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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안에 있는 또 다른 런던!? 시티의 역사는 영국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 2021-02-11 笹原 俊

샤론의 수선화 2021. 2. 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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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안에 있는 또 다른 런던!? 시티의 역사는 영국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

2021-02-11 笹原 俊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185

 

 

 

 

 

 

 

ロンドンの中にもう一つのロンドン!? シティの歴史はイギリスそのものの歴史よりはるかに古い
2021-02-11 笹原 俊


런던 안에 있는 또 다른 런던!? 시티의 역사는 영국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
 
2021-02-11 笹原 俊(사사하라 슌) 번역 오마니나

▼ 또 하나의 런던

 여러분은 영국의 수도인 런던 안에 또 다른 런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위의 그림은 런던시입니다. 그 가운데 빨갛게 칠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시티 오브 런던, 통칭 시티라고 불리는 구역입니다.

 런던시에 700만명 정도의 인구가 있습니다. 그 중 시티의 인구는 11.000명 정도 입니다.면적은 딱 1평방 마일 정도이기 때문에, 스퀘어 마일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티에는,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 런던 증권거래소, 보험회사 로이즈 본사 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성당교회(템플교회)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티는 영국 금융의 중심지입니다. 버킹엄 궁전이나 런던 탑,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시티 밖에 있습니다.

▼ 시티에 주어진 특별한 지위

 이 도시에는, 런던시의 다른 지역에는 없는, 다양한 특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우선 시티의 독자적인 깃발과 문장이 있습니다.

 

 


 런던시장과는 별도로, 시티의 시장이 존재합니다. 런던 시장은 일반 시장과 같은 메이어라고 불리는 반면, 시티의 시장은 로드 메이어라고 합니다. 귀족 칭호인 로드가 앞에 붙습니다. 런던 시장보다, 시티의 시장이 더 상급인 것 같습니다.

 시티는 런던시와는 다른, 독자 경찰, 위병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로드 메이어의 관할에 놓입니다. 또한 로드 메이어는 독자적인 징세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티에서 징수된 세금은, 영국 국가에 납부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시티의 수입이 됩니다.

 로드 메이어를 선두로 하는, 시티를 운영하는 조직은, 코퍼레이션 오브 런던(런던 회사)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영국 국왕은, 로드 메이어의 허가없이, 시티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시티는 더 이상 영국의 일부가 아니라, 영국의 국내에 있는 외국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시티는 영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 시티의 이익에 반하는 법률에 반대할 수 있는데, 런던 회사에는 외부에서 사람을 들여 보낼 수는 없습니다.


 시티의 내부에는 영국 헌법은 적용되지 않고, 고대 로마의 관습법으로 통치되고 있습니다. 영국 의회에서 정한 여러 법도, 시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선거 제도도 시티 이외의 지역에서는 1인 1표이지만, 시티에는 중세부터 계속되고 있는 길드 시스템이 남아 있어, 주민의 표와 함께, 길드표나, 시티 내의 기업의 법인표가 가산됩니다.


 런던의 중심에, 국가와 분리된 별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국가 전체의 금융과 경제를 지배하는 이미지입니다.

 이 도시의 독자성의 시작은, 무려 2000년 이상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로마에 의한 도시국가의 건설

 시티의 정체는, 고대 로마제국에 의해 건설된 도시국가, 론디니움(Londinium)입니다.


 

 

이것이 론디니움의 지도입니다. 현재의 시티와 거의 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론디니움이란 당시 이 땅에 살고 있던 켈트인의 말로, "늪지의 성채"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는 이름 그대로,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다리는, "런던교가 무너졌다~'"는 동요로 유명한, 런던교입니다. 지금과 거의 같은 위치에 놓여진 이 다리는, 기원전 34년에 이미 건설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동요대로 몇 번이나 무너져 다시 재건되고 있습니다만...

 그로부터 500년 후, 서기 476년에, 로마 제국 자체는 멸망하고 말았지만, 론디니움은 그대로 존속해, 북방 역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 잉글랜드 건국과 시티의 독립


 그로부터 다시 500년 뒤인 927년, 7왕국(헵터키 :Heptarchy)이 통일되어, 잉글랜드 왕국이 성립됩니다. 이 시점에서 시티는 옛날과 같은 위치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시티의 역사는, 잉글랜드 자체의 역사보다, 1000년 이상 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시점에서, 시티의 주위에는 끝없는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을 뿐입니다.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노르망 왕조가 성립합니다. 윌리엄은, 잉글랜드 전역을 정복한 뒤, 시티를 눈여겨 보고, 이를 대군으로 포위해, 공략하려 합니다. 그러나 시티의 방벽은 견고해, 윌리엄의 공격을 이겨내고 맙니다.


 윌리엄은 시티와 강화를 맺고, 시티에 독자적인 시장(로드메이어)을 두는 것, 로드메이어의 허가없이 국왕은 시티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인정해, 시티에 독자적인 자치권을 부여합니다. 그 대신, 시티는 윌리엄을 국왕으로 인정해, 그 정책에 협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리하여 시티는, 노르만왕조 잉글랜드 왕국 내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쟁취해, 자치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이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그 중의 도시 하나가 살아남아, 고대 로마의 법과 관습을 유지한 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라는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윌리엄이 시티를 완전히 신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티의 감시를 목적으로, 시티의 바로 옆에 런던탑을 건축합니다. 또 조금 떨어진 곳에, 왕궁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건설하면서, 항상 시티에서 눈을 떼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후,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티를 에워싸듯이 도시가 형성되어, 현재의 런던이 완성된 것입니다.

▼ 성당 기사단의 영광과 좌절


 이렇게 해서 시티는, 잉글랜드 왕국 내의 자치구로서, 교역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 도시에 커다란 전기가 된,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세의 유럽을 뒤흔든 성당기사단 사건입니다. 성당기사단은, 인터넷에서는 템플 기사단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성당 기사단"이라는 느낌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이 명칭을 사용하겠습니다.

 당시의 유럽은, 십자군 원정의 성공과,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 소식에 들끓고 있었습니다. 성당기사단은, 이 십자군의 원정을 수호하고, 예루살렘으로 순례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119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교황의 정식 인가를 받아, 귀족 자제들이 속속 입단하면서, 기사단은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교황은 다양한 특권을 기사단에게 부여하였습니다. 십자군의 호위료 징수승인을 비롯해, 국세의 면제, 교회에 대한 충분한 일세의 면제, 이슬람교 국가와의 교역권에 더해, 순례자들에게 유용하게 쓰기 위해 이자를 받고 여비를 빌려주는 것까지 인정했습니다.

 성당기사단은, 기사로서의 업무 이외에, 해외무역 및 은행 업무까지 하게 되면서, 각국의 국왕들을 능가하는, 막대한 부가 기사단에 집중되게 됩니다. 그 배경이 된 것은, 성당기사단이 예루살렘에서 중대한 유물인 성배와 성궤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승천에 얽힌 극비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나 하는 등의 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당기사단은, 돌연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1307년 9월,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성당기사단의 죄를 늘어놓으며, 기사단을 고발합니다. 이에 따라,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기사단에 대해 이단 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10월, 필립 4세는 프랑스군을 동원해, 단장 자크·드·몰레를 비롯한 성당기사단의 단원 15,000명을 일제 체포. 단원에 대한 이단 심문이 시작됩니다. 1310년, 단원들에 대한 대량 처형이 시작되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성당기사단 단원들이 포도밭에 세운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성당기사단의 해산을 선언하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의 재산은 이미 어딘가에 숨겨져, 거의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1314년, 묵비권을 행사하던 단장 자크 드 모레의 심문이 재개됩니다. 그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단 선고가 행해져 그대로 화형에 처해집니다. 이리하여 영화를 자랑하던 성당기사단은, 갑작스런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이 이야기는, 일본역사에 비유하면, 마치 오사카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과 같은 의미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금(金)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유럽에서는 성당기사단의 금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 성당 기사단의 진실

 현재는 카톨릭교회에 의해, 성당기사단은 죄가 없다고 알려져, 비극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 그 멸망은, 실제로는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여기서 다시, 필립4세가 고발한, 성당기사단의 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부정과 모독
  ・악마 숭배
  ・흑마술
  ・동성애
  ・타락한 성행위의 여러 가지
  ・신생아 살해
  ・아동학대
  ・인육식
  ・이자를 받아 사람들을 빚지게 한 것

 등의 항목이 나열되어 있습니다.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바보같은, 누명일 것"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만,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뭔가 비슷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성당기사단이 했던 것은, 현대의 딥 스테이트의 소행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고, 어린이를 납치하고, 인신매매하고, 악마 숭배의식을 받들어 고문한 다음 그 혈육을 잡아먹어 살해하는 행위를 자행한 것입니다.

 나아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스템을 구축해, 사람들에게 대출해 이자를 받아 채무노예로 삼아 사복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악마숭배자의 생각은 똑같군요.
 

필립 4세는, 결국, 중세의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할까요? 그는 성당기사단의 악행을 깨닫고, 교황과 공조해, 이를 고발하고, 대량체포를 통해,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 성당기사단의 그 후


 그렇다면 기사단 궤멸 후의 성당기사의단 잔당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무래도 그들은, 성당기사단이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보물들과 함께, 시티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시티는 당시 유럽의 유일한 치외법권지대였습니다. 시티 안에는 성당기사단이 건설한 성당교회가 있습니다.

 

시티에 있는 성당교회

 교회의 건물 자체는, 영국왕인 에드워드 2세의 관리 하에 있었습니다만, 예를들어, 교회의 지하에는 터널이 뚫려 있어, 현대의 딥 스테이트의 지하 기지와 같은 시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래, 시티는 유럽의 악마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악마숭배자들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며, 재기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시티에 의한 금융지배

 그 후,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악마숭배자들은 ,시티에 숨겨둔 성당기사단의 보물을 밑천으로 바다로 나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각지를 식민지로 지배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공업화 이후, 시티는, 세계금융의 중심지가 되어, 그곳에 숨어 있는 악마숭배자들은,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고, 전세계의 식민지 지배를 지향합니다.

 이 야망은, 한번은 우리 일본에 의해 저지당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블로그(바로 아래 글임)를 참조하십시오.

그 후, 악마숭배자들은, 글로벌 경제를 구축해, 세계를 금융시스템을 통해 지배하는 계획으로 전환해,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세계금융 경제시스템의 중심에, 지금도 시티는 계속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s://shunsasahara.com/entry/2021/02/03/22281

 

 

 

 

 

 

 

二次大戦の真実1 日本は第二次世界大戦に勝利していた!? 植民地解放の真実とは?
二次大戦の真実
2020-09-01 笹原 俊

2차대전의 진실1 일본은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 식민지 해방의 진실이란?

2020-09-01 笹原 俊(사사하라 슌) 번역 오마니나

지금이야말로 2차 대전의 재평가가 필요

 현재 코로나의 이면에서, 여러 가지 사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고 계신 분은,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분은 있습니다만, 아직 소수인 것 같습니다. 특히 주된 정보원을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의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듣는 귀를 갖지 못한 분이 많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이야기해 보면, 전혀 상대해 주지 않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은 분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나라와 비교해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세뇌되어있는 사람의 비율은, 일본에서는 매우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설득을 시도하면서, 저는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75년 전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의 시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에서 일본은 죄를 범했는가?

 그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일찍이 아시아 제패의 야망을 품고,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이를 침략했다. 이 야망은 미국에 의해 저지당해, 일본은 패배했다.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이 죽고, 국토는 허허벌판이 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 침략에 의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괴롭혔고, 많은 피해를 주었다.
 우리는 이 행위를 깊이 반성하고, 우리가 괴롭힌 국가들에 배상해야 한다.
 아울러, 일본이 두 번 다시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부를 감시하고, 헌법에 따라, 일본이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각을, 이하의 기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기본 도그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만약 이 "기본 도그마"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과거에 큰 죄를 지은 것이며,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해, 상시 정부를 비판하고, 행동을 계속 감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에 따라,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다른 나라가 침략해 오면, 노 가드로 침략당하는 대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좌익인사들의 사고방식과 거의 같습니다.

 이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은 부끄러운 나라이며, 훌륭한 나라인 서양제국을 본받아, 낡은 일본의 문화는 포기하고, 진보된 서양의 문화로 대치해 나가야 한다, 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미 아시다시피, 이 "기본 도그마"는, 진실이 아닙니다.
 어디가 어떻게 진실이 아니냐고 하면, 분명히 말해, 모든 부분이 전부 진실이 아닙니다.
 이 거짓말로 도배된, "기본 도그마"를 신봉하는 한, 언론의 정보를 모두 믿고, 계속 사실을 외면하는 생애를 보내게 됩니다.

2차대전의 진실은?

 그렇다면 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뒤의 기사에서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러한 진실의 배후에 가로놓인, 하나의 큰 진실을 확인해 둡시다. 그것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

라는 진실입니다.

2차대전의 전쟁 목적은?

 그런 바보 같은! 연합함대는 모두 격침되고, 일본의 도시들은 연일 공습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아, 일본은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잖나, 라고.

 분명히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쟁에는, 애당초 그것이 실현되어야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전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목적을 실현한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영토분쟁이라면, 상호간의 나라가 어떤 지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해, 전쟁을 행해, 어느 한 나라가 그 지역의 영유에 성공하면, 그 나라가 승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쟁목적의 실현, 즉 전쟁에서의 최종적인 승리는, 각각의 전투의 승패와 대체로 일치하지만, 드물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쟁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본 도그마"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해, 식민지로서 지배해, 자국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애초에 이런 목적을 위해, 하나가 되어, 최후의 최후까지 싸워 나가는 국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의 중국을 보세요. 시진핑은 중화제국의 부흥을 제창해, 경제력, 군사력을 이용한 세계 제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 국내는 흔들리고 있고, 공산당 지도부나 부유층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국외로 자산을 옮겨, 국외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차대전의 개전 전에, 비슷한 압력을 미국으로부터 받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개전 후, 전황이 좋지 않게되어, 연일 공습을 받게 되었더도, 국외로 탈출하려고 생각하는 국민은, 끝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 일본인은, 무조건 항복의 그 날까지, 어떤 곤란에 둘러쌓였어도, 일치단결해 계속 싸울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일본에는 이 전쟁의 목적이 되는 "숭고한 대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의는, "식민지의 해방"입니다.

서구제국에 의한 식민지의 분할

 17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 이래, 서양 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제국의 식민지화를 진행시키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의 시점에서, 이 식민지화는 거의 완료되었고, 식민지로 분할되지 않은 것은 일본과 태국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부국강병을 이루고, 자국의 영토를 서양제국으로부터의 식민지화에서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일러전쟁으로, 서구의 일각인 러시아에 승리해, 일본은 자국의 방위를 반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식민지 분할은 일단락 하겠습니다.

 다음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를 가진 서구 국가들끼리의 싸움이었습니다. 분할되지 않은 식민지가 사라졌으므로, 그 다음은 식민지를 이미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로부터 빼앗아야만 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식민지를 빼앗겼던 나라였습니다. 이 두 나라의 2차 대전에서의 전쟁목적은, 1차 대전의 리벤지와 새로운 식민지의 획득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전쟁목적은 이 두 나라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상

 일본은 그 이전에 행해지고 있던 서구제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에 깊이 마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국의 방위를 견고하게 만든 일본은, 이미 식민지로 되어버린 아시아 국가들을, 서구제국들의 손에서 해방시키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식민지가 되어 있는 나라들에 쳐들어가, 종주국인 서구제국을 내쫓습니다.

 그 후 그들 나라를 원조해, 독립국가로 만든 다음,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를 수립하고, 동맹을 맺어, 아시아 지역에서 함께 협력해 번영해 나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동아공영권" 사상입니다.

 일본은, 서구제국이 행하고 있는 지배와 피지배에 의한 착취관계를 종료시켜, 대등한 국가끼리 친구로서 함께 서로 도울 수 있는 세계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은 이 이상을 내걸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구미의 식민지에서 해방하기 위해, 유일하게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싸웠습니다.

 일본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이상을 이해하고, 그 실현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 도망가는 일 없이, 세계를 적으로 돌려 계속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서구제국은, 이것이 실현되어 버리면, 자신들의 식민지가 사라지고, 나아가 식민지에서 저지른 나쁜 짓들이 모두 드러나 버리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저항해, 일본을 죽이러 온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최후로 남은 아시아의 비식민지인 일본을 제압해, 식민지의 분할을 완성시켜,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을 식민지로서 지배한다는 목적 하에, 2차대전을 치뤘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서양제국을 적으로 돌려, 일본은 단 한 나라로, 국민이 하나가 되어 끝까지 싸워 나갔습니다.

 그러나 과연 적이 강대하고 승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마침내 일본은 힘이 다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식민지해방을 달성한 일본

 그렇다면 종전 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전 직후부터, 아시아에 있어서의 식민지의 독립이 잇따라, 그 후 60년대에 들어가게 되면 아프리카 제국이 구미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경과에 대해서는 뒤의 기사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최종 결과만 확인해 둡시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일본 및 태국 이외의 모든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서유럽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에는 식민지가 된 나라는 한 나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해방을 목적으로 싸운 일본은, 항복해, 점령당했지만, 전세계의 모든 식민지를 개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모든 나라를 식민지로서 지배할 목적으로 싸운 서구국가들은 일본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후 모든 식민지를 잃고 국력을 대폭 감퇴시켰습니다.

 자, 그럼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대체 어느 쪽일까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

 이제는 잘 아시겠죠?

 소기의 전쟁목적을 달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희생해, 세계 여러나라를 식민지배의 마수로부터 구한 위대한 용자입니다.

"기본 도그마"의 해제를 시도하자

 기다려봐,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봐, 그런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신문·텔레비전 등의 매스컴에 의한 세뇌의 결과입니다.

 미국은 점령 시작 직후부터, 일본 국내의 언론을 총동원해 캠페인을 벌여, 이러한 진실을 은폐했습니다. 그야말로 필사적인 캠페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진실이 밝혀지면, 자신들이 수백 년 동안 해왔던 악행이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그 미국의 필사적인 공작에 의해 만들어낸 환상이 바로, 2차대전의 "기본 도그마"입니다.

 이 "기본 도그마"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래 처음부터 매스컴에 의해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가 되어도 반복해 행해지고 있는 매스컴의 세뇌를,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 거기에 따르는 경향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본 도그마"의 해제에 성공하면, 놀라울 정도로 어이없게 세뇌가 풀려, 현대에서 행해지고 있는 진실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꼭 이 2차대전 이야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놀랄 정도로 쉽게, 세뇌가 풀려 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대충 개관을 살펴 보았습니다만, 다음 번 기사에서는 그 하나하나의 부분을 확실히 설명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s://shunsasahara.com/entry/2020/09/01/18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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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의 건널목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새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