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1-2)
지금까지 있었던 구약시대의 두가지 큰 심판의 때를 회상해 봅니다.
1.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중보기도를 통해 받는 부끄러운 구원)
동성애가 관영하여 죄악의 수위가 찰 때까지 찼었던 소돔과 고모라 땅을 불로 멸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의인을 구별하여 가까운 도피성으로 안전하게 들이신 이후에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롯과 어린 자녀 몇명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롯이 의로와서라기보다는 중보기도를 했던 아브라함을 기억해서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간신히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구원>의 예표입니다. (고전 3:12-15)
2. 노아의 방주 때 (믿음으로 받는 영광스러운 구원)
노아의 때 역시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이 식어졌을 때였습니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 8명의 의인을 구별하여 방주에 들이시고 그 이후에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전 지구적으로 높은 산이 다 차기까지 물로 심판을 하시는 전무후무한 홍수였기에 어떤 육체도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먼저 노아에게 보여주시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바다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산 속에서 배를 짓게 하셔서 100년동안 노아를 통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사인(sign)을 꾸준히 보내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함으로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노아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히 11:7)
이 두가지 심판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기 전에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의인을 구별해 내어 안전지대에 두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이와 똑같은 수순을 밟을 것입니다.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마음 중심으로 사랑하고 그분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의인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로로 사용하셔서 또 다시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고 또 가르실 것이며, 마지막까지 샅샅이 살피고 또 살펴서 최후의 이삭줍기까지 다 마무리된 다음에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기 직전, 살전 4:16-17에 명확하게 말씀하신 그대로, 의인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셔서 영원한 안전지대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 후에 (벧후 3장)에 예언된 전무후무한 마지막 대환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은 결코 의인과 악인들이 섞여있는 상태에서 행해지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끝까지 복종치 않는 자들, 그리고 경건치 않은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예비된 심판입니다. (벧후 3:7, 살후 1:7-9)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1~13)
그러기에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오늘 주님 오실 것을 확신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 예수님이 죽으시고 오늘 부활하시고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으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명언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이 죽으시고 오늘 점심때 부활하셨고 오늘 저녁에 다시 오실 것처럼 살으라'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삶>이야말로 재림을 가장 성경적으로 사모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신부의 삶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모든 것이 새롭게 정리가 됩니다. 오늘 저녁에 주님께서 오신다는 믿음으로 산다면 오늘 있게 될 모든 순간들이 마지막 순간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전도하는 그 사람이 마지막 전하는 사람일 것이고, 오늘 형제들과의 교제가 마지막 교제가 되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카톡이 마지막 보내는 카톡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일 때 사람은 그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면서 뜨겁고 후회없이 끝까지 사랑하며 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곰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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