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여기서 영과 혼은 본질의 영역이고
육은 비본질의 영역이다.
그래서 육신은 죽어 없어지지만,
영과 혼은 죽지않고 영원불변하게 된다.
마가복음 12: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이 비록 육신은 죽어서 없지만
영과 혼은 살아서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혼육 가운데
영과 혼의 영역이 본질에 해당하는 영역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영역은 영의 영역이기에,
혼의 영역에서 무언가
이상신호가 발견되게 되면,
영의 영역까지 번지게 될
확률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면
이것은 혼의 영역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된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을
주님안에서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방치해버리게 되면,
이 서운한 감정이 커져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된다.
이 경우는 영의 영역이 침탈당한 경우다.
물론 이렇게 됐다 해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주님이 회복시켜 주시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의 경우,
이 상태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대로 머물면서
죄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죄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요일 3:15)
단순히 서운한 감정은
그 자체로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영의 영역으로 번지게 됨으로써
결국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혼의 영역은 대부분
내 자아가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영의 영역은 영적 주체자에 의해 좌우난다.
혼의 영역을 잘 다스리게 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여
영의 영역을 지켜주시지만,
잘 다스리지 못했을 때는,
원수마귀가 역사하여
영의 영역을 침탈해간다.
만약 어떤 일로 인해
염려가 생기고 두려움이 일었을 때,
이를 주님안에서 잘 다스리게 되면,
두려움을 잘 이겨내고
믿음으로 정진하며 승리할 수 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그 사람의 영의 영역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혼적인 영역에서
염려와 두려움이 생겼을 때,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원수마귀가 영의 영역을 침탈하여
두려움과 염려를 이기지 못한 채,
진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애초에
혼적인 영역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여지를 두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령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내려놓고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질병에는
육의 질병이 있고, 영의 질병이 있는데,
육의 질병은 비본질이고,
영의 질병은 본질적 문제에 해당된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도
육의 영역에서는 하나님께서
질병이나 어려운 일들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다.
(욥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
그러나 본질(영혼)의 영역은
하나님께서 결코 자의로
허락하시는 영역이 아니다.
혼적인 감정인 우울'감'이
우울'증'이란 영의 질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보통 우울증의 원인을
생물학적, 환경적 요인 등등,
의학적으로만 이래저래 따진다.
그리고 종류도
갱년기 우울증, 산후 우울증 등등 많지만,
무슨 우울증이 됐든간에,
실상은 영적인 영역이
근원되서 생기는 질병이다.
혼의 영역에서
감정상태가 자리잡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혼의 영역에서 생겨난 우울한 '감정'이
영의 영역으로 번지게 됨으로써
우울'증'이란 질병으로 심화된다.
다시 말해,
혼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제때 감지한 후 해결하지 않으면,
영의 영역이 침탈당하게 된다.
창세기, 민수기, 신명기, 사사기. 시편, 이사야 등등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말씀하고,
빌립보서 4장 6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5장과 데살전 5장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범사는 "모든 상황"을 말한다.
기분좋은 일이 있을 때만 아니라,
육적으로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감사함으로 본질(내면)의 영역을 지켜내라는 의미다.
육적인 상황에서 오는 어려움은
얼마든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본질의 영역이 침탈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극심한 핍박속에 고통받고 순교당하기 전,
엄청난 두려움이나 우울함을 못견뎌
다 주님을 배도하며 떠났을 것이다.
그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우울증이나 두려움이 몰려 오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극한의 고통스런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혼을 침탈당하지 않고,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속에서
내 영혼을 지켜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기에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그 본질의 영역을 지켜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주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안에서
고통스런 육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본질의 영역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가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가 뭔가?
육적인 현실에서 아무 일도 없는데
우울증이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분명 육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일이 있기에,
본질의 영역이 침탈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영혼의 영역을 지켜내야 했던게
주님의 뜻이었는데,
당시에 핍박받던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 얼마나 더 힘든 현실이기에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할까?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고 있어도,
얼마든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또 아주 무능력한 하나님이란 말이 된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본질의 영역이 침탈당해
우울증에 걸리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설사, 혼의 영역에서
어떤 감정적 상태가 일어나더라도,
그 상태가 영의 영역까지 번지도록
그냥 방치해두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안에서
그 사람의 본질(영혼)의 영역,
즉 영의 영역이
원수에 의해 침탈당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고 역사해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근거하는
영적인 이치이고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얼마전
우울증 관련 글을 하나 올렸더니,
이런 영적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금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으니...
또는 내 가족이나 주변에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으니...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어려움을 니가 얼마나 알기에
그렇게 상처(?)주는 얘길 하냐며...
교회안에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이들이 다 하나님과 온전치 못한
관계냐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포커스를 두기보다
사람에게 포커스를 둔
신앙적 관점을 갖고 있음을 본다.
그 자체가 진리라 하더라도,
얼마든 사람 듣기에 불편할 수 있고,
본인 마음밭의 상태에 따라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보다...
그것이 사람 듣기에 편하냐 불편하냐,
사람에게 상처를 주냐 아니냐의
인본적 기준에 의한 자기 판단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교회안에
소수든, 다수든 아니면 전부든
그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안에
거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조금이나마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에 대한 겸비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처를 받을게 아니라...
본인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내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 영혼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한 것을
먼저 회개하는 일이 선행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앞에 나아가
결단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이다.
또 가족이나 주변 지인이 그런 상황이라면,
그들 스스로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인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는 일이 선행될 것이다.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많은 이들이
본질의 영역을
주님안에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영과 혼이 병들어가고 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말은
너무나 쉽게 하지만,
정작 실제 삶에서는
하늘이 아닌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주님이 아닌 사람 기준으로 살기에,
너무 쉽게 상처받고,
너무 쉽게 서운해하고,
너무 쉽게 우울해한다.
그리고 그 혼적인 영역을 다스리지 못해
너무 쉽게 미워하고...
너무 쉽게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고...
너무 쉽게 교만해지고...
너무 쉽게 우울증에 걸리면서...
영적인 영역을 침탈당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땅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영적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본인의 존재적 영역 안에서
개인적인 영적 싸움도 해야 하지만,
주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각자의 삶에서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기분이 나쁘든, 상처를 받든
분명한 것은...
곧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주시려
상처받고 우울한 자를
위로해주시려 다시 오시는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내 영혼을 온전히 지키며 주님 마음에 합한 사명자로
살아가는 이들을 데리러 다시 오신다.
아직 오시지 않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들이
이 시대에 진정 복된 자들이다.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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