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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스크랩] 아리우스 논쟁의 초기 국면에서의 아리우스의 사상

샤론의 수선화 2018. 12. 22. 18:47

 


역사신학-

 

 

           Arius 논쟁의 초기국면에서의 Arius의 사상

   정리: 김문영


기독교가 공인(313)된 후에 아리우스에 의하여 야기된 삼위일체신앙에 대한 논쟁을 아리우스 논쟁이라고 부른 가운데 이로 인하여 야기된 신학적인 논쟁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었다. 또한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신앙을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하여 고백할 수 있을지 당대 교회는 늘 긴장 속에 있었으며 논쟁의 문제를 일으킨 아리우스는 먼저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그리고는 안디옥 회의(324/5)에서 그리고 니케아 회의(325)에서 정죄되었고 추방되었다.

 아리우스(Άρειοꐠ)는 리비아에서 태어났으며 영적 교육과 감명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받았다. 그는 안디옥의 루키아누스(Lucianus)의 제자였으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이기도 하였다.

 

 아리우스는 바우칼리스 교회를 이끌었으며 성서해설과 함께 교리문답의 임무, 설교 형태의 임무와 함께 모든 면에서 변증법적으로 잘 단련되어졌던 인물이다.

 알렉산더 감독과 아리우스 장로 사이에 있었던 갈등은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의 신학적 전통의 충돌로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난폭한 루키아누스의 제자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은밀하게 그의 스승에 따른 사상을 전하고자 함으로서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루키아누스를 ‘아리우스주의의 아버지’ 또는 ‘아리우스 이전의 아리우스’로 관심을 갖고 아리우스 신학의 원천으로서 주장하고 아리우스 논쟁의 전(前)역사로 보려고 하지만 사실 여러 문헌들을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리우스는 루키아누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문하생이 아닌 가운데 아리우스는 루키아누스의 신봉자 혹은 숭배자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루키아누스를 ‘아리우스주의의 아버지’나 ‘아리우스 이전의 아리우스’로 평가되었던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리우스는 리비아에서 태어났다(260/256). 논쟁이 발생했을 때 아리우스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약 336년경에 죽었다.

 오늘날 그의 편지 세편이 남아있는데 첫 편지는 처음 알렉산드리아에서 논쟁이 일어났을 때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니코메디아의 감독 에우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이며 두 번째 편지는 자신을 비난했던 알렉산더 감독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보낸 상투적인 편지가 그것이다.

 

       

                                       

 니코메디아의 감독 에우세비오스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는 니케아 회의(325)에 임박하여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아리우스가 자신의 입장을 후원해 주도록 니코메니아의 감독 에우세비오스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아리우스는 1장에서 자신이 부당하게 ‘모든 것의 승리자이신 진리로 인하여’ 알렉산더 감독에게 박해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가운데 2장에서 아리우스는 박해와 추방을 위협하는 원인이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가 이해하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신학적인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도 항상 아들도 항상,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도 역시, 아들이 낳아지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그가 영원히 낳아지고, 나아지지 않고- 창조되었고, 관념으로도 그 어떤 한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아들을 앞서지 않으시고, 항상 하나님 항상 아들,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아들(이시다)” 여기에서 “아들이 낳아지지 않음으로”라는 해석과 “낳아지지 않고-창조되었고”라는 아리우스의 해석은 알렉산더 감독의 주장에 대한 음해적인 해석이다.

 아리우스는 그의 정적들의 판단이 언제나 편파적이었음을 보이고자 노력하였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고 시작이 있는 아들보다 앞서 계신다는 신학적 주장에 동조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4장에서 아리우스는 그들 자신이 가르쳐왔고 그리고 편지를 쓰고 있는 당시에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을 소개하고 있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낳아지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하나님(아버지)이 낳아지지 않은 자로서 아들이 그의 부분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아들에 앞서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이 아리우스 주장의 강한 특성이다.

 5장에서는 삼위일체 신앙 논쟁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중요한 아리우스의 신학 입장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가 낳아지기 이전에 뿐만 아니라 피조되어지고 작정되어지고 기초되어지시기 이전에는 계시지 않았다. 즉 그가 낳아지지 않으신 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알렉산더 감독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이유가 “아들은 시작을 가졌고 하나님은 시작없이 계시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강력하게 ‘하나님이 시작이 없이 계실 때에 아들은 시작을 갖는다.’고 가르친다.

 알렉산더 감독에게 보낸 그의 신앙고백을 담은 편지- 아리우스는 장로인 자신을 비롯하여 5명의 장로들, 6명의 집사, 3명의 감독들의 이름으로 그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편지를 제출하였다.

 편지 1장에서 알렉산더 감독을 축복된 파파로서 우리들의 감독으로 부르고 있으며 2장에서는 그의 정적들의 공격과는 달리 하나님을 “영원한 시간 이전에 독생하신 아들을 낳으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정적들의 공격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리우스의 주장이 아들이 시간과 관련이 있건 없건 간에 시작을 갖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의 강력한 주장은 “아들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논쟁에서 그가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이고 그러나 (다른) 피조물 중의 하나와 같지 아니하고”라는 주장이다.

 3장에서 아리우스는 아들이 낳아지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피조물들이 낳아진 것과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들이 낳아지시기 전에는 계시지 않았다는 그의 기본적인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그는 당시 기독교의 영지주의자로서 이단으로 정죄 받았던 발렌티누스의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출되었다’고 가르친다고 평가하고 이와 같은 가르침을 부정하였다.

 4장에서 아리우스는 삼위일체 논쟁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그의 고백이 더욱 심도 있게 드러나 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지도, 동일하게 영원하지도, 동일하게 낳아지지 않으신 자도” 아니시고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있음/존재함을 갖지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아리우스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단독자이심을 주장하고 있다. 아리우스는 철저하게 아들은 시간 전에 창조된 자, 낳아진 자, 조성된 자, 피조된 자로서 아들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서 시간적 유한성을 주장하였으며 아리우스는 그의 혼합적인 신학 이해로 알렉산더 감독의 가르침을 왜곡하였지만 그의 신학이 그의 감독인 알렉산더에게 배웠으며 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 신앙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중심 되는 신앙고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을 올바르게 고백하여야 한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교회 안에는 삼위일체 논쟁이 휘몰아쳐서 이 논쟁은 318년부터 381년까지 주요하게 계속되었다.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교리적 접근으로 논증할 때에 흔히 제시하는 반문은 “성서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지 않은가? 라는 회의적인 질문이다.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성서적 근거를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신6:4)는 대전제와 동시에 성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하여 증거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성서에 언급된 다른 어떤 실체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이어서 놓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차영배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삼위일체 논쟁 사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은 ‘교부들 자신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삼위일체 신앙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보았고, 더욱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역사가 짧은 한국 교회가 그들의 글들을 소화해 내고 우리의 언어로 담아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삼위일체 신앙고백은 모두가 단일신론을 거부하는 정파들의 싸움 속에서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학술원의 심포지엄에서 차영배 교수는 이종성 교수와 관련된 본 신앙고백의 한글번역의 오류에 대하여 지적함과 더불어 “in deitatis unitate"를 ”신성의 단일성 안에서“ 혹은 ”단일한 신성에“로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가 ”단일성“이라고 번역한”unitas"라는 용어는 교부들의 글들을 볼 때에 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일본질이시다”에 상응하는 말로 “유일성”이라 번역함으로, 한국 신학계가 최근 들어 “군주론”이라 사용하던 용어를 바람직하게 “단일신론”으로 바꾸었는데, 이로 인한 오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차영배 교수는 두 번째 글의 결론에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재해석 하면서 순수한 우리말로 “한 세분”이라 제안 하였다. 여기에서 “세분”이라는 말에 이의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아버지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아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성령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고 고백할 수 있지만 “세분 이라고 말할 때 ”세 단독 자들“을 의미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하나님이 셋이라는 주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살리면서 ”한 삼위“라고 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삼위일체 신앙 표현은 헬라어로 μία ούσία  - τρειꐠ ύποστἀσειꐠ이다.

 

   *삼위일체 논쟁에서의 삼위일체 신앙 표현의 변천

 325년 니케아 회의 이전에 교부들은 헬라 교부나 라틴 교부를 막나하고 그 신앙의 표현에 있어서 삼위의 종속적 관계에 따른 종속적 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다.

 니케아 회의 이후에도 교회 안에서 니케아 신앙고백의 핵심 용어인 “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상 하나이시다(ὁμοοὐσιοꐠ τῷ πατρί.)에 따라 니케아 신앙고백의 의미가 새롭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은 350년대 말에 가서이다.

 아타나시우스도 350년 말에 니케아 신앙고백을 중요시하였고 그가 주도한 362년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ὁμοοὐσιοꐠ라는 고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라틴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앙 표현

 삼위일체 논쟁에서 라틴 교부들이 헬라 교부들보다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은

                                       

테르툴리아누스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 논쟁이 마무리되어질 때까지도 라틴 교부들은 후기 니케아 주의자들의 일체와 삼위를 표현하는 용어인 헬라어의 οὐσία와 ἁμὀστασιꐠ 사이의 의미의 구별이 없이 라틴어 substantia로 번역하였다. 381년 서방 교회에서 삼위일체 논쟁을 마무리 지었던 암브로시우스 역시 persona라는 단어의 한계성을 보면서도 삼위를 위한 다른 제안을 하지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persona라는 용어로 삼위 각각의 하나의 위를 말하면서도 명시적으로 삼위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정통 신앙고백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본질상 하나이시다’에 적용되는 말이 헬리어로 οὐσἰα이다. 어거스틴은 이 단어에 해당하는 합당한 라틴어를 지금까지 사용한 substantia 라는 말을 essentia로 수정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다 낫다고 주장하였다.

 

   *헬라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앙 표현

 헬라 교부들 중 이미 오리겐에게서 ἁπὀστσιꐠ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련하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삼위일체에 대한 주장은 종속적 삼위일체였다.

 318년 아리우스에 의하여 시작된 삼위일체 논쟁은 325년 콘스탄틴 황제의 입회 하에 최종적으로 두 명의 감독과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니케아 신앙고백을 이루어 놓았다. 니케아 신앙고백의 표제어는 “ὁμοοὐσιοꐠ τῷ  πατρι((아들이) 아버지와 본질상 동일하시다.)”이다. 궁극적으로 362년 아타나시우스가 주관한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의 본질을 갖는다고 정리하였으며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을 결의하면서 논쟁의 대 단락을 맺는다. 그런데 그 앞서 379년에 죽은 바실리우스는 오리게네스 주의자들의 종속적 삼위일체론의 범주에서 못 벗어났으나 그의 사후에 남은 두 카파도키아 사람들이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완성해놓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아버지, 아들과 성령은 본질상 동일하시고 삼위이시다. 아버지도 하나님이시고, 아들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분이 아시고 한 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각각의 고유의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혼합되지 않으시고 연합되어 한 분으로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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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참고로..... 

 

 삼위일체란?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삼위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세 분이 아니다. 즉, 그들은 세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신적 본질이 그 안에 존재하는 세 가지 양상이요 형태인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 인격적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성질을 각각 가지고 있다. 성부는 성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반대로 성자는 성부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파송할 수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의 오묘한 신비는 삼위 중 각 위가 신적 본질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삼위의 테두리를 벗어나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순서에 있어서나 그들의 사역에 반영된 순서에서 볼 때 삼위 중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3위는 본질상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종속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 삼위는 어떤 인격적 특성에 의해서 구별된다. 곧 성부는 성자를 발생(generate)하고, 성자는 성부에 의해서 발생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proceed)된다. 이 교리는 신앙의 위대한 신비들 중의 하나로, 인간의 이해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는 인간의 지식이나 언어로 100% 완전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 신비의 교리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에즈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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