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나에 대한 시선
나를 아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나의 경제적 부실과 무책임한 현실의 상황을 곱지 않은 눈총으로 바라본다.
한때 좋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그것도 세 번씩이나 학교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까지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굳이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느냐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염려요 관심이기도 하다.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겪는 안타까움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염려와 관심의 저변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능력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를 한심하고도 측은히 여기기까지 한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염려 또한 한 몫을 더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라는 말씀은 나 자신을 적절히 안위하거나 합리화하는 변증이 아니다.
변변치 않은 나의 과거 교직 생활을 아직까지 무용담으로 삼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섭리와 인도하심은 물론이요
나 자신에 대한 사명과 비전과 기도마저 무력시키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부정하는 일과도 같다.
이 일에 관한한 아버님은 언제나 질타에 가까운 충고의 말씀이었고 어머님은 오히려 안타까워만 하실 뿐이었으나
결국은 속내를 비추는 결정적인 말씀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학교 소사 자리"라도 알아보라는 염려의 말씀에, 허~걱! 이 석연치 않은 구차하고 묘한 기분은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본연의 자리가 이 세상의 가변적이고도 현실적인 화려함에는 정작 맥을 못추는 것에 대하여
유쾌하지 않은 씁쓸한 감정이 나를 더욱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가족 형제들과 가까운 혈족들에게도 현실의 나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능하기까지 한 사람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 번씩이나 학교에서 근무할 기회마저 불사하고 결국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결행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이는 마치 세 번째 재혼을 하는 사람에게 "어찌하여 그렇게 세 번씩이나 이혼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렇게 질문하는 이에게 "당신은 내가 세 번씩이나 열열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왜 묻지 않는가"? 라고 반문한다.
이런 이야기가 신앙이 없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언제나 나와 같은
신앙적 노선에 서있는 사람들조차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요일5:4)이라는 말씀조차
초라하게 여겨지는 듯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도 능력도 되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 곱지 않은 눈총 너머에는 물질을 다루고 취급하는 목회자들의 목회적 신뢰와 관련된 부분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건강한 물질의 청지기 직에서 일탈된 도덕적 탐욕과 규모 없음은 가장 예민하게 드러나는 적폐이기도 하다.
잇속을 챙기지 아니하고 물질에 초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한 양심으로 돌봄과 섬김의 사역을 위해 마땅히 쓰이게 하는 일이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때로는 세상 친구들을 만나면 슬그머니 초라해지는 현실에 움츠러드는 것이 사실이다.
저들은 퇴직만 해도 연금이 평생 매달 300만원 이상이 나오지만 나는 오늘 하루 교통비 마저 아슬아슬 줄타기하니
씁씁한 처지에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더 많이 인간 노릇하지 못할 만큼의 어려움에는 야코가 죽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물질적 궁핍에 처할지도 모르는다는 예측을 심각하게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러나 직장을 포기하고 돌아설 때는 이미 이보다 더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음에 대하여 충분히 결행하고 떠나온 자리여서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무늬만 빼면 백수나 다름 없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 건강한 삶, 건강한 목회를 하는 분들의 훌륭한 인격과 삶을 본받고 싶다.
어렵지만 어렵다는 것이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을 기도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령하는 일을 위하여 펼치는 사역에 치명적인 무기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날 지구촌에는 아직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전혀 없는 생존적인 부족을 놓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세상은 사자와 기린과 얼룩말들을 보호하면서 이 죄 없는 아이들은 그냥 굶어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걸까요?
아프리카는 정말 신이 잠깐 잊으신 땅일까요?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또 한편, 지구 반대편에서는 오늘날 먹을 것의 종류와 입을 것의 종류에 관한 생활적인 부족을 놓고 고민하며
물질적 풍요와 호사를 누리는 자들이 있다. 세상은 이 일을 위해 살고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 두 부류의 모든 사람들과 겨루며 도전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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