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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스크랩] 인본주의 신학과 구원

샤론의 수선화 2017. 3. 8. 01:57

 

인본주의 신학과 구원

 

 

 

인본주의가 지금 교회에 종교적인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견고한 진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한다.

 

침례가 약식 세례로 간소화된 것

세례식 전에 학습문답이나 세례문답이 있는 것

유아 세례를 행하는 것

목사, 권사 제도가 있는 것

성직자 의상이 따로 있는 것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한 것

성가대가 있고 교회 음악이 있는 것

성경은 목사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지키는 것

성경에 없는 수많은 헌금 항목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것

가정교회가 사라지고 교회가 대형화된 것

교회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결의 원칙을 택하는 것

 

인간이 창시자인 종교는 종교로서의 미덕이라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잘못 사용하고 그 속에 악한 영인 사탄이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틀린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부패할 때 냄새가 심한 것과 같다. 기독교가 부패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패할 경우 다른 종교와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악랄하고 독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독교의 부패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기독교가 썩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지금 교회는 신학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신학은 기독교를 종교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여 세워놓은 교리의 이론적 체계로서 인본주의 산물의 전형이다. 교회가 신학의 바탕위에 서있다면 교회가 인본주의라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인본주의의 바탕이 사탄이라는 것은 학자들 누구나 인정한다. 또한 사탄이 근원인 인본주의에 구원이 없다는 것도 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공지사실이다. 결국, 스스로 사탄의 종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신학 속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구원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에 있기 때문이다. 신학은 형식적인 이론과 논리에 의존하지만 신앙은 형식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한다. 성령의 능력은 이론적 지식의 탐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이 이론뿐인 신학은 성령의 능력 앞에서 그 무능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역과 교감되는 생활이다.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지금도 사탄의 방해가 있고(살전 2:18) 병든 자들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며(5:16)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고전 12:31) 그러나 신학에서는 이런 신앙의 체험을 다루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신앙의 체험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영역이기 때문에, 즉 인간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차원이기 때문에 하등차원이 고등차원을 이해할 수 없는 피조물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신앙의 체험은 분해해서 이론적으로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분해 수리를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세분해서 하나님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 변증학이고 신학의 기본적인 생각인데, 지금까지 기독교 변증학으로는 하나님을 입증하지 못했다. 기독교 변증학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경험되는 영적인 체험은 개념을 정리하는 것조차도 어렵다. 따라서 신앙의 체험은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야이다. 하나의 예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불을 붙여 타지 않는 모습을 보게 하시면서 모세를 부르셨다.(3:2) 이 방법은 모세 이후에 어느 누구에게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실 때는 같은 방법을 두 번 쓰시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가 체험한 하나님이 모두 다르다. 각자가 다른 체험을 획일적인 틀 속에 묶어서 통일된 개념을 뽑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이 한마디 외에는 어떤 다른 말로도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신학자들의 연구 노력은 눈물겹다. 그러나 피나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들이 원하는 정반대의 결과들을 보면서 내뱉는 한숨 섞인 진술은, 성경이 학문적인 이론의 결집이 아니라 영과 함께하는 체험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을 침통하게 만든다. 이들의 연구는 결국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 이상이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을 연구하면서 이들도 영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아는 바도 없지만 이론적으로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신비 속에 들어가서 그 체험을 한 사람은 바울이 말한 것이 맞다고 동감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지점, 즉 신앙의 체험에 의한 하나님의 실존은 이론적으로는 증명이 불가능하지만 체험적인 사실로는 증명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신앙의 체험이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에 신앙체험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실체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그 실체와 함께한다는 것을 체험적 사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기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실체이고 살아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경험하지 않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왜 기독교 변증을 사기라고 말하는가? 체험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신학이 사기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세미나 대상도 아니고 증명의 대상도 아니다.

 

하나님의 증명은 하나님 스스로 하신다. 사자를 변호할 필요가 없듯이 인간이 하나님을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주변에서 안다.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질 때 이집트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80살의 늙은이 하나를 보내어 장정만 60만 명을 데리고 나올 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신다. 이제 학자들은 하나님을 증명한다고 되지도 않는 얄궂은 짓들을 그만두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않으면서 떠드는 사기꾼 같은 목사들도 이제 그 짓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디에 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느냐의 문제에 직면했다. 학자로서 세상적인 대접과 명예를 누리다가 지옥을 갈 것인가, 아니면 신학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을 이 글을 보는 학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되어져간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38년 된 병자가 침상을 메고 갈 때 증명된다. 허접한 말장난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생활에서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증명된다. 알 수도 없는 이론을 만들어서 개념 속에 개념을 만들어 설명하는 염병들을(각주참조) 그만두어야 한다.

 

초기 기독교의 이단 시비가 신비주의에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신비주의가 이단 시비를 몰고 온 것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사탄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오인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영을 분별하는(1:10) 분별의 능력의 흠결에서 발단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영역에서 일할 때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할 주의사항이다.

 

이 글을 대하는 공동체의 지체들과 의식 있는 성도들에게 권한다. 신앙생활은 성경의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감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학자들은 신앙에 관해 어떤 것도 밝혀낼 수 없다. 구원을 얻는 신앙생활은 혼합주의를 벗어난 순수함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이방 철학인 헬라 철학이 뒤범벅되어 있다. 이 속에서 유대교의 인본주의와 헬라 철학의 혼합주의를 솎아내고, 신비주의를 걸러낸 순수한 하나님주의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학자들은 결코 분리해 낼 수 없다. 이론만 늘어가고 혼잡해질 뿐이다. 기독교는 순수한 하나님주의에 터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없다.

 

공동체 지체들은 신학이라는 늪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 신학이라는 늪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잠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육신의 생명을 마치고 음부로 내려갈 때, 그제야 사탄의 계략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적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비주의와 인본주의를 걸러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주변의 교회나 기독교들은 좌로나 우로 치우쳐 있는 자들로서 우리를 양옆에서 유혹하는 자들이라는 것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회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구원을 얻었던 초대교회는 어떤 제약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어떤 것도 조종이나, 통제, 억압, 강요 등을 행하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탄의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종과 통제, 억압과 강요가 판을 친다.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세상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성경적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과 인격적인 소통이 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영의 원리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가를 살피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가를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회복시리즈 합본 - 회복의 진수 일부 발췌 / 브라이튼 박 ]

 

 

이상은 회복의 진수 영의 원리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조하세요. 왜 성경 내용과 같이 살아지지 않는지 아시게 됩니다. 회복시리즈를 모두 읽어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바로 알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헝클어져 가닥을 추리지 못했던,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 (http://cafe.daum.net/onlyjesus1924) 카페에서 관련 내용의 강의영상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강의영상은 성경적 구원에 올라와 있습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책은 아래에서 구매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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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님이 오십니다.
글쓴이 : 박미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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