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에 기습적인 폭우가 내린 3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들이 고립돼 119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지하 40m 저류시설 점검을 위해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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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펌프장 터널 공사 현장에서 작업중이던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지 10시간이 넘었지만, 서울시와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은 사고 경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장치 없이 작업자가 투입됐다 발생한 사고 만큼이나 사고 수습 과정도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전 7시40분쯤 급작스러운 폭우가 내리며 빗물 펌프 수문이 개방되면서, 오전 7시10분부터 저류시설 터널 안에서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직원 구모씨가 숨지고 미얀마 국적 협력업체 직원이 실종됐다. 두 사람에게 수문 개방 사실을 알리려 오전 7시50분쯤 터널로 들어간 현대건설 대리 안모씨(30)도 실종됐다.
사고 현장에는 오전 9시56분쯤부터 현장 브리핑이 시작돼 오전 8시37분부터 진행된 구조 진행 상황을 설명했지만 사고 경위와 책임을 소명해야 할 서울시와 현대건설은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은 오후 1시26분쯤 서울시가 박 시장에게 따로 브리핑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서울시는 현대건설 현장 소장 등과 회의를 진행하며 언론 등에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공식 설명을 내놓은 것은 사고발생 9시간여 만인 오후 4시30분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과 본부장과 현대건설 현장소장이 함께 브리핑에 나왔으나, 두 사람은 사고 경위에 대해 엇갈리는 내용을 발표했다.
황제현 서울시 도시기반시설 본부장은 "빗물펌프장을 관할하는 양천구청이 오전 7시38분 현대건설 기계팀장에 수문을 개방한다고 통보했고, 오전 7시40분 실제 수문이 개방돼 물이 차오르며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설명대로라면 이미 터널 안에서 작업자가 있음에도 수문이 개방돼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현대건설 측에서 작업자가 터널에 있으니 수문이 개방되지 않도록 양천구에 조치를 요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현대건설 측은 "양천구로부터 수문 개방 통보를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서울시에 정확히 어떤 내용과 형식의 수문 개방 통보가 이뤄졌는지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으나 서울시는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며 "추후 브리핑 때까지 파악하겠다"고 넘겼다.
현대건설 측은 "매일 오전 8시쯤 터널로 작업자를 보내 일상점검을 한다"면서 "평상시 비가 오면 작업을 하지 않지만 오늘 호우주의보는 오전 7시30분에 발령됐고, 작업자 투입 시점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전날부터 기상청이 서울에 20~30㎖ 강한 비가 내린다고 예보된 상황에서, 평소 우천 시 작업하지 않는다면서 작업자를 내려보낸 것이냐"는 지적에도 "급작스러운 게릴라성 호우가 내려 사고가 난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시와 현대건설은 현장 안전 매뉴얼도 제시하지 못했다. 브리핑에 따르면 수문이 개방되더라도 터널 안에는 별도의 비상벨 등 알림장치가 없으며 작업자들도 구조 튜브나 구명조끼 착용 없이 작업한다. 서울시와 현대건설은 "현장에 우천시 터널 작업에 관한 안전 매뉴얼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용을 파악해 추후 브리핑 때 제공하겠다"고 했다.
한편 소방 당국은 현재 고무보트 2대와 잠수부 4명 등 구조대원 36명을 현장에 내려보내 사고 발생 이후 9시간째 실종자를 수색 중이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초음파 탐지장비(소나)를 동원해 물속도 탐색하고 있다.
서울시와 현대건설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2차 브리핑을 열 예정이다. 오후 6시쯤 2차 브리핑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사고 경위 등 내용 파악이 부족해 시간이 늦춰졌다
이해진 기자 hjl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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