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잘못 눌러 의도하지 않게
이런 뉴스를 본 적 있습니다.
어떤 경찰이 물에 빠져 익사하려는 사람을 보자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백 미터를 헤엄쳐가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참으로 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경찰의 본연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불법과 어려움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이 경찰은 시민의 어려움을 보자 두말없이 바로 자신의 의무를
과감하게 수행한 사람입니다.
단... 수영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군 생활 중에 전투 수영이란 훈련 과정이 있었는데
수영 잘하는 병사를 조교로 뽑아 작전 현장에 투입되는 것입니다.
중대장이 수영 할 줄아는 사람 손들라니까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몇 명 빼고는 대부분 수영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상황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저는 시골 출신이라 물과 살다시피 했기에 어릴 때부터
수영은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하여, 다른 병사들도 당연히 수영 정도는 할 줄 알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도심지에서 성장한 병사들에게 수영은 남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대로 두면 익사 사고가 나게 생겼습니다.
그냥 무작정 물속에 뛰어들겠습니까?
그렇다면 본인은 수영 할 수 있습니까?
만약, 본인도 수영을 못 한다면 두 사람 다 익사합니다.
차라리 뛰어들지 않느니만 못하게 됩니다.
물속의 사람을 구할 때는 적어도 자신도 수영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한 수영 실력으로는 물에 빠진 사람을 못 구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구하려는 사람의 사정은 전혀 생각 않고
자신만큼은 꼭 살기 위해 자신을 구하려는 사람을 잡고
초인적인 힘을 사용하여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구하려던 사람도 같이 죽습니다.
그래서 구하려는 사람은 수영 실력도 남달라야 하지만
구할 수 있는 순간적인 대처 능력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수영을 못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절대 못 구합니다.
수영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수영할 줄 아는 사람(거듭난 사람)을 종으로 쓰십니다.
수영도 못 하는데 바닷가의 해양구조대원으로 쓰겠습니까...
거듭남이 없으면 자칫하다가는 생명을 살리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도 죽이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도 성령을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몸소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내 가족과 이웃 형제들의 구원이 걱정되십니까?
그들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먼저 거듭나십시오.
내가 거듭나지 않으면 나는 물론 내 가족과 이웃 형제의 구원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왜 거듭나도록 하셨습니까...
단순히 구원받게 하시려고요?
그것도 맞습니다만...
거듭난 사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하늘나라 확장과
내 가족과 이웃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거듭나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거듭난 자를 사용하시게 됩니다.
그저 팔짱만 끼고 지켜만 보는 방관자로 두지 않으십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7-8절)
그 마음에 긍휼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셔서
영혼 구원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하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히 크게 올라오게 됩니다.
이는 마치 불길 속에서 못 나오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변의 환경을 불사하며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고
오직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듯 뛰어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변의 불보다 그 사람만 보이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이는 내 의로 뭔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기에 반드시 순종하여야 합니다.
강대상에 올라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거듭나지 못하면 성령님이 없기에 말씀에 능력이 없어서
그 말씀을 듣는 영혼들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사망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되어
소경 목사님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도 같이 구덩이에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태복음 15장 14절)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5절)
오늘날 기독교의 위상은 개독교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거듭남 없이 입술로만 인도하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해서 그렇습니다.
열매 없이 입술과 머리로만 가르치니 목사님의 삶을 듣고 보는 교인들도
머리와 입술로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삶에 변화가 없이 교회 마당만 밟는 교인으로 남습니다.
목사된 종이 거듭남이 없어서
양들을 섬기려 하지 않고 양에들게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성령으로 거듭나 영적으로 올바로 서서
몸소 성령의 인도에 따라 믿음의 삶을 현실적 삶에서도 이루어졌다면
가르침을 받는 그 많은 교인들은 거듭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분명 달랐을 겁니다.
저도 기억합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 목사님이 동내에 오시면
교회를 안 다니는 동내 어르신들조차도 목사님 오셨냐며
깍듯이 인사하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거듭난 목사님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이끄셨고
믿음의 능력이 삶으로 많이 나타났기에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왜 존경했겠습니까...
평소 목사님의 믿음에서 나오는 삶의 열매를 봤기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는
누가 교회 다닌다고 하면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라고 하면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고 곱지 않게 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인상이 변하면서 양미간이 구겨집니다.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 이방인들에게 사정없이 밟히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듭난 심령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고,
헛된 교리에 젖어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며 섬기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것은 분명 잘못된 믿음의 결과로 남겨진 열매입니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교리)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가복음 7장 6-7절)
즉, 교회에서 입술로만 주님을 찾으며 은혜와 믿음을 외칠 뿐,
현실적인 삶에서는 실제적 능력의 삶이 없으니
이방인들이 보기에 위선자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이 없으니 그런 것입니다.
거듭남이 없어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거듭남 없이 입술로만 다 하려는 신앙은 그래서 매우 위험합니다.
지금의 이런 현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든, 기타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하는 주님의 종들은 무조건 거듭나야 공동체가 바로 섭니다.
주의 종이 거듭나지 못하면 교인들 역시 자신과 똑같이 거듭남 없는
수많은 교인들만 양성될 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참으로 심각하게 느끼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성령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 거룩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건 열매로 다 증명되는 것이기에 변명할 상황도 아닙니다.
물론 일반 교인들도 목사님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주님께 매달려서 자신의 영성에 생명을 불어넣어달라고 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목사님들만 탓할 문제도 아닙니다.
내 영이 거듭나 온전하게 서 있다면 목사님이 거듭나지 않아도
분별력이 생기기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내 영이 거듭나야 내 안의 성령께서 나를 지켜주시며
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형제들도
온전히 구원의 대열에 이끌리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거듭난 심령과 함께하는 성령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게 이처럼 중요합니다.
수영 이론만 가지고는 자신도 물에 못 들어가고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도 못 구하듯
역시나, 내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성경 이론만 가지고
내 가족과 이웃 형제들을 주님께로 온전히 인도할 수 없습니다.
실제 수영을 할 수 있느냐...
실제 성령으로 거듭났느냐..
이 명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 대부분 거듭남에 대하여 쓰게 됩니다.
아주 지겨울 정도로 씁니다.
지겨울 정도로 쓰는 이유는 지겨울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흰옷을 입고 진정한 믿음을 시작하는 첫 단계이면서
구원의 출발선에 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은 흰옷 입은 심령으로 종으로 쓰시기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종으로 삼을 때 팔짱 끼고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라고 종으로 삼은 게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거듭났고 주님의 종이라 자부하면서 입술로만
'주여주여 믿습니다' 하는 자들은 실제 거듭난 자들이 아닙니다.
거듭나면 입술이 아닌 현실적 삶으로 그 믿음이 나타나도록
성령께서 채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명령하는 위치이고 종이란 개념은 열심히 일하는 위치입니다.
그리고 거듭남으로 인하여 종이 된 사람은 그 안의 성령께서
열심히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 종을 통해 반드시 일하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사역을 통해 맺게 하시는 수고의 열매입니다.
나도 살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도 살리고 싶으십니까?
수영하는 이론만 알아서는 험난한 물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물에 빠진 사람도 구할 수 없습니다.
거듭남이 없으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심령 안에 있는 성령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서 주님을 구하고 찾으십시오.
모든 열쇠의 비밀은 그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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