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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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스크랩] 원어가 증명해주는 여러분의 구원론!

샤론의 수선화 2015. 6. 21. 15:56



 

구약의 믿는다는 동사 아만138번이 나옵니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예가 창세기 156절입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동사 아만은 사전에서 믿다, 지지하다, 신실하다, 충실하다.. 라는 의미로 번역됩니다.

 

즉 구약에서 믿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머리로 무엇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게 신실하고 충실하게 행동하는 삶을 포함한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는다는 동사 아만의 명사형과 그 용례를 확인하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만의 명사형은 에무나(충실, 견고, 성실)입니다. 에무나는 구약에서 49번 나옵니다.

 

그런데 믿음의 명사형 에무나의 용례가 "일을 맡음, 직분을 맡음,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함, 진실함, 성실"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몇 가지 보겠습니다.

 

[역대상 9:22]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 열둘이니 이는 그 향리에서 그 보계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여기서 [직분을 맡긴]이라는 단어가 믿음을 뜻하는 단어 에무나입니다.

 

역대상 9:26, 역대상 9:31절에서도 에무나가 직분을 맡음, 일을 맡음 등으로 번역됐습니다.

 

계속해 역대하 31:18절에서도 에무나가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명사형 에무나는 거듭 반복하지만,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동의하는 단순한 믿음이 아닌 한 사람의 삶에서 계속 이어지는 충성과 진실 성실이 곧 믿음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이 있으실 수 있겠습니다.

 

김 전도사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고 신약시대다. 그러니 믿음의 적용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혹 그렇게 보신다면 이제 신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단어를 추적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구약의 에무나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는 피스티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240번 나옵니다.

 

거의 믿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럼 헬라어 원어인 피스티스를 잠시 확인해보겠습니다.

 

피스티스에 대한 사전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스티스는 '신실성, 신뢰성'을 의미한다.

 

피스티스는 '엄숙한 약속, 서약'을 나타낸다.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믿음'을 나타낸다.

 

이 역시 용례를 확인하면 믿음이란 단어 피스티스의 본래 의미를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개역성경][딤전 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개역성경][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개역성경][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개역성경][2:10]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개역성경][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개역성경][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 대충의 용례를 뽑아 봤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단순히 피스티스가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고 동의하면 끝이라고 여겨집니까?

 

아니면 삶을 동반한 행함과 분리될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용례는 정확하게 믿음이란 단어 피스티스는 행함과 함께 움직이는 행함의 다른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히브리어의 믿음이라는 단어 에무나도 신약 헬라어의 믿음이라는 단어 피스티스도 모두 삶에서 믿음이 반영되어야 비로소 믿음이 완성될 수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음에 행위는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예를 반박하는 걸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입니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내용은 제가 이미 몇 번 반박한 내용이지만 윗글의 증명을 위해 다시 한 번 변증하겠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구원에 대해 이제 행위는 필요치 않다고 말합니다.

 

과연 옳은 말입니까?

 

100% 틀린 악마적인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인정합니다. 동의합니다. 100% 아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의롭게 해주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를 즐기는 자는 죄의 노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죄를 즐기며 행위가 부정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닙니까?

 

제가 이상하게 해석하는 중입니까?

 

맞게 해석하고 있다는 건 성경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보십시오.

 

[누가복음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태복음 7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이 안 보이고 안 들립니까?

 

그럼... 그렇게 안 보인다면..

 

멀리 안 가고 다시 갈라디아서로 가겠습니다.

 

5장을 보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바울이 뭐라고 썼는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확실하게 보십시오.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바울은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갈라디아서 5장에서 언급한 더러운 행위들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급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버리고 경건과 거룩을 향하는 삶이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예수님을 믿는 산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으로 증거가 나타나야만 합니다.

 

앞서 본 히브리어, 헬라어의 원어도 그를 증명하고 국어 해석인 문맥 해석도 역시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를 대적하는 건 신학이라는 인간의 유전과 전통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신학이라는 유전에 따른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의 편한 길을 갈 것인지

 

성경을 기반으로 한 삶으로 증명해야만 하는 두렵고 떨림의 구원의 좁은 길인지

 

선택이 각자의 몫이듯

 

그 결과에 따른 영원한 불지옥과 영원한 평강의 천국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출처 : 회복교회!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
글쓴이 : 무심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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