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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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삶의 이야기

[스크랩]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의 불편한 진실

샤론의 수선화 2018. 7. 7. 19:49

<!-BY_DAUM->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9-10절) 

 

이 말씀은 교회에 가면 가장 먼저 취하는 말씀입니다.

 

초신자라면 누구나 들었을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엄청난 함정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말씀은 100% 맞는 말씀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취해야 할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이 이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편하게 

 

내 입맛대로 해석하는 위험한 함정이 있다는 겁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선포하는 시대적 배경과 상항을 

 

이 시대 사람들은 분명히 탐구하고 숙지해야 합니다. 

 

이천 년 전 그 시대는 초대교회가 활발하게 태동하고 불타는 믿음이

 

한창 번져나갈 때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에 달리심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또한, 이미 소문이 전 유대 땅에 퍼졌으니 간접적으로 유대 백성들은 물론  

 

로마에까지 이미 예수님의 존재감에 대하여 거의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서 두 눈으로 목격한 사도들이 전하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더욱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대교회가 뜨거운 믿음으로 성장할수록 

 

이를 박해하는 세력도 그 가혹함이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기본이고, 끓는 물에 삶고,

 

기름에 튀기고, 목베임 당하고, 배고픈 사자밥이 되게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박해로 말미암아

 

공공연히 예배 못 드리고 숨어서 예배드릴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박해가 심했으면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쿰이라 불리는 지하 깊숙한 곳에 땅굴을 파고 300년이나

 

그 처참한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켜냈을까요...

 

네로, 도미티안 황제를 거치면서 박해가 최고조에 이를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신의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저 사람 예수 믿는다고 고하기만 해도

 

고발당한 사람은 변명의 여지도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이런 처참한 시대적인 배경을 전제하여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면 구원에 이른다고 한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은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시인이기에 바울 사도는 단호하게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럼... 그 시대와 이 시대를 비교해봅니다. 

 

일부 이슬람 지역을 제외하고. 이 시대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이천 년 전 처럼 목숨을 빼앗는 참혹한 핍박의 시대입니까? 

 

아니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잘 아십니다. 

 

오늘날 내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누가 핍박을 합니까? 

 

그저 개독이라며 싫어하는 이방인들의 비웃음 정도로 끝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예수님 믿는다고 시인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시대입니다. 

 

내가 예수님 믿는다고 뭐랄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믿노라 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고 하는 분들 중에

 

엄청난 박해가 있었던 이천 년 전 시대로 돌아가 당당하게 

 

나는 예수님을 믿노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예수님을 믿으면 죽이고 

 

그렇지 않으면 살려준다고 할 때... 당당하게...  

 

죽음을 각오하고 믿는다 주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각오와 단호함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시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 만큼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의 일제 때,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다고 아주 당당하게 주장하던  

 

그 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신사참배의 장벽 앞에  

 

속절없이 거의 다 예수님을 부인하여 우상에게 절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이미 신사참배라는 행동으로 부인한 것입니다.

 

순교가 두렵기 전에 죽는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이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었다면 

결코,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안에 주님에 대한 믿음이 지식으로 된 모양만 있었을 뿐, 

실제적으로 성령님이 거하는 단호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거듭난 후 영으로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저 지식으로만 '주여주여' 믿노라 입으로만 시인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일제 때는 믿음이 좋은 시대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때와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적 상태가 현저히 떨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럼 똑같은 상황이 지금 현실에서 전개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겠습니까... 

 

아무리 거침없는 평화의 시대지만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에 대하여 다시 정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내 목숨을 당당히 내놓을 각오와 단호함으로 믿는다 시인하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인간 본연의 정신 자세로 이를 시인하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이천 년 전 그 시대 사람들이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 할 수 있었던 근원이 무엇일까요?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내 목숨을 담보하여 

 

믿는다 시인하는 것은 절대 하기 힘든 일입니다.

 

간절히 회개하여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셨을 때 

 

박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당당하게 믿노라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 주장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의 성령님께서 

 

주장하고 허락하셔서 시인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씀...

 

의가 무엇입니까...

 

의롭게 된다는 말씀은 내 안에 인격적으로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면

 

결코, 성립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의로운 예수님의 영인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으니 나는 당연히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도 없이 성경 말씀을 변개하여

구렁이 담넘어가듯, 막연히, 뜬구름 잡듯 그저 지식적으로 혹은

생각으로 아주 편하게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시인했으니

 

나는 구원받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마귀의 미혹이자 함정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실제 인격적으로 성령을 받을 생각조차 못 하고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맘 놓구 살다가

 

전부 영원히 불타는 지옥 불에 흡수될 기약만 남은 것입니다. 

 

거듭남도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니

 

대단히 분노하리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부담스럽다고 진리를 감출 수는 없습니다. 

 

 

 

온갖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잔혹하게 그 대가를 치르므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전가된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실만 믿고 회개도 없이, 거룩한 순종도 없이 

대충 살아도 될까요? 그렇게 살아도 구원될까요?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고통의 대가가 그저 그 사실만 인지하고

고백만 하면 나의 죄가 다 소멸되나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의미는 내가 죄를 안 짓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설령, 육의 소욕으로 인하여 죄를 지어도 간절한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죄를 지어도 이미 내 죄를 예수님이 다 가져가셨기에 

죄에 대한 큰 의식도 없이 나는 그냥 누리는 삶을 산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대속제물과 아무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사냐면서 죄를 정당화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숭고한 보혈의 피가 어쩔 수 없이 죄짓는 면책특권이 아닙니다. 

보혈 피는 간절한 진짜 회개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보혈 피를 인정하고 믿는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이들은 정말 보혈의 피에 의지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들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말씀은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의에 이른다는 뜻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실제로 나에게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거듭나 성령님께서 나와 먹고 마시는 경우를 말함입니다.

의로운 성령님께서 내게 오셨으니, 그분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영혼이

정말로 의로워진 것입니다.

하여,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씀은

육의 입이 아닌 영의 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성령께서 함께하여 거듭난 거룩한 자녀는

아무리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핍박하고 박해하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시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입으로 나오는 시인의 말이지만

결코, 거듭나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고백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고백하도록 이끄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이

내 고통이 되어 가슴의 애통한 통증을 느껴본 적 있습니까? 

나의 죄로 인하여 대신 십자가에 죄없이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비통함을 느껴 눈물로 가슴을 치며 그 고통을 느껴본 적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보혈 피를 생각할 때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야 진정으로 그분을 믿는 것이며,

그 예수님의 고통이 내 것이 되어

더이상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죄를 짓고 회개함이 없으면

내가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거듭남도 없이 내 육체적 머리로 인식하여 그걸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했으니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달콤한 속삭임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믿는 자녀입니까? 아닙니다. 

 

진정으로 믿는 자녀는 

십자가의 보혈 피에 의지하여 애통한 마음으로 간절히 회개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님이 내게 오셨을 때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인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사도행전 19장 2절)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라고

이들은 대답합니다. 적어도 이들은 참 순수하고 솔직했습니다.

성령이 뭔지도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었으니 거듭난 것이고 구원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지식으로만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았기에 성령님이 오시지 않아 그 존재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지금 사람들도 이천 년 전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도 없이 나는 예수님을 시인했으니 믿는 것이고

그러므로 구원받았다는 절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분들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지식으로는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알고 있으나

거듭남이 없어 성령님이 안 계시니

영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입으로 간단하게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의 뜻은 

성령을 받아야 진정한 믿음이고, 주님의 의가 내게 이르렀기에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한다는 의미입니다. 

 

거듭남 없이 아무리 지식을 통한 머리로 주님을 인정한다고 한들

이들은 이천 년 전 당시 엄청난 핍박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다면

백이면 백 다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그 속에 성령님이 안 계시니 담대하지 못하여

엄청난 핍박과 동시에 예수님을 시인하면 죽일 거라는 공포감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인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가 내 머리에 총구를 대고 "너 예수님을 믿을래 말래" 

믿는다고 하면 방아쇠를 당기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 살려준다고

협박했을 때 과연 누가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인할까요? 

이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순교는 거듭나 성령님이 내주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순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아무도 위협하는 이 없는 무혈입성의 평화로운 시대에 

거듭남도 없이 내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했다고 

그걸 믿음이라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뜬구름 잡듯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자기 확신을 믿음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그건 지식 습득을 통한 머리로만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간절히 회개한 후 성령님이 내게 오셔서 거듭났을 때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성령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지

결코 내 의와 확신으로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성령으로 거듭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의라고 하는 것은 내가 성령님이 없이는 100% 

불가능합니다.

내 의가 아닌 성령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귀한 영혼들이 그 어떤 핍박과 위협과 목숨을 빼앗을지라도 

당당하게 핍박하는 자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은 나의 구주시고, 나는 그분으로 인해 거듭났고,

그분을 위해 살고 죽을 것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귀한 자녀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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