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년전 저희 어릴만해도 교회가면 천국과 지옥 재림에대한 복음의 본질적인 주제에 대한 설교를 어느교회에서든 심심찮게 들었었는데 마지막때라 그런지 영혼을 각성시키는 이러한 설교듣기가 참 어렵네요
성령께서 안타까운 마음을 주시기에 글을 게시해봅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재림신앙의 설교가 교회에서 사라진 이 마지막 시대에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변질된 한국교회에서 종교생활하고 있는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의 영을 깨우기 위한 말씀!!!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와 함께 게시합니다.
[지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상을 아시나요?]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 글에는 지옥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지옥의 영혼들이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 환상 가운데 본 지옥의 실제 모습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 책의 일부 내용을 옮겨온 것이니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서라도 이 글을 꼭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지옥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영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의 간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소개할 내용은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조사한 결과입니다.
이분은 원래 사후의 세계를 믿지 않았으나 심장병 환자 중에 죽었다가 소생술로 깨어난 환자들을 면접 조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2백여 명의 소생 환자를 면접했는데, 이들의 체험담은 개별적으로 약간씩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공통점이 있었고, 또한 극단적인 두 가지를 증언했습니다.
우선, 죽었다가 깨어난 모든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사망 직후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무엇에 이끌린 듯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그 다음엔 극단적인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한 그룹은 꽃향기가 그윽하고 매우 아름다운 드넓은 초원 같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직 올 때가 안 되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지요. 다른 한 그룹은 아주 컴컴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 곳에 갔었는데, 그들도 "때가 안 되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의 기억이 하루쯤 지나면 희미해지고 이틀 뒤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면접 조사의 결과 보고서에서는 "경험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어둡고 검은 세계를 보았다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반면, 밝고 환한 빛과 향기를 맡았다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안도합니다. 그래서 내세는 뭔지 아직 모르지만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로 나눠져 있고 그것이 천국과 지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내세에 대한 또 다른 자료로는 호스피스 봉사를 20년 가까이 하면서 약 6백 명의 말기 환자들을 돌보아 온 우리나라의 한 간호학 박사님의 수기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호스피스'란 주로 죽음에 직면한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그들의 신체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정신적인 안정을 도모하여 평온한 죽음을 맞도록 간호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말합니다.
그러면 말기 환자들이 임종 과정에서 두 세계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그 중 골수염이 폐와 뇌로 전이되어 불치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에 의뢰된 15세 소년의 경우입니다. 평소 질병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소년이 하루는 아침부터 하늘을 쳐다보면서 웃고 놀라워하더니 엄마에게 "저기 옆에 빛나는 분이 누구세요?"라고 물었지요. 엄마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자, "나는 천국 가는데 엄마는 지옥 가겠다." 하면서 엉엉 울더라는 것이지요.
이에 당황한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아, 저거 말이니?"라고 하자, 엄마도 보는 줄 알고 신이 난 아이는 하나하나 설명하더니 "엄마, 저거 보았지요? 나 먼저 갈 테니 나중에 오세요." 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평소 아들을 간호할 때는 늘 눈물을 흘렸던 엄마는 장례식에서 오히려 밝고 환한 모습으로 조문객들에게 "우리 아이는 천국에 갔어요."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안함 가운데 오히려 기뻐하며 임종을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돼! 안돼!" 소리지르며 숨을 거두는 사람도 있었고, 밤이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허깨비 같은 게 보인다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저으며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박사님은 약 6백 명의 환자를 돌본 결과, 이처럼 임종 과정에서 다른 세계를 보는 일은 당연히 겪는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 장갑을 끼었다 벗으려면 손이 빠져 나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임종 과정도 대개 2, 3일 또는 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때 잠깐 영의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임종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코로 긴 한숨이 빠져나가는 것을 목도하노라면 실존하는 영을 확인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며 생명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요 그 다음은 분명 내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지옥은 정말 무섭고 두려운 곳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지옥의 참상
지옥은 어둡고 습하면서도 불길이 끊임없이 지글지글 타오릅니다. 스산함과 불쾌함이 소름을 돋게 하며, 끊임없이 때리고 찌르고 찢는 고문으로 인해 영혼들은 쉼 없이 비명을 지르며
신음합니다. 눈이 있어도 눈이 있는 것이 아니요, 입이 있어도 입이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어도 손발이 있는 것이 아닌 고통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팔다리가 한 번 잘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생명이 다해 죽으면 그만입니다. 또한 기절이라도 하면 잠시나마 극심한 고통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팔, 다리, 목 등 그 어느 부위를 베어낸다 해도 다시 붙습니다. 피를 흘리고 또 흘려도 다함이 없습니다. 고문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으스러지며 장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도 잠시 후면 원래대로 회복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고문이 시작됩니다. 형벌이 되풀이 되고 또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의 쉼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귓전을 울립니다.
지옥에서 감당할 수 없는 형벌로 괴로워하며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까?’ 고민하지만, 실낱같은 희망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참혹한 현실과 더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과 유황의 지옥뿐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결국 불못 또는 유황못에 떨어질 것을 압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이들에게는 고문으로 인한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가중됩니다. 이곳도 이렇게 괴로운데 저 불 속은 어떨까?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견딜까,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왔을까 후회하고 또 후회할 뿐입니다.
잠언 14장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했고, 잠언 16장 2절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를 선, 사랑,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악한 것, 비진리인 것이 많습니다.
더구나 말세가 가까워 어둠이 짙어질수록, 영적인 소경이 많이 생겨나는데, 이들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참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어둠 속에 살다가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온 것처럼,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은 찾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어둠 가운데 살다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보다 더욱 중한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대로 살지 않은 죄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7~48절 전반에 예수님께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매우 중한 죄를 범한 영혼들은 3, 4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한 영혼들, 양심에 화인 맞은 영혼들,
성령 거역·모독·훼방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한 영혼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첫 번째 단계의 형벌은 생략
두 번째 단계의 형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 속에 아랫음부에 있는 한 영혼의 고백을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 이 영혼은 아랫음부에서 당하는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려드릴 때 많은 것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더러운 짐승과 벌레가 있고 냄새 나는 이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나이다. 이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 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 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내가 어찌해야 하나이까. 심히도 두렵고 무섭고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나이다. 달리고 달려서 ‘숨을 곳은 어디 있나, 어디 있나?’ 둘러보아도 캄캄하며, 아무것도 없으며 내 이 몸 하나 피할 곳이 없음이니이다. 나를 뒤에서 긁나이다. 내 팔을 물어뜯나이다. 내 피부를 벗기나이다. 내 힘줄을 먹나이다. 내 피를 빨고 있나이다. 내가 지금 이 고통과 괴로움 중에 있다가 훗날에는 불못에 떨어지나이다. 나는 어떡하나이까. 나는 어떻게 하나이까. 내가 주를 믿지는 않았으나 세상에 있을 때에는 나도 선하게 살아왔다 생각하던 자이니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야 내 악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니 내가 얼마나 후회가 되고 후회가 되는지요. 정녕 나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선하다 하고 자기가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곳에 온 자가 많이 있나이다.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여 여기서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자가 많이 있나이다.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훤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며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아랫음부의 형벌 두 번째 단계는 벌레, 새, 짐승 등 동물에 의해 가해지는 형벌입니다. 벌레에게 물리거나 피를 빨리고, 징그러운 짐승이나 새의 형상을 한 것들에게 물리고 찢기고 쪼이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 단계의 형벌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했던 애굽의 왕 바로가 받고 있습니다.
그가 받는 형벌은 2단계 중에서도 비교적 심한 형벌로서, 그 고통은 3단계 형벌의 고통에 가깝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지시를 받고 애굽 왕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예로 부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애굽에 재앙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하수가 피로 변하는가 하면, 개구리, 이, 파리 떼가 들끓습니다. 악질과 독종이 퍼지기도 하고, 우박의 재앙, 메뚜기의 재앙까지 임했습니다.
재앙이 임할 때마다, 바로는 당장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그치면 번번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결국, 온 나라 안에 장자가 죽는 재앙이 임합니다. 각 가정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고, 바로의 장자마저 죽습니다.
그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냅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마음이 변개하여 군대를 보냅니다. 군대가 추격해 오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뒤쫓던 바로의 군대는 갈라진 바다에 따라 들어갔다가 홍해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방의 왕들 중에도 마음이 선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경배하며 겸비했던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열 차례 이상 경험하고도 끝끝내 강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 온 나라는 피폐해졌고, 바로는 장자를 잃었습니다. 군대를 몰살시키는 바람에 병력도 축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바로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해 들어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주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가정이나 일터 등에 임하는 각종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바로처럼 지옥에 떨어져 끔찍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가 아랫음부에서 받고 있는 형벌은 어떤 것일까요? 그는 더럽고 악취 나는 물웅덩이 속에 갇혀 있습니다. 물론, 이 웅덩이에는 비슷한 죄목을 가진 영혼들이 많이 갇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환경오염으로 인해 잠시 손만 담가도 피부병에 걸릴 정도로 더러운 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보다 훨씬 더러운 물 속에 온몸이 푹 잠겨서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속에는 뭔가 꾸물꾸물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구더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몇 배나 큰 희끄무레한 벌레들입니다.
이 벌레들은 물웅덩이 속 영혼들에게 달려들어 부드럽고 연한 부분부터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먼저 눈을 갉아먹고, 뇌까지 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피부를 파고 들어가 신경조직을 갉아먹고, 뱃속으로 파고들어 오장육부를 갉아먹습니다. 심지어 날카로운 입으로 뼈까지 갉아들어가 그 속의 골수를 빨아 먹습니다. 매우 굶주린 듯 격렬한 기세로 온몸을 갉아대는데, 살갗에서 시작해 서서히 안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민감한 부위를 갉아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의 말단 신경은 매우 민감해서, 조금만 자극을 가해도 큰 통증이 전달됩니다. 그런데 온몸의 신경을 날카로운 입으로 갉아먹는다면 얼마나 통증이 심하겠습니까?
이 땅에서도 사람이나 짐승이 심한 피부병을 앓으면, 헐어서 진물 나고 피가 흐릅니다. 심지어 그러한 피부에 구더기가 우글우글 번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더기 한 무더기가 꾸물꾸물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합니다. 만지는 것은 더더욱 싫어합니다. 그런데 아랫음부에서는 이러한 벌레들이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징그럽고 소름이 돋습니다. 게다가 이 물웅덩이에 갇힌 영혼들은 이런 징그러운 벌레들이 온몸을 갉아대도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영혼들은
벌레에 온몸을 갉아먹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온몸을 먹혀 ‘이제 끝인가 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벌레가 갉아먹은 부위들이 재생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벌레가 달려들어 눈 같은 연한 부분부터 시작해 온몸 깊숙이 파고 들면서 민감한 조직들까지 갉아먹습니다. 이 고통은 심판 후 불지옥에 들어갈 때까지 반복되고 또 반복됩니다.
이 밖에 사나운 짐승들에게 찢기고 먹히는 등 짐승들에 의한 형벌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이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에게 공격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강한 이 짐승들은 사람들을 움켜쥐어 뼈를 으스러뜨리거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살점을 뜯어냅니다.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산 채로 살점과 장기를 뜯어먹거나, 뼈까지 씹어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을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세 번째 단계의 형벌
지옥에서 당하는 3단계 형벌은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형태의 형벌입니다. 3, 4단계 형벌은 1, 2단계 형벌을 받는 영혼들보다 죄질이 훨씬 나쁜 영혼들, 심히 악을 행한 영혼들이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성령을 받고 큰 은혜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한 영혼들,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고 성령을 훼방하며 온갖 악을 행한 영혼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3단계 형벌은 1, 2단계 형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지옥사자는 벌레나 짐승 같은 생물과 달리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입고 있으며,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능가하는 고도의 사고력과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큰 고통을 줄까’ 궁리합니다.
갖가지 고문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한 더 잔혹하고 끔찍하게 고문하는 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 형벌과 지옥사자들의 잔악함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인류의 역사 속에 실제로 있었던 끔찍한 고문과 고문 방법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인권의식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신분 질서도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강자가 약자를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난폭한 군주들은 누군가 눈에 조금만 거슬려도 그 사람을 잡아들여 잔인하게 처형했고,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고문 방법과 고문 기구, 처형 기법을 동원했습니다.
예를 들면, 뾰족하게 깎은 나무말뚝에 사람을 꽂은 다음 죽을 때까지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형벌을 가하는 모습이 그림으로도 남아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고문기구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Impale, 그러니까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고 전해지는 드라큘라 백작도 사실 이와같은 고문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Judas Chair가 없었다 뿐이지 가하는 고통의 형태는 비슷한 편입니다
고문을 하나의 오락처럼 즐기던 잔인한 군주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즐거움을 더할 목적으로 두 눈알을 빼는 고문이나 쇠 장화를 벌겋게 달구어서 맨발에 신기고 쇠망치로 내리쳐 뼈를 으스러뜨리는 고문 등이 고안되어 실행되기도 했습니다.
군주들은 이러한 고문으로 고통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귀족들은 타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죄 없는 사람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해 거짓으로 자백하게 했습니다. 먼저 눅눅하고 어둠침침한 지하 고문실로 끌고 가는데, 바닥에는 핏자국이 얼룩져 있고 여러 가지 섬뜩한 고문 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먼저 끌려와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고문실로 끌려온 사람은 본격적으로 고문받기도 전에 공포에 질리고 마는 것입니다.
당시에 가장 공공연하게 가해진 고문 중에 하나는 금속 조임쇠 고문인데, 딱 맞게 만든 금속 조임쇠에 엄지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집어넣어 으스러질 때까지 조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이면서 손톱이나 발톱을 하나씩 뽑습니다.
그 다음에는 팔을 뒤로 꺾어서 손목을 묶은 후 공중에 매답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몸이 뒤틀리는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냥 매달아 놓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천천히 하다가 빨리 하면서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매달려 있는 사람의 발목에 무거운 쇳덩이를 매달기도 합니다. 그러면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벌어지면서 전신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용 의자에 앉힙니다. 이 의자에는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물론 등받이와 팔걸이, 다리를 걸치는 부분까지 송곳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이 의자를 보고 놀라서 발버둥 쳐 보지만,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정들이 꼼짝 못하게 붙들어서 의자에 꽉 눌러 앉힙니다. 이때 몸 곳곳에 뾰족한 송곳이 깊이 박히게 됩니다.
비슷한 원리로 만든 사람 형상의 캐비닛도 있었는데, 그것을 철의 여인이라 칭합니다.
철의 여인(Iron Maiden)
중세시대 고문기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 몸에 딱맞는 크기로 제작된 관에 그 내부는 철침으로 가득 박혀 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으며 뭄이 닫히는 순간 온몸에 침이 박히며,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저렇게 관에 여인의 형상이 붙은게 아닌 단순 캐비넷의 형태였습니다. 그러다 후일 의인화되면서 마리아(예수의 어머니) 형상을 따 'iron maiden'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이언 매이든의 특징이라면 구속과 함께 고통을 가한다는 것.
또 심문할 때는 민감한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촛불로 서서히 지지기도 했습니다. 겨드랑이를 태우는 이유는 다른 부분보다 민감하여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이고,
발바닥을 태우는 이유는 심한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단하면서도 고문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용한 방법입니다.
이런 고문을 받은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처형당했습니다.
결백을 주장하며 버텨 보지만, 대부분은 더 강도 높은 고문을 받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고문 방법 외에, 마차바퀴처럼 생긴 사형틀에 죄수를 집어 넣고 돌려서 산 채로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는 처형, 사람을 거꾸로 매단 채 다리 사이부터 톱으로 켜서 죽이는 처형 방법도 있었습니다.
기구 자체의 특성보다는 이 휠이 갖는 공포적인 상징성 때문에 사람들이 무서워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납을 녹여서 펄펄 끓는 납물을 귀와 콧구멍 속에 부어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
사람이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지옥사자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옥사자들은 고문당하는 영혼을 동정한다거나 사정을 봐 주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이러한 지옥사자에게 짓밟히고 고문당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1. 지옥사자가 갖가지 흉기로 살을 저미는 고문
저민다는 것은, 여러 개의 작은 조각으로 얇게 베어 내거나 깎아 내는 것입니다. 생선회를 뜰 때 생선살을 조각조각 발라내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이 고문 장면을 묘사해 드릴 때 여러분이 그 참혹한 현장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이 나무에 묶여 있습니다. 온몸을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꼼짝달싹하지 못하지요.
이 영혼 곁에서 흉악하고 탐욕스런 돼지 탈을 쓴 뚱뚱한 지옥사자가 갖가지 고문 도구를 준비합니다.
지옥사자는 작고 예리한 칼부터 도끼같이 큰 도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고문 도구를 "사악사악" 갈아서 날을 세웁니다. 영의 세계인 아랫음부에서는 도구를 갈지 않는다고 해서 이
육의 세상에서처럼 칼날이 무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악사악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연장을 가는 이유는 바로 고문 직전에 극도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려는것이지요. 고문하기 전에 이처럼 느긋하게 사전 준비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갖가지 고문 도구들이 서로 부딪치며 카랑카랑한 소리를 낼 때, 흉측한 지옥사자가 섬뜩한 소리로 칼을 갈다가 자신을 향해 징그럽게 웃을 때, 이 영혼은 전율합니다.
"이제 저 도끼로 내 살을 베어 낼 텐데, 저 칼로 내 살을 저밀 텐데, 이제 어찌할꼬,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할꼬." 밀려오는 공포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무에서 벗어나려고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단단히 감긴 밧줄이 살갗을 깊숙이 파고 들어 깊은 상처를 낼 뿐, 달아날 길은 없습니다.
지옥사자는 먼저 손가락을 집어 들고 살점을 저미기 시작합니다. 마치 연필을 깎는 것처럼 손가락을 꽉 쥐고는 손끝의 살점부터 베어 내지요. 투둑 투둑 핏덩어리처럼 보이는 살점들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탁, 탁 힘주어 쳐낸 손톱 조각이 여기저기 튀어 날아갑니다. 잠시 후 열 손가락이 앙상한 뼈로 변합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큼직한 연장을 집어 들고는 손목, 팔뚝, 어깨 순으로 저밉니다. 어느새 팔이 피범벅이 된 앙상한 뼈로 변합니다. 다음으로 발과 종아리, 허벅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 다음 배를 저며 들어가면 이윽고 장기들이 드러나지요. 그러면 하나씩 끄집어내서 휙 던져 버립니다.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로 거치적거린다는 듯 뭉클한 장기를 움켜 내어 사정없이 팽개칩니다.
마치 요리사가 생선을 손질하듯 지옥사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살점을 저며 나갑니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영혼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어 댑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더 정교하게 저밀까 하며 다시금 살을 저미는 작업에 몰두하지요. 이때까지 고문받는 영혼은 자신의 두 눈으로 자기 살을 저미고 장기를 끄집어내는 모양을 하나하나 보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예리한 칼날로 살을 도려내니 그 아픔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지요.
온몸을 다 저민 지옥사자는 피범벅 된 칼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 듭니다. 그 송곳으로는 무얼 하려는 것일까요? 이미 이 영혼은 자기가 당할 일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아랫음부로 끌려온 이후로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당했기 때문에 다음 순서를 다 꿰고 있지요. 그래서 두려움이 더욱 가중됩니다. 지옥사자의 손에 들린 뾰족한 송곳은 묶여 있는 영혼의 눈동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다가 마침내는 두 눈에 박힙니다. 지옥사자는 두 눈알 깊숙이 송곳을 푹 찔러 넣습니다. 이렇게 송곳을 박아 놓은 채로 남은 부위, 곧 얼굴을 저미기 시작합니다. 온몸을 저며 냈기에 지금 이 영혼은 붉은 피로 물든 앙상한 뼈 위에 얼굴 가죽만 씌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지요.
지옥사자는 이제 남은 부위, 곧 얼굴의 양 볼과 코, 이마 등 돌출된 부위부터 저미고 귀와 입술도 베어 냅니다. 목에 붙은 살까지 목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깎아 들어가지요.
이렇게 해서 목까지 저미면 형벌의 전 과정이 한 번 끝납니다.
그러나 아랫음부에서 고문의 끝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다음 번 고문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지요. 잠시 후면 원래의 성한 몸으로 돌아옵니다.
방금 겪은 고문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악몽 같은 고문이 다시 시작되지요.
온몸이 한 조각 한 조각 저며지고 송곳이 두 눈동자를 향해 다가옵니다.
대심판을 받은 후 유황못에 던져질 때까지는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교통사고나 산재 등 불의의 사고로 일부 신체만 손상돼도 정신적인 충격을 평생 씻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한 고통을 한두 번도 아니고 쉼 없이, 끝없이 받아야 하는 이 영혼은 더 이상 살려 달라는 애원조차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괴성을 지르며 저항도 해 보고 고통을 참아 보려고도 하지만
나중에는 아픔과 공포에 짓눌려 체념해 버리지요.
혹여 이 상황이 잘 와 닿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부 국가들이 전쟁포로나 점령지 주민 등을
생체 실험한 끔찍한 일이 실제로 있었지요.
즉,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용 생쥐, 혹은 실험용 토끼처럼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생체 실험은 생화학 무기, 즉 전염 병균 등 단시간에 수많은 사람을 죽일 강력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고 하지요. 비밀리에 행했지만
오늘날 이 사실이 피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구성한 책, 영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수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들에게 피 실험자들은 이미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토끼나 생쥐, 파리만도 못한 실험 재료에 불과했지요. 통나무와 같이 여겼습니다. 실험을 당하는 사람이 받는 고통이나 생명의 소중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생체 실험에 대한 자료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과 이런 실험을 자행한 자들의 잔악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요.
이미 인간도 아닌 길거리에 채이는 자갈만도 못하게 취급을 받으며 살육을 당한 한국의 희생자들...
피 실험자들은 실험대에 묶여서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는 모습, 피가 솟구치는 모습을 다 보고 있어야 합니다. 세균에 감염된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저항조차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끔찍한 형벌, 그리고 지옥사자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의 아랫음부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사주하는 존재가 바로 어둠의 영들, 곧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만 보아도, 아랫음부의 형벌을 관장하는 어둠의 영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흉악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적인 존재인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이 고안하는 방법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악랄하게 영혼들을 고문할 수 있습니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들은 영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즐긴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아랫음부를 관장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해도 일정 수위 내에서만 고문할 수 있습니다. 지옥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곳이므로 영혼들의 죄과에 상응하는 형벌만 집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고문 방법을 고안해 내며, 그 잔학성은 극에 달합니다.
2. 입술의 말로 성령을 심하게 대적한 영혼이 받는 형벌
성경을 보면 곳곳에 말조심을 강조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잠언 18장 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지요. 입으로
진리의 말, 선한 말만 내는 사람은 그 입으로 좋은 열매를 먹게 됩니다. 반면에 악한 말을 하고 믿음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입으로 악한 열매를 먹게 되지요.
이처럼 말의 열매는 정확하기 때문에 경솔하게 내뱉은 몇 마디 말로도 큰 환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가족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가족이 사고를 당해서라도 회개하면 좋겠다.” 하고 말하거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이 즉각 사단의 귀에 들어가고 사단은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송사하기 시작합니다. “저가 그 입술에서 낸 말대로 해야 한다.”고 송사하지요. 이 송사가 공의에 맞을 경우 그 말대로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불구가 되는 등 가지가지 고통을 받지요. 만약 이렇게 해서 가족이 회개한다고 해도 굳이 이런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더 좋은 방법으로 구원하실 수 없겠습니까? 얼마든지 더 좋은 방법, 선한 방법으로 가족들을 구원하실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비진리의 말을 하여 연단을 자초하고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회개해야 연단이 빨리 끝날 텐데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도 못하지요. 그러므로 입술의 말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입술에 늘 파수꾼을 세워서 근신하고 절제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름대로 선한 의도로 말했다고 해도 그 말이 진리의 말, 선한 말이 아니면 이처럼 그 말로 인해 연단이 따르기도 합니다. 하물며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고 악한 말로 모독한다면 그 보응이 얼마나 크겠는지요?
더구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것은 곧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때 그 말에 대해 반드시 심문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했지요. 말로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사람은 사단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다가 어둠에 속한 자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지금 말씀드릴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영혼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직분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하나님과 목회자를 지극히 사랑하며 교회와 양 떼를 사랑하는 성령 충만한 일꾼이었습니다. 가족 중에는 불치의 병으로 불구가 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양 떼로서 그와 가족들이 받은 은혜와 축복의 체험들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니 겉으로는 충만하여 여러 직분을 맡아 열심히 봉사했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시험이 오니 미혹을 받아 교회를 떠나고 말았지요. 자녀들이 먼저 사단의 역사를 받았고 이 영혼은 자녀들에게 미혹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 버렸지요. 교회를 나간 후에는 교회를 훼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내뱉은 정도가 아니라 마치 심방하는 것처럼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교회를 떠나도록 미혹했습니다.
심지어 멀리 지방에 있는 성도들에게까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미혹하기에 이르렀지요. 그가 믿음이 작은 연고로 교회를 떠났다 해도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불분명한 사실을 무턱대고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잠잠히 지켜보았을 것이고 무엇이 진정 참인지 분별하려 했겠지요. 그랬다면 그나마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기회라도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혼은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해 입술로 너무 많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보응으로 장차 아랫음부에서 참으로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지요.
이 영혼이 아랫음부에 가면 지옥사자는 가장 먼저 말로 성령을 심하게 대적한 그 입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버립니다. 입의 형태는 사라지고 입이 있던 자리에 인두 자국이 찍히지요.
그리고 그 영혼을 한 사람이 딱 들어갈 만한 크기의 유리관 속에 집어넣습니다. 유리관의 양 끝, 곧 머리 쪽과 발 쪽은 마개로 막습니다. 그 마개에는 쇠로 된 손잡이 같은 것이 꽂혀 있지요.
샴페인 병마개에 박혀 있는 손잡이를 생각하시면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손잡이 하나는 유리관 속 영혼의 머리와 또 하나는 다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관의 양 끝에 지옥사자들이 서서 마개에 달린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돌리면 안에 있는 영혼은 꽈배기처럼 꼬입니다. 꼬이고 또 꼬이다가 어느 순간에 가면 눈, 코, 입을 비롯하여 몸에 난 구멍마다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치 걸레를 쥐어짤 때 구정물이 나오는 것처럼 온몸의 피와 진액이 쏟아져 나오지요.
뼈는 으드득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으스러지며 근육과 피부는 투둑투둑 찢어집니다. 내부 장기들은 부서지고 터져 버리지요. 유리관은 포도주 병처럼 그 몸에서 짜낸 벌건 체액들로 가득 찹니다. 비틀어 짜고 또 짜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상태가 되면 지옥사자들은 그를 잠시 내버려 둡니다. 원래의 몸으로 회복되게 놔두지요.
그러나 그 몸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이 이 영혼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회복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온몸을 비틀고 쥐어짜기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회복되는 그 시간도 결국은 다음 고문을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지요.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면 공중에서는 7년 혼인 잔치가, 이 땅에서는 7년 환난이 시작됩니다. 이 7년이 지나면 천년왕국 시대가 오지요. 천년왕국까지 다 끝난 후에는 인간 경작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최후의 대심판'이 거행됩니다.
먼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부터, 그중에서도 죄가 중한 영혼들부터 형벌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저울로 무게를 달듯 각 사람의 일생을 심판대 위에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저울로 측량하십니다. 말과 행실 등 일거수일투족, 그 악행에 따라 불못 또는 유황못을 판결하시지요.
심판받은 영혼들은 한꺼번에 불못 또는 유황못에 들어갑니다. 아랫음부에서 1단계와 2단계의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불못으로 떨어지고 3단계와 4단계의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유황못에 떨어지지요.
아랫음부의 고문들도 매우 고통스럽지만 지옥의 고통은 아랫음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랫음부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가!' 한탄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벌레와 짐승, 또는 지옥사자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에 던져지면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엄청난 고통에 짓눌립니다. 그저 고통에 반사적으로 펄쩍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고 이를 북북 가는 것 외에는 어떤 것을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9장 47~49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지요.
소금은 맛을 내는 데에도 쓰이지만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마치 더러운 것에 소금이 뿌려지듯이 불못에서는 활활 타는 불길이 쉴 새 없이 죄로 더러워진 영혼들을 덮쳐서 몸을 사릅니다. 불못 속의 영혼들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서 팔짝팔짝 뛰며 몸부림칩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하느라 팔짝팔짝 뛰기도 합니다.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는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와 온몸을 정신없이 흔들며 춤을 추지요. 그러나 아무리 즐겁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힘들어서 뛰기를 멈추고 쉬기 마련입니다.
지옥에서는 즐거워서 뛰는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팔짝팔짝 뛰는 것인데도 뛰는 것을 멈추지 못하지요. 또한 머릿속이 '띵' 하고 울릴 정도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댑니다. 눈동자는 시퍼렇게 번뜩이며 눈의 핏줄이 터져 끔찍하게 핏발이 서지요. 뜨거운 불 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서로 짓밟고 밀치며 허우적대지만 그 뜨거움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벌건 불못은 그 어디나 균일하게 뜨겁습니다. 아무리 덜 뜨거운 곳을 찾아보려고 허우적거린들 그런 곳을 찾을 리 만무하지요. 다른 영혼을 딛고 올라선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하게 뜨겁지요.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옥의 불길은 영원히 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온도가 변함없지요.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 아랫음부의 형벌들은 루시퍼의 주관 하에 그의 능력과 권세로 운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심판 이후의 불과 유황못은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동으로 운행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못 전역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지요. 단 1도의 오차도 없습니다. 또한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대로 이 불은 영혼에게 고통을 줄뿐, 영혼을 죽어 없어지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랫음부에서 몸이 베이거나 벌레에게 뜯겨도 잠시 후 다시 원래대로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지옥에서도 마찬가지로 불에 타버린 온몸이 순식간에 재생이 되지요. 이처럼 몸이 불에 타고 순식간에 회복되기를 계속 반복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혹시 텔레비전 만화나 공상과학 영화 같은 데서 고압전기에 감전된 사람의 몸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본 적이 있으신지요? 감전되는 순간 검은 윤곽 속에 해골의 형태만 보이다가 감전에서 풀리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엑스레이 사진도 비슷하지요.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하면 검은 배경에 사람 몸속의 뼈와 주요 장기 일부만 하얗게 나타납니다. 사람의 몸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요.
이와 비슷하게 불못 속에 있는 영혼들은 육에 감싸져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다가 순간에 육이 불타면서 영혼만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다시 육을 입은 모습으로 보이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가지 모습이 번갈아 보입니다. 이렇게 몸이 순간에 불타서 사라졌다가 다시 회복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지요. 이 뜨거운 불에 온몸이 타버리는 고통은 육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상을 입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벼운 1도 화상만 입어도 화끈거리고 쓰라려서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1도 화상의 고통도 3도 화상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3도 화상의 경우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서 미쳐 버리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고통이 극심하면 그렇게 되겠는지요? 하물며 지옥에서 온 피부가 모두 타 없어지고 근육과 신경, 오장육부와 뼈까지 다 타버리는 고통은 오죽하겠는지요?
이 고통은 단순히 뜨겁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아랫음부에서 지옥사자에게 찢기고 잘리고 찔리며 벌레에게 파 먹히는 고통, 이런 모든 고통이 다 느껴지는 복합적인 고통이지요. 뜨겁고 아프고 아리는 감당할 수 없는 화기에 악에 받친 비명소리만 터져 나옵니다. 더구나 온몸이 불타면 금세 다시 회복됩니다. 그러면 또 타버리고 또 다시 회복되고 이렇게 되기를 무수히 반복하지요. 끝없는 고통이 지긋지긋하고 진저리가 나지만 또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절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일순간조차 안식을 누리지 못한 채 영원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신 후 '지옥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에게도 육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분도 혹 계실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의 경우,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면 그 몸이 신령한 부활체로 바뀝니다. 그리고 최후의 대심판 후에는 온전한 영체로 변하지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은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부활하지를 않습니다. 대신에 최후의 대심판 후 지옥에 들어갈 때 형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육이 입혀집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육을 입지요.
그 전까지 아랫음부에서는 육을 입지 않은 영혼의 상태로 고문을 받습니다. 이 고통도 물론 크지만 불과 유황의 지옥에서는 육을 입은 상태로 형벌 받기 때문에 전혀 다른 차원의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불못에는 아랫음부에서 비교적 가벼운 형벌, 곧 1단계, 2단계의 형벌을 받던 영혼들이 들어갑니다. 그 죄가 더 중하여 3단계, 4단계의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 양심에 화인 맞아 마귀의 사주를 직접 받아 하나님을 대적한 영혼들이지요.
그렇다면 불못과 유황못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불못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반면에 유황못은 붉은빛보다는 누런 유황빛이 돕니다.
누런 유황빛이 도는 유황못 여기저기서 큼직한 바가지만 한 기포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요.
불못에는 반신만 잠긴 영혼도 있었지만 유황못에서는 그런 영혼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펄펄 끓는 유황 속에 완전히 잠겨 있지요. 이번엔 불못과 유황못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용암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고도 무섭습니다
마치 지옥의 불못 유황못을 닮은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피와같이 붉고 불보다 극렬한 불이 존재하는 용암이 지옥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지옥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증언은 저런 용암보다 더 뜨거운 곳고
광활한 유황못속에 ...머리만 내민 참담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불못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유황못 속에 온몸이 잠겨 있으니 그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뜨거운 용광로에서 녹인 펄펄 끓는 쇳물을 퍼다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마시게 한다고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단단한 쇠를 액체로 녹여 버리는 열기가 사람의 목구멍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갈 때 그 연한 장기들이 어떻게 되겠는지요? 식도와 위는 물론, 심장, 간 할 것 없이 장기들이 녹아내리고 온몸이 타버릴 것입니다. 유황못에서는 이와 비슷한 느낌의 고통이 끊임없이 지속되지요.
불못에서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소리도 지릅니다. 그러나 유황못에서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조차 내지를 못합니다. 거대한 고통에 짓눌려 무엇을 생각할 수도,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없는 곳이 바로 유황못이지요. '뜨거움' '고통' '두려움' '끔찍함' '진저리 처지는 상황' 그 어떤 표현으로도 유황못의 느낌을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이 영혼들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천 년, 만 년도 아니고 수억 년도 아니고 영원히 세세토록 이렇게 있어야 한다면 어떻겠는지요? 지금 지옥의 참상을 들으신 여러분 중에는 이런 참담한 상황에 놓이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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