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 1절 - 2절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 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이때 여기에 있던 지팡이와 갈대는‘자’라는 뜻입니다. ‘자’는 척량을 할 때 씁니다. 척량이라는 것은 정확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이의 척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대해서 척량을 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세상 것은 조금 모자라도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구원도 척량을 하는데 지금 이 말씀이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 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성전이 있다면 성전에 성소하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밖 마당이 있습니다. 여기 밖 마당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척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들어와 있지만 이 사람들은 척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당에 들어온 사람은 척량하지 말라는 것이 그러면 하나님이 척량을 진짜로 구약성경에서 안했는데 했는가 하는 것을 이사야 1장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아모스 7장 7절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 고 서셨더니
다림줄이라는 것은 ‘척량 자’입니다. 그래서 다림줄이 탁 쳐지는 순간에 그대로 잘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다림줄 밖에 있는 것을 쓸 수가 없습니다. 다림줄 안에 끝나는 거기까지만 쓰는 것이지 다림줄을 넘어간다든지 모자란 것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7장 8절
8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 이니이다 주께서 가라 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다림줄이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림줄이 베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척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밖 마당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은 척량을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척량을 해보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의 척량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척량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이만하면 괜찮아’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4절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합당한 자도 있고 합당하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합당한 자는 하나님의 척량에 합격한 사람들 이라는 것이고, 옷이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있다면 옷을 더럽힌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옷을 더럽힌 자는 척량에 실패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17절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 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런데 소경인데 그들이 말할 때는 본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너는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차이가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네가 소경이라고 척량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생각을 할 때는 나는 소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떠한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이 잘라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척량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이 성전 안에 들어 있는데 그것을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마당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당에 들어 온 자가 아무리 많은 것을 물질로 하나님 앞에 헌금을 하고 열심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지금 말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 척량을 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두 가지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신30: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우리들 앞에 무엇을 두었어요?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내가 네 앞에 두었노니, 그러면 생명과 화가 이것이 우리 앞에 두었다면, 둘 중에 하나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선택을 해야 된다는 것은 척량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의 척량이 있어서 아무데나 갈 수가 없다는 이 소리입니다.
신명기 30장 16장 16절
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말씀 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 나님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것임이니라
고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에 복을 주기 위해서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 즐겁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들었다면 장성한 자로 들었다면 하나님의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자꾸만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면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지 못하는 마음을 줘 버립니다. 그 사람은 영원히‘하나님의 전’에 들어오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그 사람을 그냥 둬 버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셨구나’그 생각이 감사한 것입니다. 척량은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복과 사망의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척량하는 것은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원본보기 http://cafe.daum.net/djrainbow153/Jo8z/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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