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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카페

[스크랩] CCM의 역사

샤론의 수선화 2019. 1. 11. 21:44
CCM의 역사

 


 

 

편집. 임동선

 

1) CCM이 시작될 무렵 가스펠이라고 알려진 교회음악에는 3종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를 성가(Sacred Gospel)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성가라는 명칭으로 교회 안에서 사용되었던 음악을 말합니다. 특히 흑인들에 의해 주도되어진 성가를 블랙 가스펠(Black Gospel)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창법, 음악스탈일이 다른 장르와 확연하게 구분되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를 종교음악(Religious) 또는 인스피레이셔널(Inspirational)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 팝음악과 흡사하면서도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말합니다. 이즈 리스닝(easy listening)의 요소가 강하며 Jesus Music, 또는 Jesus Rock 이라고도 합니다. 1970년대 말부터 CCM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오늘날 CCM의 근원적 형태라 할 수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1964년 미국의 레이 랩(Ray Rab)이라는 사람이 카톨릭 교회에서 포크 미사를 선보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또 일부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영향으로 인해 빌리그래함 등, 대형집회를 인도하는 전도자들이 Jesus Music을 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사역에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대중성가(Contemporary Gospel)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서든 가스펠(Southern Gospel)이라고도 합니다. 주로 미국의 남부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컨츄리 송과 같은 분위기, 서부영화 음악에 나오는 류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빌보드 지에 의하면 CCM은 팝이나 록계열의 음악, 가스펠은 흑인 전통 가스펠과 소울, 리듬앤 블루스 스타일로 간주합니다.


우리나라에서야 복음성가를 불러야 마냐를 가지고 논하지만 엄밀히 말할 때 복음성가는 매우 교리적이고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좋은 노래들이었습니다. 복음성가와 CCM을 하나로 묶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2) 우리 나라에서의 CCM의 발전


1987년 주찬양으로부터 점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 때, "예수, 그이름"(송명희 작사, 최덕신 곡)은 대단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만해도 "낮은 울타리(대표: 신상언)"라는 모임은 대중음악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록과 CCM들을 거세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덕규, 최덕신, 박종호, 송정미, 최인혁, 이성균 등의 전문 CCM 가수들의 등장을 통해 CCM은 마치 댐을 무너뜨리고 흐르는 물처럼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CCM은 매우 이즈리스닝(듣기 편한 곡)의 형태였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음악장르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회중찬송에 새로운 변화를 가한 경배와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1980년대 말 경배와 찬양의 도입(전하세 예수의 등장)은 다양한 노래문화가 전파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노래문화의 전파에 한 몫을 담당했던 것이 1980년대 말 찬미, 모퉁이 돌 시리즈, 많은 물소리와 같은 악보집의 보급이었습니다. 대부분 교회의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이 악보집을 구해야 했고 그 악보집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것이 되어 새로운 노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995년 CBS 방송국에서 CCM 캠프를 시작으로 외국의 CCM과 국내 CCM울 소개하면서 국내의 CCM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 급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의 CCM을 음악적 입장에서 바라볼 때 촌스러움(시대에 뒤떨어진다,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을 금할 길이 없다 한다면 현재의 CCM들은 거의 외국 CCM의 음악스타일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많은 세련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6년에는 CCM 전문지 (CCM 룩)가 창간되었으며, 이듬해인 1997년에는 숭실대에서 교회음악과를 통해 실용음악 과정이 생기므로 CCM의 확산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송정미, 최덕신, 백승남, 박정관 등, 당시의 CCM계를 이끄는 주역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숭실대의 교회음악과는 CCM학과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1997년 CCM 컴퍼런스가 개최, CCM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였던 1980년 중반만 해도 교회 교육관 안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웠던 지난 추억들"이란 노래를 부르다가 교회의 어른께 야단 맞은 이들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 딴 노래를 부르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컴퍼런스는 CCM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는데 한층 효과적인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초기의 예문(88), 싱코이노니아(88)등의 기획사들의 활동을 따라 많은 찬양 기획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룩뮤직(91), 푸른사람들(94), 다솔기획(95), 솔트기획(95), 제이월드(96), 예컴 기획(96), 엘기획(97), 쉴기획(97), 시편미디어(97), 칼라기획(97), 로드뮤직그룹(97), 작스미디어(98), 조인기획(98), 배컴패니(98), 하늘기획(98), 아트엘(98), 빔(99), 리치프로덕션(99), P&W(99).........많은 기획사들을 살펴보십시오. 이제 CCM은 상업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기획사들은 순수 선교를 표방하지만 내심으로는 돈이 되어야만 합니다. 많은 기획사들 틈에서 살아가려면 그만큼 상업적이어야만 합니다. 상업적이라는 것은 이윤을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중들에게 잘 호소될 수 있는 음악표현 기법들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일반 미디어도 CCM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동아, 레코드 포럼, 지구촌 영상음악 등에서 특집, 또는 정규시리즈로 CCM을 소개하고 시작했고 일반 가요계에서도 CCM이라는 장르가 인식되게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대중음악의 스타들이 CCM을 부르기 시작하여 박정현, 솔리드의 김조한, DJ DOC의 김창렬, 손지창, 최이안 등이 자기의 앨범에 CCM을 삽입, 신형원, 인순이, 송시현, 유리상자 등이 CCM 앨법을 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반대로 안성진, 송정미, 큰 바위 얼굴 등은 일반시장에 음반을 내므로서 CCM과 일반 대중음악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친구가 대어버렸습니다.

앞으로 그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3)CCM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성경이 말하는 역사관의 차이.


CCM에 대하여 그것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는 성경의 역사관에 대한 근본적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지상 왕국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왕국은 평화의 왕국이며 그 왕국은 정의가 실현되는 왕국입니다. 또한 그 왕국은 부활한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왕국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왕국을 "메시야 왕국"으로 기다렸고 예수님은 그 왕국을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라고 가르쳤으며 성경학자들은 계시록 20 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을 따라 "천년 왕국"(Millennial Kingdom)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는지를 가지고 성경의 역사관은 전천년주의, 혹은 후천년주의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을 전천년주의자, 천년왕국의 진행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고 새하늘과 새 땅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후천년 주의자들입니다. 후천년주의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현재를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이 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현재를 천년왕국과 동일시 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을 시작으로 교황청이 모든 제국들을 통치하며 보내왔던 중세시절은 후천년적 사고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종교개혁을 했어도 제네바에서 자치적인 기독교 정부를 형성하려 했던 칼빈, 기타 국교들을 형성했던 종교지도자들(루터, 즈빙글리 등)등은 모두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후천년 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현시대의 문화라는 것에 큰 가치를 두게 되어 있습니다. 저질스럽고 더러운 것도 사용하기 나름이다라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의 열정과 헌신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밝은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천년 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다릅니다. 현시대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주님은 다만 믿는 자들을 구별해서 불러내실 뿐(심판받을 세상에서 노아,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 소돔성에서 롯, 출애굽의 이스라엘 처럼) , 세상은 여전히 악하며,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 올수록 노아의 때나 소돔 때처럼 그렇게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암담한 세상은 주님이 오셔야만 해결되고 주님의 통치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라고 말씀하셨듯이 이 세상에는 주님을 위한 소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사탄)를 따라 움직입니다(엡2:2,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내주셨습니다(갈1:4).


결국 전천년주의자들의 신앙은 구별된 삶을 통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소망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현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들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가증할 뿐이라고 믿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천년주의자들은 할 수 있는 한 현재의 문화적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방편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때,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만들고자 하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이는 네가 돌 위에 네 연장을 들면 그것을 이미 더럽게 한 것이기 때문이니라"(출20:25)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행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호생활로서 신앙을 유지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커피를 즐기다가 어느 때 녹차를 즐기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시대가 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양식들을 도용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서 고려해봐야 합니다.


"주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엡5:10)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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