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넘게 기술 좋은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면서 크게 속 한번 썩이지 않던 남편의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2000년께 부터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오슬오슬 춥고 만성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더니 체중이 자꾸 줄었다. 임시방편으로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먹었지만 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 같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남편도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다. 일하고 먹고 사느라 바빠 정기적인 건강검진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병원엘 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가까운 동네 내과의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니 “위가 많이 부었다.”고 했다. 며칠 약을 먹었지만 속 아픈 증상은 쉬 낫지 않고 남편은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진찰이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내시경검사를 했다. 위가 많이 부어 있고, 궤양증세가 보인다며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위장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니 조금 낫는 듯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하루는 돼지고기를 먹고 난 후 급체 증세를 보였다. 얼굴색이 노랗게 뜨고, 속이 답답하다고 했다. 다시 가까운 내과의원을 찾아 내시경검사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시경검사다 너무 오래 걸렸다. 혹시 중한 병에 걸렸나하는 생각으로 불안해졌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위암으로 보이는데 보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조직을 떼 내 큰 병원으로 보내겠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주일 정도 기다려 보라는 거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면서 시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란 친척들이 그날 밤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일주일 기다려서 결과를 알고 난 후 서울로 가자고 했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한시가 급했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 종합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입원실이 없었다. 외래로 각종 검사를 하면서 거의 보름 동안을 청주에서 서울로 오르내리며 검사를 받았다.
“위암 말기입니다. 이 정도까지 되도록 내려둬 두시다니···.” 의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정신이 까마득하게 내려앉았다. “선생님, 어떻게 사릴 방법이 없을까요? 수술을 하면 안 되겠어요?” 의사에게 매달리는 방법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글쎄요. 암이 너무 진행되어 있고, 식도 부위까지 암이 퍼져 있어서, 아무래도 일단 수술부터 해봐야 알겠습니다.” 의사는 수술로도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수술을 원한다면 하겠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어쩌다 이런 상태까지 왔는지, 적어도 3달, 길어야 6달을 넘기지는 못할 거라니···. 모든 것이 그간 남편의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 죄인 것만 같아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한이라도 남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수술로 완전히 치료하진 못한다고 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덜 아프고, 먹고 싶은 음식이라도 마음대로 먹게 하고 싶었다.
항암주사를 맞은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했다고 믿는 남편은 열심히 병원에서 처방해준 많은 약을 먹었다. 남편은 늘 통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몸이 회복될 리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음식은 전혀 먹을 수 없어 영양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병원을 멀리 했다. 그 대신 자연의학에 기대를 걸었다. 시동생과 함께 유명하다는 한의원, 암을 잘 고친다는 민간치료원 등 용하다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서 약을 지어 왔다. 그러다가 식이요법에 대해 알게 되어 녹즙과 자연식을 남편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녹즙을 넘길 수 없어 괴로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도 녹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기운 없이 누워만 있던 남편이 식이요법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지나자 기운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사량도 늘어나면서 야위었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산책도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말기 암이 쉽게 나을 병은 아니었다. 위의 통증은 점점 사라졌지만 식도까지 번진 암 때문인지 자그마한 덩어리조차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음식물은 잘게 갈아서 주었다.
그렇게 일 년을 식이요법에만 매달렸다. 남편은 식이요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식이요법을 잘 수행했다. 그러자 3달밖에 못살 거라던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기력을 회복해 갔고 혈색도 좋아졌다. 그러면서 온전하게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남편은 한 번도 자신이 죽으리라는 말을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원래 침착한 성격이었던지라 그 속내야 알 수 없었지만 나나 가족들 앞에서 한 번도 절망스런 모습을 모이지 않았다. 날이 화창한 봄날에는 가까운 산으로 가서 버섯이나 민들레, 질경이 등을 캐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식이요법을 한 것이 기적을 일으킨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에도 간암에 걸리고, 위암에 걸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수술도 받고, 오랫동안 항암치료도 받고, 방사선치료도 받았지만 지금은 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하지만 우리는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담당의사로부터 한번에 2~3백 만원하는 외국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형편상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비교적 돈이 덜 드는 식이요법에 매달릴 수 있었다. 요즘 생각해 보면 자연에 가까이 하는 식이요법이 참된 치료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술을 못한 것이나 너무 고통이 심하고 약값이 비쌌기 때문에 항암치료도 몇 번을 하다가 중단하고, 방사선치료는 아예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역력이 살아남아 쉽게 회복된 것이다.
몸이 회복되면서도 병원은 꺼려졌다. 몸의 상태로 보아 암이 치료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혹시 정밀검사를 했을 때 나쁜 결과가 나온다면 그럴 땐 오히려 아는 게 병일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좋아진 상태를 보고 수술이나 항암치료 또는 방사선치료를 하자고 하면 이를 거부하기도 어려울 거 같았다. 이제는 수술, 항암제, 방사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통해 암이 온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꼭 병원에서 검사를 해야만 알 수 있을까? 4개월밖에 못산다던 남편이 건강을 회복한 상태에서 8년을 살고 있으면 이보다 확실한 진단이 어디 있을까?
남편의 상태를 알던 이웃 사람들은 남편을 보고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에 가까운, 오염되지 않은 녹즙 중심의 야채를 주로 먹으면 면역이 회복되기 때문에 암은 이겨낼 수 있다. 남편뿐만 아니라 누구도, 또한 어떠한 암이나 심장질환, 또는 뇌졸중도 친환경 야채를 중심으로 한 식이요법을 꾸준히 하면 면역력이 회복되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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