 것으로서 임금을 존경하자는 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공경하자’라는 말은 하늘을 공경하자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Heavenly father)를 공경하자는 뜻이다.
우리 겨레가 기독교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까닭은 종래 오천 년 동안 내려오며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던 이 ‘하느님 사상’, 즉 유일신 사상이 있었기 때문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실로 ‘하느님’은 우리 한민족에게는 잡신과 구별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창조주 유일신의 명칭인 것이다. 심지어 무당들까지도 하늘에는 최고의 신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을 다른 귀신들과 구별했다.
그러나 한글 개역성경은 우리 겨레의 정서에 잘 영합하는 이 ‘하느님’이라는 유구한 신명을 버리고 ‘하나님’이라는 신명을 새로 만들어 표기하였다. 한글 개역성경이 ‘하느님’ 대신 ‘하나님’을 쓰게 된 것은 여호와는 한 분 뿐이라는 유일신관에 기인하여 ‘하나+님’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령 무엇인가를 좀더 잘 해보려다가 오히려 일을 더 망친 그런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말인데다가, 신학적으로도 큰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하나님' 이라는 신명
‘하나’라는 수사에다 ‘님’이라는 존칭 명사를 붙인다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님’은 남의 이름이나 또는 다른 명사 위에 붙여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선생님’은 ‘선생을 높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 둘, 셋과 같은 수사는 높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수사에는 ‘님’이라는 존칭 명사를 붙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하나를 높인다’는 뜻인데, ‘하나+님’, ‘둘+님’, ‘셋+님’은 어법에 어긋나는 말이다. 하나님, 둘님, 셋님, 다섯님... 이런 말은 틀린 것이다.
반드시 ‘one+님’을 표기하려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의 관형사형인 ‘한’을 붙여 ‘한님’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원칙이다. 그래야 어법상 무리가 없다. 그러므로 애국가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표기했으며, 공문서와 교과서에도 ‘하느님’으로 통일하여 표기했다.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말을 교과서나 공문서에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글 학자 외솔 최현배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하느님’으로 써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님’을 줄여 부르는 말로 보아야 한다.
2)기독교의 신이 유일신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며,
기독교에서나 한국의 전통 사상에서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상을 벗어날 수 없다.
아주 타당한 지적이다. ‘하나님’은 어법에 맞지 않는 그릇된 말이다. 그것은 언어의 오용(誤用)이다. 억지춘향격으로 만든 신명인 것이다. ‘하느님’이 문법적으로 올바른 말이다. 1971년에 나온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으로 표기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 발행한 북한 성경도 ‘하느님’으로 표기하였다. 한글 개역성경도 ‘하느님’으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신학적으로 그릇된 '하나님' 이라는 용어
설령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태생적으로 지닌 문법적 오류를 문제삼지 않는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한글 개역성경이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고쳐 써야 할 더 중요한 이유는 신학적인 문제에 있다. ‘하나님’은 신학적으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부정하는 ‘단일신론’, 즉 이단을 옹호하는 신명이 된다는 것이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이지만 ‘하나’는 성경에 계시된 바로 그 창조주 절대자가 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유일신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을 ‘하나’로 못 박으면 어떤 의미에서든지 ‘삼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논리상 ‘하나’(one)는 어디까지나 ‘하나’이지 ‘삼위’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유대교나 회교, 그리고 현대의 유니테리안파가 믿는 단일신론에 빠지는 것이다. 이 단일신 사상을 아주 잘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이다.
성경의 창조주 하느님은 ‘유일신’이시지 ‘단일신’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유일신’과 ‘단일신’은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다른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은 ‘하나’ 이시지만, 그 분은 또한 ‘셋’ 이다. 즉 기독교의 신은 “삼위일체 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One God in Trinity)이시자, “하나 되시는 삼위일체”(Trinity in Unity)이신 것이다(1X1X1=1).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작위적 신명은 ‘삼위일체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사실상 회교도들이 믿는 ‘알라’ 신에게나 적절한 신명인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슬람교의 알라는 '단일신'이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은 필자가 총신대 신대원에 재학중일 때(1986년) 조직신학 신론 중 삼위일체론 수업 시간에 은사이신 차영배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당시 차영배 교수님은 양태론적 단일신론에 관해 강의하시면서 삼위일체론적으로 볼 때 '하나(one)'를 강조해 '하나님'이라고 하면 '단일신론'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신명이 되므로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의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고 차라리 '하느님'이 더 좋다고 하셨습니다.
* 양태론적 단일신론: 양태론은 삼위일체의 ‘일체’를 고수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느님이 한 분 계시는데 창조 때에는 성부 하느님으로 나타나시고, 구원을 이루실 때는 성자 하느님으로 나타나시고, 그리고 구원 사역을 성취해 가실 때에는 성령 하느님으로 나타나셨다고 한다. 한 분 하느님이 세 가지 양태, 즉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 분 하느님이 아니라 세 모습으로 나타난 한 분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One God)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 분 하느님을 유지했지만, 그 하느님의 삼위를 구별 짓지는 못한 것이다. 만약 어떤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제가 교회에서는 목사입니다. 학교에서는 교수입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입니다”라고 설명했다면 그는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가르친 것이다. 대체적으로 성도들은 이렇게 양태론적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하고 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태양, 빛, 그리고 열로 설명했다면 양태론으로 삼위일체를 가르친 것이다. 물론 잘못된 교훈이다. 비록 한 분 하느님이심을 설명할 수 있지만 삼위 하느님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것은 이단 사상을 역설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가운데 정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보다 의미가 빈곤한 ’하나님‘이라는 말
앞서 지적했듯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문법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명백히 오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핵심 문제를 덮어둔다 해도, 그래도 ‘하느님’을 사용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여전히 있다. 어원상의 의미를 살펴볼 때 ‘하나님’보다 ‘하느님’이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의 속성을 더욱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어원은 ‘한알님’이다(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 따라서 ‘하느님’은 ‘하나님’보다 의미가 더욱 풍성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알’을 수식하는 ‘한’이라는 관형사 때문이다. 우리 말 ‘한’은 의미가 매우 다양하다. ‘한알님’(하느님)의 경우에 ‘한’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1)‘하나’(一, one)라는 의미: ‘한 개’, ‘한 명’, ‘한 사람’의 ‘한’은 모두 하나(one)를 뜻한다.
2)‘크다’(大, great)라는 의미: 할아버지는 ‘한아버지’에서, 할머니는 ‘한어머니’에서 파생된 말로서, 여기서 ‘한’은 ‘크다’(great)라는 뜻이다. 단군을 ‘한배검’이라고 하는데, ‘한배검’의 ‘한’ 역시 ‘크다’(great) 를 의미한다.
3)‘가운데’(中, middle)라는 의미: ‘한가운데’, ‘한복판’, ‘한가위’, ‘한겨울’ 등은 ‘가운데’(middle)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느님’(한알님)이라는 말은 “한 분(only one)이신 하느님”이라는 뜻이고, “크신(great) 하느님”이라는 뜻이며, “중심(middle)이신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이라는 우리 겨레 고유의 신명(神名)은 이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한다.
이 얼마나 뛰어난 성경적 신명(神名)인가?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을 표시하는 최고․최적의 용어가 바로 ‘하느님’인 것이다. 참으로 유일신관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느님’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을 것이다. 왜 이렇게 탁월한 민족 고유의 유일신 신명을 버려야 하는가... "하나님에게는 구원이 있으나 하느님에게는 구원이 없다!" 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자신의 지적 빈곤을 자랑하는 것이다.
형제자매여, '하느님'이라고 하면 무슨 큰 이단이나 되는 것처럼 더 이상 충격받지 말라. 괜찮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귀신도 갓(god), 성경의 여호와도 갓(God)이라고 부르니, 그렇다면 그들은 다 지옥에 갈 사람들인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동일한 우리 겨레의 하느님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조상들은 홀로 한 분이신 창조주 하느님만을 섬기던 일신교도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종교(천신숭배·제천신앙)는 역사적으로 변화함을 입지 않고 태초로부터 내려와(아담→아벨→셋→에노스 계열을 통해), 노아→셈→아르박삿→셀라→에벨을 거쳐 벨렉과 욕단에게로 계승된 유일신 신앙이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겨레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 하느님을 믿고 받들고 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기독교의 하느님을 섬겨왔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아리랑과 성경과 민족사의 만남 >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직계 후손이다(창 10:21, 25, 30). 따라서 한국교회 성도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유대인의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선조들이 일찍이 숭배했던 그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조상들이 섬겼던 유일신 하느님을 잊어버렸다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다시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대뿐만 아니라 삼국·고려·조선·근세를 거쳐 오늘날 까지도 한국인의 영성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신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가 선교 10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2천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큰 부흥이 일어난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한국교회 부흥의 가장 큰 원인은 기독교의 하느님은 우리 겨레가 원래 믿고 받들고 섬겼던 알이랑 민족의 하느님(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과 같은 신이므로 우리 겨레의 정서와 영성에 아주 잘 영합(迎合)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마치 연어가 귀소본능(歸巢本能)으로 자기가 태어난 곳을 다시 찾아 가듯, 기독교가 들어오자 단기간에 1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느님 앞으로 돌아오는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유일신을 섬겼던 한민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왔던 개신교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캐나다 선교사인 게일(J. S. Gale)은 그의 저서「전환기의 조선」(Korea in Transition)에서 “한국인의 신이란 ‘하느님’으로서, 즉 유일하게 위대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James S. Gale, 「전환기의 조선」,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7, p.70).
헐버트(H. E. Hulbert)라는 미국인 선교사는 그의 저서「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종교관은 외래적인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원시적인 자연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느님이라는 어휘는 ‘하늘’이라는 단어와 ‘주인’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한자의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은 이 하느님이 우주의 ‘최고 지배자’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Honer B. Hulbert, 「대한제국 멸망사」,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9, pp.469~470).
이외에도 장로교 선교사인 H. G. Underwood의 부인인 L. H. Underwood는「Underwood of Korea」에서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 (the Kingdom of Kokurei)에서는 하느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 그리고 유일한 신 하느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것 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일신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신과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신 여호와가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왕하 10:15; 요 5:44, 17:3).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느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사 3:16).
헐버트 선교사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일신을 믿으며, 이 하느님에게 부여된 속성이나 권능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거의 보편적으로 말하는 여호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느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며,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출 20:3~6, 신 4:7~9). 이 같은 차원에서도 한민족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중국에서는 천주라는 이름을 갖는 우상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실제적인 형상을 부여하려고 한 적이 없다. 한국인들은 하느님을 어떤 우상적인 의식으로 경배하지 않는다”는 헐버트 선교사의 증언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로 우리 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유일신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우리 겨레는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 곧 욕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상 살펴본 바처럼 어느 모로 보나 우리가 사용해야 할 신명(神名)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하나님'보다 훨씬 좋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릇된 관습을 깨뜨리고 '하느님'이라는 겨레 고유의 신명을 다시 찾아오자. 한국 교회가 그렇게 한다면 복음을 전하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에는 친근감이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하나님'보다 거부금이 덜하다는 얘기다. 애국가 가사에도 '하느님'이라는 유일신의 이름은 등장하고 있지 않는가. <보다 상세한 것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유석근 저, 예루살렘 간)을 참조하십시오.>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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