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마음 영의 마음
혹자는“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이지만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들’이며 많이 흔들립니다. (약 1:8)
성경은 우리 안에 두 마음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모든 인간은 자신의 자아인 육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영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이 두 마음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육의 마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부부는 사탄 루시퍼의 정신을 따르는
‘육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묻자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하와 핑계를, 또 하와는 뱀의 핑계를 대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게 잘못을 전가하려 했습니다. 이는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께 잘못을 전가시키는 사탄의 정신입니다.
아담 부부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양심이 그들을 두렵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겸손히 잘못을 비는 대신 양심을 누르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핑계하는 정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다른 이유롸 변명으로 두려움을 덮으려는 정신이 육의 마음인 자아요
교만이요 자존심 입니다. 이런 육의 마음은 선한 양심을 누르고‘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옵니다.’(롬 7:23)
하나님께서는 육의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롬 1:28) 두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엡 2:1)
그러므로 육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싶어하지 않으며 또 지킬 수도
없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 육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룩하게 살 수도 없을뿐더러 노력을 해도
되지도 않습니다. 이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탄에게 세뇌된 육의 마음(자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각도가 달라
집니다. 하와가 거짓 진리를 받아들이자 선악과 열매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인 것처럼 세상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요 기만입니다. 자기 기만이 위험한 것은 자기가 기만
당한 것을 모른 채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이 전부라며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합니다. 마귀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지게 만들어 이 세상을 즐기다 죽으면 끝이라고 기만합니다.
사탄 루시퍼는 하와에게 하나님 말씀을 살짝 비틀며 의심하는 마음이
들게 유도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인본주의 지식과 철학과 과학은 이미
정립된 진리나 이론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들입니다. 의심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물론 좋은 성과를 거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마귀가 성경마저 의심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의심하거나 수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거짓 오류들을 새로 발견한 진리인 양 제시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새로운 진리라는 오류를 분별해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사탄이 쓰는 계략을 정리해 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죄는 구원과 상관 없다는
이론을 펼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다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핑계하는 정신을 나타내며 이웃을 비난하게 만듭니다. 또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과 불공평과 패악은 하나님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 시킵니다.
세뇌된 자아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 세상에 미련과 집착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자존심과 교만을 부추겨 하나님처럼 살수 있다고 기만합니다.
성경말씀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의심하게 만들어 불신자를 양성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탄의 정신인 육의 마음 입니다.
이 외에도 많지만 지면상 그치고 이제는‘영의 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영의 마음’은 내 스스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또 사탄의 마음인 육의
마음을 조금씩 개선해서 영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 에서 나오는 것이 영의 마음이고
육과 혼에서 나오는 것이 육의 마음 입니다. 곧 성령과 사탄의 영역이 서로
다릅니다. 이 둘은 서로 원수지간 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적 전쟁을 위해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사탄을
물리칠 것을 창세전에 계획하셨습니다. 사탄이 이루어 놓은 세상에서 아주
불리한 조건에서 쟁투를 계획하셨고 천사들도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노예로 육의 마음이 된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의 영을 살려 영의 마음을 주시는 역사가 구원사역 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잘 깨우친 자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 되기를 기뻐 하시느니라”(골 1:20)
우리는 본성적으로 영의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셔야 합니다.(시 51:10) 곧 성령님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영의 마음이 생깁니다.(고후 5;17) 이 영의 마음은 '세상과
벗이 된'(약 4:4) 곧 하나님과 원수 된 육의 마음을 죽여갑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5-9)
육의 마음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우리가 왜 세상과 자아를
버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육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계명을 지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육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는 자기 잘못과
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 회개하는 은혜가 임합니다. 이런
회개의 마음이 드는 사람은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자입니다.
우리는“전에 너희가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골 1:21)
자들이었고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2-3) 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급히 서둘러 주님 앞에 엎드려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느 부모보다도 더
성령을 선물로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다정다감한 분이십니다.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단 하나 주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겠다는
진정한 선택과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육의 마음인 세상과 내 자아를
버리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육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려고 합니다.
더불어 그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 된 마음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게다가 이 육의
마음으로 자신은 거듭났고 구원 받았다고 말합니다. 너무 참담한 착각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의 마음이 나를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 또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거듭나 영의 마음을 가지면
그 상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 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기고 다 내버릴 수 있었던 것입나더,
글을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합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만든 시스템이고 육의 마음은 사탄의 정신을 따르는
자아입니다. 곧 세상과 자아는 사탄의 작품이며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벗(친구)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것입니다.(약 4:4, 롬 8:7)
즉 육의 마음은 세상의 친구이며 바로 사탄 마귀의 친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의 마음을 개량해서 영의 마음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곧 사탄을 개량해서 의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영의 마음은 혼이 아니라 죽었던 나의 영이 성령과 합하여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피조물(창조물)이 갖는 새롭고 정한 마음입니다.( 고후 5:7,시 51:10)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은 서로 원수지간 입니다.
영의 마음은 세상과 자아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이것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이 계획한 새로운 마음입니다.
사탄이 고소한 내용은, 천사들이나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정신적 사상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고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탄의 정신이 잘못인 것을 가시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육의
물질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고소는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들은 불완전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법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잘 살 수 있다' 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은 패망의 길이다 모든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야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있다' 입니다. 이 쟁투는 곧 끝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탄의 정신을 실현해 보도록 허용하셨고 사탄은
육의 마음으로 세상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 결과로 세상은 보시다시피 패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육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각종 미디어에서 실시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은
자기 잘못(죄)을 겸손히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봐라!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독재자임으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라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핑계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세상에서도
누가 누구에게 이렇게 억지를 쓰며 뒤집어 씌우면 참 황당하다고 합니다.
이 사탄의 억지를 무너뜨리고 사탄이 쥐 구명을 찾게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영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이들은 뱀의 머리를 짓이기는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중요한 일인지 아십니까? 이들은 하늘과 하늘들에 거하는 거민들의 질서와
안녕과 행복을 영원히 지속해 주는 시금석들이요 교과서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한 영혼이 영의 마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쁨으로 환성을 지르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특별히 신실하다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이
예외 없이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대신 간절히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라고 세 번씩이나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간절히 간구하는 자에게만 주시기로 작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 상점에 걸어놓은 글귀 중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은 외상 불가지만 내일은 외상 허용” 내일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저하며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결단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육의 마음을 버리시기로 우리 모두 결단하시지 않으시렵니까?
송전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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