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여러 면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지만, 이삭을 제물로 바칠 뻔했던 일을 제외하고는 화가와 작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깃거리를 거의 제공하지 못했다. 그를 다룬 영화도 별로 없다. 1966년의 「천지창조」가 거의 유일한데, 이 영화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창세기 22장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야기를 거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화가들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즐겨 그렸다. 모르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아브라함에 관해 짧으면서도 독특한 책을 한 권 썼다. 그는 아브라함이 그 책을 직접 써서 이집트의 '카타콤'에 감춰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 헤브론의 동굴에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육체적인 조상이자 정신적인 조상이다. 무슬림도 그를 이브라힘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된다. 신이 이교 도시 우르(나중에 바빌로니아가 되며 지금의 이라크 땅이다)에 살던 그를 불러 가나안으로 가서 위대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라고 명한다. 고향을 등진 아브라함은 이때부터 우상 숭배를 그만두고 유일신을 섬기게 된다.
처음에는 신의 약속이 실현되지 못하는 듯했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다. 실의에 빠진 사라는 하녀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게 한다(아랍인들은 그를 이스마일이라고 부르며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신이 약속한 아들이 아니었다. 신은 세 천사를 아브라함에게 보내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라가 임신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사라가 그 말을 엿듣고서 믿지 못해 웃는데 신이 그것을 눈치챈다. 과연 그 예언은 실현되었다. 얼마 뒤 사라는 아들 이삭을 낳는다(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이다). 이삭을 낳을 무렵 사라는 나이가 아흔이었고, 아브라함은 백 살이었다. (신이 보낸 세 천사는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라고도 부른다. 삼위일체를 보라.)
Abraham Father of the Nations - Father of Faiths
Who were Abraham, Isaac and Ishmael?
유대인들이 정신적·신체적 조상으로 간주하는 아브라함은 신에게서 장차 위대한 나라의 아버지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아브라함과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하녀인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그 이름은 "신이 말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뒤 하갈은 콧대가 높아져 주인을 오만하게 대했으므로 사라는 그 모자를 황야로 내쫓았다. 그러나 신의 천사가 그들이 죽지 않도록 도와주었다(창세기 16).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지만 창세기는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도 말한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사회에서 추방된 자를 가리키는 뜻이 되었다. 창세기 16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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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 예언을 전한 세 천사는 악의 도시 소돔의 사정을 살펴보러 간다면서 알려진 대로 악이 들끓고 있다면 도시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유명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은 신에게 만약 소돔에 의인들이 몇 명 있어도 도시를 파괴하겠느냐고 묻는다. 알아본 결과 소돔에는 의인이라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뿐이었다. 천사들의 권유로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파멸을 앞둔 소돔을 탈출한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한다.)
이 유명한 악의 두 도시는 창세기에 나오는 '평지의 다섯 성읍'에 속했다. 아브라함 족장의 조카인 롯은 소돔으로 이주했으나, 소돔과 고모라가 워낙 타락한 탓에 신은 아브라함에게 두 도시를 파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만약 그곳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어찌하겠느냐고 묻자 신은 파괴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인은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신은 두 도시를 파괴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사람의 모습을 취한) 천사 둘을 미리 보내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게 했다. 밤이 되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두 손님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두 손님과 섹스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동성애를 뜻하는 남색(sodomy)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손님들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과 가족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시를 떠나라고 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으로 변한다. 신은 두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파괴했다(창세기 19).
이 이야기는 순전히 전설일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화산 폭발로 파괴되어(그래서 불과 유황이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현재 사해 바닥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실제로 사해 부근의 산은 지금도 소돔 산이라고 부른다.
성서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악이 지배하는 곳을 가리키는 의미로 두루 사용된다. 신약성서의 베드로후서는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이 도시를 파멸로 이끌어갔다고 말한다(베드로후서 2:7~8). 타락한 로마제국의 도시에 사는 그리스도교도들은 자신을 롯에 비유하면서 의롭지 못한 환경에서도 의롭게 살고자 애썼다. 고고학자들이 기원후 79년 화산 폭발로 파괴된 이탈리아의 도시 폼페이를 발굴했을 때, 그리스도교도로 추측되는 어떤 사람이 벽에 새겨놓은 'SODOMA GOMORRA'라는 글자들이 발견되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장편소설 『소돔과 고모라 Sodom et Gomorrhe』에는 일부 인물들이 동성애자로 나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영문 번역본의 제목은 『평지의 성읍들 Cities of the Plain』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몇 편이 있는데, 최고의 작품은 1966년의 「천지창조」다. 그보다 떨어지는 1963년 영화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의 관습을 전혀 말하지 않고 마치 노예제 때문에 두 도시가 타락한 것처럼 묘사한다. 프랑스 작가 장 지로두(Jean Giraudoux)는 그 파멸의 두 도시에 관한 희곡을 썼다. 수백 년 동안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의 명칭은 '소돔법(sodomy law)'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인 조반니 바치는 소도마(Sodoma)라는 별명에 자부심을 가졌는데, 미술사가들은 그 이름을 더 친숙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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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할례의 관습을 가지게 된 것도 아브라함 때문이다. 창세기 17장에서 신은 모든 남자아이가 태어난지 8일이 되면 할례를 받게 하라고 명한다. (아마 아브라함을 포함해 모든 남자 어른도 할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주변의 일부 민족들도 할례의 관습이 있었으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할례에 종교적인 의미를 두었다. 그들에게 할례는 신과 아브라함의 영원한 약속을 상기시키는 관습이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이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 (이 흥미로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사건에 관해서는 이삭을 보라.) 아브라함은 신의 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 이름은 아브람으로, '존경받는 아버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신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게 했다(창세기 17:5). 또한 신은 아브라함의 아내도 이름을 사래(그 뜻은 알 수 없다)에서 '여주인'이라는 뜻의 사라로 바꾸라고 명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은 사제이자 왕인 멜기세덱을 만난 일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또 다른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한 유일신을 숭배했다. 출애굽기는 아브라함이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상황을 기록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애굽기 2:24). 신은 불붙은 떨기나무로 모세 앞에 나타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애굽기 3:6)고 말한다. 고대 세계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으나 모세는 바로 이 불붙은 떨기나무로 나타난 신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했던 그 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선지자 이사야는 신이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사야 41:8)이라고 말한 것을 전한다. 구약성서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신'이라는 구절이 여러 차례 보인다.
신약성서 시대에도 아브라함은 매우 존경을 받았다. 마태는 예수의 계보를 아브라함에게까지 추적해 예수가 유대 조상의 진정한 후손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와 사도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외의 태도를 보였다. 그들 역시 아브라함을 존경했지만, 육체적인 자손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실제로 예수는 자신이 이미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다고 말해 신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요한복음 8:58). 비유대인의 사도인 바울은 여러 서신에서 아브라함의 혈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바울에게 아브라함은 신앙의 위대한 역할모델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갈라디아서 3:6). 이런 생각은 야고보서에서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야고보서 2:23). 성서에서 다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아브라함은 신약성서에 70번 나오는데, 모세를 제외하면 구약성서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이다. 예수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가는 비유를 말했다(누가복음 16:22).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당연히 천국에 있다고 믿었으므로 천국에 가는 것은 곧 위대한 아브라함의 곁에 가는 것이 되었다.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표현은 천국과 동의어가 되었고 찬송가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아브라함을 '올바르게 안내하는 자'라는 뜻에서 하니프(hanif)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독실한 무슬림들은 사내아이에게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많이 지어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권에서는 드문 이름이 되었다. 아브라함을 '유대식 이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그 후 다시 유행했다.) 코란에 따르면 이브라힘은 최초의 참된 무슬림이다. 무슬림들은 이브라힘과 그의 아들 이스마일(이스마엘)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저 유명한 카바 신전을 세웠다고 믿는다.
무함마드는 이슬람교가 이브라힘의 신앙을 유일하게 계승한 참된 종교이며, 유대인들이 그 신앙을 곡해했다고 가르쳤다. 무함마드가 보기에 이브라힘의 진정한 계승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무슬림이었던 것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대결한 오랜 폭력의 역사는 양측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 그 뿌리가 있다. 무슬림 전설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가 발견한 양은 천국에 사는 열 가지 동물 중 하나라고 전한다. 또한 무슬림들은 천국에서도 가장 높은 제7천국을 이브라힘이 다스린다고 믿고 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이스마엘(코란에는 이스마일로 나온다)의 자손이라고 믿는다. 무슬림 전설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신성한 도시 메카에 카바 신전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성서와 달리 코란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일이 아브라함의 총애를 받은 아들이며, 제물로 바쳐질 뻔한 아들이라고 말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도가 의도적으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곡해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황야로 내쫓긴 딱한 하갈과 이스마엘은 여러 회화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프랑스 화가 코로는 「사막의 하갈」(1835)이라는 감동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가장 유명한 이스마엘은 허먼 멜빌의 걸작 『모비딕』에 나온다. 이 소설은 "나는 이슈마엘이라고 한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1800년대에 이 작품을 쓴 멜빌은 독자들이 성서에 익숙하므로 이슈마엘이라는 이름이 성서의 이스마엘처럼 뿌리 없는 유목민을 상징한다는 것을 즉각 알아채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메카의 카바신전에는 운석(隕石)으로 추정되는 직육면체의 자그마한 '카바(kaaba)'가 안치되어 있었다. 무지시대에도 아랍인들은 카바신전을 순례하는 것을 매우 바람직한 일로 여겼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메카에 처음 살았던 사람 아담이 카바신전을 세웠고, 그 뒤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하갈–『구약성서』의 경우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아내 사라의 권고로 아브라함이 맞아들인 이집트 출신 하녀이다–과 같이 그곳에 살았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일이 카바신전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운석은 아담이 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그것은 아브라함이 카바신전을 재건할 때 천사 지브랄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슬람교는 후술하듯이 유대·기독교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슬람교 이전의 카바신앙도 유대·기독교와 얽혀있어 이슬람교와 유대교·기독교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팔레스타인지역의 복잡한 민족관계를 예시해 주는 것 같다. 여하간에 메카는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기 이전부터 아랍세계의 중심지 내지 성지였고, 순례자들이 메카의 카바신전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즈음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으로 아랍사회에서도 우상숭배 같은 낡은 신앙에서 탈피하려는 일종의 신앙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슬람은 그 모두를 이슬람교의 회임(懷妊)과 산고(産苦)로 이해한다. 카바신앙은 물론 다신교적 신앙이었다. 무함마드가 태어날 무렵 카바신전에는 후바르신을 비롯해 다수의 신상이 있었는데, 후일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으로 숭앙된 알라(Allah)도 그 중의 하나였다.
유일신 알라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무슬림들이 다신교적 신앙의 대상물인 카바를 지금도 신성시하고 카바신전을 최고의 성지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함마드가 아랍인들이 숭앙해 온 카바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에 대한 아랍인들의 저항을 완화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즉 무함마드가 전통적 카바신앙과 타협했다는 것이다. 『꾸란』에 "알라께서는 성스러운 카바신전을 사람들의 근거지로 정하시고……"(5:97)라는 구절이 나온다. 2대 칼리프 우마르(Umar)는 "만약 예언자(무함마드)가 당신(카바)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다면 나도 입맞추지 않으리"라고 말해 카바가 하나의 돌덩이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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