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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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스크랩] 전쟁과 탈취물

샤론의 수선화 2018. 3. 23. 18:24

데살로니가전서 5 15 ~ 18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바벨에 거하는 내 시온들아 거기서 나오라”는 겁니다. 지금 그 염려의 자리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그 걱정의 자리에서, 미움의 자리에서, 자기 혼자 삐져서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빨리 뛰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앉으면 부정의 자리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 그 자리에 있으면 죽는 겁니다.

 

‘삼가 누구’, 어떤 일이 생길 때는 사실 나는 잘 아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악함으로 말미암아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내가 억울하고 그런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선으로 갚으라는 겁니다. 이게 인간적인 삶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는 건데 이건 바로 전쟁입니다. 내 마음에 전쟁을 이기지 않으면 이것이 되지 않는 겁니다. ? 나를 해코지한 사람이 반드시 엎어져야 속이 시원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를 엎어트리게 한 사람이 엎어지지 않고 잘 가게 하는 것이 내 마음 속에 정말로 그냥 빈말이 아니고 내 마음에 진짜가 되기까지는 이 마음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되지 않는 겁니다.

 

신앙은 전쟁인 겁니다. 전쟁은 이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너 애굽에서 가나안을 가라” 그랬습니다. ‘가라’하는 이 코스가 원래는 약 일주일에서 14일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길로 가지 못하게 하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돌아서 가게 하는 이 길은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40년 속에서 들어가느냐 14일에서 들어가느냐는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달려있는 겁니다.

 

17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전쟁을 보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돌아가는 동안에 항상 블레셋이 있어서 겁나서 못 가는 겁니다. 그 문제가 걸리면 하나님하고 관계가 되지 않는 겁니다. 자꾸만 어렸을 때는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돌아가다가, 돌아가다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 그 일을 이기라는 겁니다. 전쟁을 치러서 이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너는 40년을 뺑뺑이 도는 것이 아니고 10일면 들어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삶은, 내 앞에 이뤄지는 일은 내가 지금 이기라고 나한테 준 전쟁인줄로 믿습니다. 이기면 가나안 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사’ 그러니까 전쟁을 알지 못하는 것, 오늘 내 삶의 앞에 있는 것은 전쟁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시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다가 문젯거리를 놔뒀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전쟁을 어떻게 하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놔뒀습니다.

 

전쟁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전쟁이 무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남겨두신 열국은’ 이 말은 뭡니까? ‘전쟁을 체험하기 위해서 내 삶에 남겨둔 그 문젯거리는’ 이 말입니다. 문젯거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것을 청종하고 사느냐 살지 않느냐’를 시험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블레셋은 이기는 줄로 믿습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서 블레셋을 이길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내 생각이 그 문제를 못이기는 겁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는 것은 그 부정의 자리에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신앙이 빨리 뛰어나오는 겁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그 안에서 뛰어나오게 하는 겁니다. 원망의 자리에서 뛰어나오는 겁니다. 그 미움의 자리에서 지금 빨리 하나님께 피하는 겁니다. 그 원망을 가지고, 미움을 가지고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삶이 지금 다 무너집니다. 피해야 합니다.

 

항상 선을 좇기가 쉽습니까? 어려운 겁니다. 전쟁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다는 것은 내가 전쟁에 스스로 나를 이기지 않는 이상은 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어와서 나를 이겨야 합니다.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우리가 낳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하고 맞춰봐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하고 맞춰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빨리 도망을 해야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예수님이 오실 때 똑같다는 겁니다. 또 인자의 재림은, 마지막 때는 롯의 때와 같다는 겁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도망하라 할 때 하지 않은 겁니다. 이유는 그것 하나입니다. 무언가는 세상의 욕심 때문에 도망하라 할 때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롯의 처를 주님이 직접 생각을 하라 하는 겁니다. 도망하라 할 때 도망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감사치 아니하는 불평의 자리에 있을 겁니까? 세상의 자리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키워서 내가 내 삶에 못한다는 것을 다 엎어버리든지 하는 겁니다. 우리는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진다면 오늘의 삶을 이길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알쏭달쏭하니까 견디기가 힘든 겁니다.

 

하나님이 더 크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오늘 허물을, 오늘의 힘든 일을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항상 감사하라’ 감사가 되지 않습니다. ‘원망이 나와! 불평이 나와!’ 그 자리 도망할 줄로 믿습니다. 기뻐하는 자리를 뺏는 슬픔의 자리에서 도망을 해야 합니다. 그 자리 계속 앉아서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나를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자리에서 나를 도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천국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뭐하시겠습니까? 골라내는 작업을 하십니다. 고기를 다 잡은 후에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 편에 이 좋은 고기가 누구입니까? 전쟁을 잘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그 복을 누릴 수 있는 자입니다.

 

무슨 전쟁을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의 삶의 문제에 하나님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요, 그 문제를, 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그 문제에 경계를 하면서 그 문제를 이길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군사들입니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씁니다.

 

어떻게 300명가지고 18만 명을 이깁니까? 이길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많은 적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떻게 그것을 얻어? 어떻게 그것을 할 수가 있어?’ 이 생각을 하는 이 두려움 자체가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으로 이미 뽑혔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 있어도 이미 뽑혔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가 자기가 만드는 자리에서 도망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전쟁을 해서 이기는 자만 도망을 합니다. 300명으로 이길 수 없는 자를 이겼습니다. 적들의 것을 다 뺏어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 탈취가 있습니다. 우리 차례인 줄로 믿습니다.


원문보기 : http://cafe.daum.net/djrainbow153/Jo8z/681

출처 : 마지막때 계시록 진리를 사모하는 자를 위한 모임
글쓴이 : Hell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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