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솜이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닭튀김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산 닭 큰 것 한 마리 5,000원주고 사와서 튀김을 하고 나는 인터넷을 보고 닭강정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점심상을 차렸더니 가게 식구들 5명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내게는 말도 없이 갑자기 대식구가 몰려와서 라면을 삶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냥 몰려 온 건지, 그런 게 이 나라 정서인지...?
그냥 받아들이고 이 나라 정서를 따라가 봅니다. 아무튼 맛있고 즐겁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어제 아침 7시에 솜이 엄마가 닭양념을 재여 놓으러 오겠다고 해서 새벽장을 봐다가 아침식사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점심때가 넘어도 오지 않습니다. 언제 오느냐고 문자를 넣어보니 한참만에야 손님 만나느라 못 온다는 답이 왔습니다.
베트남인들은 약속 어기는 것을 참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고서 싱크대에 물이 새는 등 하자가 많았습니다. 관리실에 가서 수리를 부탁하고 왔는데 한 번도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을 못 봤습니다. 심지어 날짜를 넘기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엿장수 맘대로 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덕분에 나는 매일 도를 닦으며 삽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동남아 나라들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는 닭을 사다가 컨닝 한 실력으로 튀김을 하여 우리 부부가 실컷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의 회사설립 상담에 응해주느라 약속을 못 지킨 솜이 엄마가 저녁 무렵 우리 집에 왔습니다.
“이모, 이거 베트남에 있어요. 닭강정 베트남에 없어요. 통닭 깍두기 베트남에 없어요. 베트남에 없는 한국요리 해야 해요. 잡채 족발 김밥 닭강정 김치 모두 베트남에 없어요. 베트남 사람 이런 한국 음식 많이 좋아해요. 월요일은 잡채, 화요일은 족발....., 토요일은 김밥, 이렇게 요일별로 천톡에 올리면 주문 많이 와요. 배달해요.”
이 동네 주민 1천명이 단체방을 만들어 서로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천톡에 사진홍보물을 올려놓으면 주문이 많이 들어올 거라는 얘기입니다. 우리 동네는 신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어서 경쟁업체가 없을뿐더러 삼성전자와 그 협력 업체가 밀집돼 있어서 한국인도 꽤 있기에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모, 나 요리 이모에게 알려줘요. 아줌마 붙여드려요. 이모사업으로 해요.”
“솜이 엄마, 내가 이런 일을 시작하려는 목적은, 목적이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요.”
“내가 이 일을 하려는 이유는, 이유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요.”
나는 번역기를 돌려 목적의 의미를 알려주고 얘기를 이어갑니다.
“솜이 엄마 집 얻는 돈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이 일을 솜이 엄마가 맡아서 하지 않으면 나는 할 수가 없어. 나는 요리에 취미도 없지만 나이가 많아서 일을 못해. 나는 한글반과 헌옷 장사만 할 거야.”
“이모, 고마워요.”
솜이 엄마가 안겨오며 얼핏 눈에 이슬이 맺힙니다.
지난 주말에는 솜이 엄마가 월급 100만원에 5성급호텔 주방 메니저로 오라는데 어떡할까 하며 의논하러 왔습니다. 오후 4시부터 밤11시까지 근무는 아이들에게 지장이 갈 거라며 안 가기로 했었는데 요즈음은 한국인들의 회사설립을 도와주느라 많이 바쁘나 봅니다.
솜이 한국인 아빠가 그냥 집을 나간 게 아니라 빚을 잔뜩 지워놓고 어느 유부녀를 따라 가버렸다고 하니 솜이 엄마 속이 그냥 속이겠습니까?
솜이 엄마가 얹혀살고 있는 훼사장이 나이도 어린데 마음이 한바다입니다.
그러나 솜이 엄마는 아침 일찍 아이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저녁에 데려오면 밤늦게까지 밖에 머무르게 합니다. 가게 문 닫을 시간 즈음에 아이들을 찾아서 밥 먹여 바로 재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늘 밖에 있어도 그냥 노는 가 했었는데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서 저녁을 먹이고 놀아주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데려다 줍니다. 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고 체면 차릴 줄을 아는지, 좀 번잡스럽기는 해도 사랑스럽습니다.
크리스마스에다가 년 말이 다가오니 가게의 경기가 활황을 타고 있습니다. 여직원 얀이 아직 미숙하여 솜이 엄마가 년 말 특수를 책임져야할 것 같아서, 음식업은 솜이 엄마가 맡을 수 있을 때까지 보류하자고 했습니다.
지난 한 주는 김치 양념을 만들면서 맛보고, 김치를 버무리면서 맛을 보느라 속이 따가웠는데 이번 주는 통닭을 얼마나 먹었던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거워서 한 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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