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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구원에 대한 묵상 두번째

샤론의 수선화 2015. 7. 24. 23:58

 

 

 

샬롬! 찬미예수

 

지난주에 '구원에 대한 묵상'이란 제목의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그중 정연복 시인의 글의 표현을 다시 한 번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구원은 하늘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말에 어떤 이는 마치 구원론에 대한 왜곡처럼 오해를 하고 휴머니즘이라 치부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역설적인 표현도 아니고 말 그대로 구원은 하늘로부터 오지 않는 것 맞다.

이 말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에 대한 부인이 아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엡2:8-9)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한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더더욱 명확해진다. 

하늘은 하늘이고 물은 물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일 뿐이시다.

그래서 "예수가 구원자라는 신앙고백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의 표현은 인간의 이성을 높이고 신앙의 실천을 명분으로 인간적인 것으로 상대화시키는 일이라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너무 교리적으로 읽고, 해석하고, 교리적으로 예수님을 알고, 기계적으로 인용을 한다.

참으로 많은 성경의 언어들이 종교화 되어 있어서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에는 너무 익숙하지만

그분을 깊이 "생각하라"라는 말씀과 "바라보자"라는 말씀이야말로 위대한 믿음을 낳는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생각을 멈춘다.

믿음은 생각하는 것이고,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의 본이 되신 역사적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바라보자'는 말에 대하여 '바라다' '본다.'는 말이 합하여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라 했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단어는 교리적인 것이나 율법적인 것이나 명분이나, 어떤 구호나 프로그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Faith), 소망(Hope), 사랑(Love)이라는 명사로서의 단어는 믿음의 역사, 소망의 인내, 사랑의 수고(살전1:3)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존의 삶 속에서 몸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단어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다음의 표현 "인간의 구원은 사람들 사이에서 온다. 서로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사람들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표현들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표현들이다.

"예수는 지상에서 살면서...... 사랑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구원론, 인간론, 교회론, 성령 론 등등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그 본질을 궁구하지 못하고

하나님, 예수님, 기도, 전도 등등의 말만 가져다 붙이면 기본 80점 맞는 식의 답에서 빨리 탈피하여

삶과, 신앙, 믿음의 참 본질을 궁구하는 핵심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문자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고 피조세계 전체의 운명, 역사, 미래에 대한 이야기,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우주적인 구원에 대해 말하는 거대 담론이다.  

성경은 한 개인의 운명과 이해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대한 구원받는 방법을 말하기보다는 성경은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과 삶과 역사를 말하고 있는 거대 담론이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나치게 나 중심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성경을 개인적인 관점으로 읽으면 성경이 왜곡되기 십상이다.

물론 그 안에는 각 개인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1인칭에 가까운 나를 향한 그 크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애가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수밖에 없는 감동과 감격의 러브 스토리임에 틀림이 없다.

 

결국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 그 자체로 끝나거나 최종적인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그 이후에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누리며 우리로 그분의 놀라운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다. 

우리가 그 은혜의 풍성함을 알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풍성한 구원의 영광에 대하여 에베소서만 묵상해도

참으로 놀랍고 위대하고 영화롭다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글이 자연스럽게 우리가 누리는 구원론에 대한 바르고 건강한 성경적 통찰을 필요로 하기에

이에 대한 나눔과 소통이 몇 차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구원에 관한 글을 몇 차례 더 게제하겠습니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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