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극단 피해자 증언 “거절 땐 안무 못할까 무기력”
검찰, 상습 성추행 혐의 2심 ‘업무상 위력’ 징역 8년 구형
![]() |
극단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받은 연극연출가 이윤택씨(67·사진)의 항소심 재판에 52세 여성이 증인으로 나와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피해자는 “제 나이 30세 때부터 5년간 성폭력을 당했고, 48세에 또다시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26일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씨의 항소심 공판에서는 피해여성 ㄱ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씨는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지위를 이용해 2014년 3월 밀양 연극촌에서 ㄱ씨에게 유사성행위를 시킨 혐의를 받는다.
연희단거리패에서 12년간 안무가로 일한 ㄱ씨는 “1996년 제 나이 30세 때부터 2001년까지 이윤택 당시 예술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그 기억을 잊은 채 극단을 떠났다”며 입을 뗐다.
성폭력 이후 극단을 떠난 ㄱ씨였지만, 안무 외에는 이렇다 할 기술이 없었다. ㄱ씨는 “12년간 청소일을 하며 살았다. 가족도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노후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질 무렵, 연희단거리패와 다시 인연이 닿았다”고 말했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이씨는 “혼자 이렇게 살지 말고 사람들하고 같이 작업하며 살자. 너 아니면 안무할 사람이 없다”고 제안했다. ㄱ씨는 이씨의 말에 다시 희망을 갖고 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재입단한 극단에서 ㄱ씨를 기다린 건 또 다른 성폭력이었다. ㄱ씨는 “2014년 3월12일 김해에 있는 예술감독 사택 옆집에서 이씨가 유사성행위를 요구했다. 그렇게 저는 48세에 또다시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요구를 거절하면 연희단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예술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각인됐고, 이런 두려움과 공포는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ㄱ씨는 “제가 41페이지에 걸쳐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고 진실이다. 저는 단 한순간도 예술감독에게 합의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며 “예술감독이 제게 했던 그 모든 요구와 행위들이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인정받고 응당한 처벌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방청석 곳곳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성범죄 사건 관련 재판이라 재판부는 증언에 앞서 ㄱ씨에게 비공개 진행을 원하냐고 물었다. ㄱ씨는 “전 마지막 (최후진술) 자리”라며 공개를 요청했다.
검찰은 다른 피해자 8명에 대한 강제추행·유사강간치상 혐의 재판 중 ㄱ씨 사건을 추가 기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추가 기소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가 안무를 도와줬을 뿐 연희단거리패 단원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 등의 불이익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판단이었다.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원이 ‘업무상 위력’의 행사 가능 범위를 고용관계로 국한해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이씨는 최후진술에서 “모든 게 제 불찰”이라면서도 “관행처럼 잠재된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노출되고 책임을 받게 된 입장”이라고 했다. 증인 ㄱ씨에 대해서는 “제 불찰이 있었고 젊은 친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못한 게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 최신 뉴스▶ 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