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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만난사람들

[스크랩] <나의 간증 미국 생활 #2 >.

샤론의 수선화 2012. 4. 7. 22:37

<나의 간증 미국 생활 #2 >.


교통 사고....나의 목슴이 끊어지다....


감사한 목사님의 소개로 창문 블라인드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인종차별이 엄청 심한 공장이었지만 아기와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일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자는 아기를 추운 겨울새벽에 깨워서 아기를 돌봐주는 기관에 맡기고 7시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또 3시에 끝나면 아기를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와 아기를 돌봐야 했다..

아기를 돌봐주는 곳에 돈을 지불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생활비는 100 불.
그것으로도 한달 먹을 것을 구입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사장님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들보다 두배 더 열심히 일하고 3개월만에 자재 목록을 외웠다는 이유로 인정을 받아 공장 직원들이 만든 물건을 오더내용과 일치하는지 줄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이즈를 확인하는 검사장으로 승진을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첫직장이다 보니 너무나 소중한 마음으로 정말 내 회사처럼 아끼며 일을 했다..

그러던중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병원에서는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데 남편의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데도 아무도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돌봐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제일 큰 누나 빼놓고는 모두 마약 중독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알콜 중독에 빠진 남편과 큰누나만 정상이었지만 큰누나도 가정 형편상 돌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생활비가 100 불 밖에 없는데 어떻게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를 모시나 고민을 했다.. 그러나 마음가운데 나도 이렇게 고통을 받았었는데도 주님이 굶주림에서 구해 주셨는데 내 입장만 생각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 어느 자식들도 병원에 계신 불쌍한 시어머니를 찾아가질 않았다..

나는 매일 공장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아기를 씻기고 밥을 먹인후 시어머니의 빨래와 음식을 준비해서 병원을 찾아가 병간호를 해드렸다..
몸은 피곤했지만 시어머니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자식들도 버린 시어머니의 인생이 가여웠다..

병원에서 퇴원하셔야 한다는 마지막 통보를 의사에게 받은 것도 나혼자였다.. 시어머니의 보호자는 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남편과 상의도 없이 시어머니를 당연히 집으로 모셔왔다.
남편은 나의 그런 행동에 분을 느끼고 오히려 더 밖으로만 돌았다..

시어머니를 매일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을 갈아 입혀드리는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시어머니는 심각한 비만증에 걸려계셨기 때문에 남자 네명이서 들어야 들릴 정도로 몸무게가 많이 나가신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치매가 오셔서 늘 똥을 아무데나 뭍히시고 하셨지만 이상하게도 난 짜증이 나질 않고 그저 시어머니가 가엽기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약값이었다... 한달에 100 불 가지고는 생활비와 시어머니의 약값을 충당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또다시 굶어야 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생활이 되질 않아서.. 오래전에 시어머니와 이혼하신 시아버지가 건축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아버지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더니 선뜻 주말에 할일을 주셨다..

나는 일주일 내내 3시간 자고 공장일과 아기를 돌보는일 시어머니를 돌보는일을 하며 일을 했고 주말에는 건축현장에 나가서 노동일을 했다.. 페인트 칠. 벽돌 나르는일,, 나무 자르는 목수일,, 석고보드를 벽에 세우는일등...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피곤해서 주일날 교회를 빠지게 되었고.. 나의 머리속에서는 점점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일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한국 모 일간지에서 기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접했다..
나는 워낙 글쓰는 일을 좋아했기때문에 그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 나에게 어릴적 나쁜짓을 한 사람들 처럼 범죄자들을 고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그 일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월급도 지금 하는 일보다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대학 졸업자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일단 떨어질때 떨어지더라도 면접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그 신문사를 찾아갔다.. 가기 전에 기도가 나왔다... 주님 제발 제가 그 신문사에 취직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성공하게 해주세요 라며.... 이렇게 나는 간사한 사람이었다.. 필요할때만 기도하는....

면접을 보러 갔더니 사장님이 대뜸 내게 대학도 않나왔는데 신문사에서 일할 생각을 어떻게 하고 오셨어요? 그러시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장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씀 드렸다... 무조건 가르쳐만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일을 다 배울때까지는 월급을 않주셔도 됩니다.. 그저 가르쳐만 주십시오.. 라며 애원하다 시피 했다.... (솔직히 진짜 월금을 않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스쳐 갔지만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사장님이 그런 나를 보시더니,,, 패기가 맘에 든다며 월급 없이 기자를 옆에서 돕는 수습 사원일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다음주 부터 신문사에 나간다고 시어머니께 신이 나서 말씀을 드렸다... 시어머니는 내 얘기를 온전하게 알아듣지도 못하시는데도 그저 신이 나서 어머니 저 신문사 취직했어요~~ 하면서 귀에다가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나도 잘 알아보지 못하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시더니 지갑을 열고 체크 (은행 수표) 를 꺼내시고 거기에 8500 불 이라고 적으시고 내게 주시며 말씀을 했다... Jean ... 이것은 내가 평생 식당에서 일하며 않먹고 않쓰며 모은 돈이다... 가족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고 이것으로 자동차를 구입하거라.... ㅠㅠ

사실 집에 덜덜거리는 오래된 차 한데만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 차를 번가라 타면서 다니기에 불편이 많았는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시어머니께서 내게 차를 구입하라시며 평생 모으신 돈을 건내 주시는거였다... ㅠㅠ

나는 그런 시어머니와 부등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께요 라며...우리 시어머니 빨리 낫게 해주세요라며.. 시어머니를 껴안고 울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평상시에는 교회도 않가고 기도도 않아다가 급하면 기도하고 또 감사한일이 있으면 기도하니... 나의 철없는 신앙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어렸다....

신문사에 출근해서 하는일은 기자들에게 커피를 타다주는일,, 40 명이 넘는 직원들의 점심 밥을 하는일,,,,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신문 편집을 손으로 하는데 종이를 자르는 일 등 잡다한 일을 시작했다... 거의 매일을 밤을 새우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중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필라델피아 내가 사는 동네로 자신의 대학에 있는 여자 친구와 사춘언니가 유학을 가는데 있을 곳이 없으니 우리집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나이에 미국에 와서 친구도 없었던 터라 내가 힘들 것 같은것은 생각도 없이 그저 반가워서 오라고 했다...

그 두친구와 시어머니와 아기와 가끔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살만한 공간은 않되지만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이 친구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우울증에 걸리기 시작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이제 갓 대학생들이니 매일 예쁘게 치장하고 학교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지만 나와 대화를 나눠 주고 놀아줄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매일 일을 해야 했고 또 집에서는 몸이 아프신 시어머니와 아기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틀밤을 신문사에서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 이 친구들이 자신들이 매일 타는 학교가는 버스를 늦잠을 자서 놓쳤으니 학교를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틀밤을 세워서 도무지 졸려서 운전을 할 수 없으니 택시라도 불러서 가라고 권유했지만 이들은 계속 날 졸라댔다... 그냥 우리만 데려다 주고 와서 자면 되잖아.. 하면서... 그런데 그들의 학교는 내가 사는곳에서도 40 분이나 운전하고 가야하는 곳에 있었다...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도 없는데 학교를 데려다 달라니 한숨이 나왔지만 알겠다며 함께 학교를 운전하고 갔다.... 갈때까지는 그래도 이 친구들이 옆에서 재잘 거리니까 괜찮았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운전하고 오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20 중 충돌 대형 교통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내 머리를 잡고 누군가가 내 얼굴을 콩크리트벽에 매우 새게 때리는 것처럼 얼굴이 쾅~ 하고 어딘가에 매우 새개 부?히는 느낌이 었다... 눈은 감고 있는데 머리가 얼얼하고 아무런 정신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내 귀에 싸이랜 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렸고 무슨 쇠덩이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크게 들렸다... 소방관들이 운전석에 찌그러진 문을 자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귀에 소리만 아득하게 들렸다..

문이 철커덩 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왼팔에 심하게 찢어지는 통증이 몰려왔다... 소방관은 나에게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Wake UP~ Wake UP~~ Can you hear me~~~~ 하면서 내말이 들리십니까~~~ 하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고 어디선가 멀리서 군중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차는 완전히 깡통 찌그러지듯이 작게 찌그러져서 나를 차안에서 꺼내는데도 차를 분해 해야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나는 엠뷰란스로 옮겨지기 위해서 들것에 눕혀졌는데 왼팔이 너무나 아팠지만 졸음이 쏟아져서 비봉사몽이었다... 그러던중 누군가 내 팔을 수건같은 것으로 꽉 묶는 것이었다... 나는 그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 또 기절을 했다...

조금 있다가 누군가 자꾸 내 얼굴을 심하게 때렸다... 나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졸려서 그 사람이 나의 얼굴을 때리는 것이 귀찮았다...
눈을 떠보니 엠뷰란스 안이었는데... 미국 남자 간호사가 내 뺨을 심하게 때리면서 말을 걸었다... 일어나세요 잠들면 않되요~ 하면서 소리를 질러댓다... 나는 갑자기 시베리아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것처럼 심한 추위를 느끼며 내 몸이 침대가 덜컹 거릴정도로 발작이 일어났다.. 나는 추워요~ 하면서 아주 약하게 심음하듯이 그에게 춥다고 애기를 했고 그 사람은 내게 이불을 덮어 줬지만 나의 몸을 계속 발작을 일으키듯이 덜컹 데면서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이사람이 내 머리에 따뜻한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여...이 가여운 어린 여인을 천국으로 데려가 주소서."..... ㅠㅠ

나는 순간적으로 문득 생각이 돌아왔다.. "아니 내가 죽는다고? 어? 그럼 집에 있는 아기는 어쩌지? 아들은 엄마가 지금 죽는 줄도 모르고 있을텐데..어? 가서 엄마 간다고 인사하고 와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오른 팔로 그사람이 내 이마에 얹은 손을 치우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손으로 나도 모르게 내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잡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버지... 저 지금 가나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토니 한테 엄마 간다고 인사만 하고 올께요... 네?,,,,ㅠㅠㅠ 하면서 하나님께 사정을 하듯이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며..... 아들에게 인사만 하고 가겠다며..... ㅠㅠ


그리고 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렇게 숨이 끊어졌다......


(# 3 편으로) ........

다음 편에서는 숨이 끊어진 이후의 일을 소개 하겠습니다....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로 돌립니다...

출처 : Jean 의 골방
글쓴이 : Jean H Cumming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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