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무를 자
/ 보아스(Boaz)
[룻 3:13]
1. 인적사항
'보아스'는 광야에 있을 때,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였고, 여리고 기생 '라합'에게서 난 '살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와 '엘리 멜렉'과의 관계는 랍비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엘리 멜렉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보아스' 란 그의 이름의 뜻은 '그에게 힘이있다' 라는 의미로
시리아 역본에 의하면 그는 '율법에 있어서 유력자'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유력한 자'(2:1)로 표현 한 것으로 보아
신앙과 재력 모두를 갖춘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 멜렉의 기업을 물어줌으로 모압 여인인 '룻'과 결혼하였으며
'오벳'을 낳아 '다윗'의 증조부가 되었습니다. (4:13)
2. 시대적 배경
B.C.1390-1050년 사이를 사사기 시대라고 하는데
이 당시의 이스라엘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몹시 타락해서 제각기 살기에 바쁜 시기였습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는데
'엘리 멜렉'(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과
'나오미'(기쁨)부부는 베들레헴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이스라엘과는 적대 관계에 있었던 모합 땅으로
양식을 얻기위하여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신앙 중심의 삶에서 벗어난 환경 중심의 삶으로
경제적 추구를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어느덧 그곳에서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엘리 멜렉이 죽고 이어서 두 아들 '말론'(질병)과
'기룐'(상실하다)의 두 아들도 이어서 죽어버렸습니다.
결국 나오미와 젊은 두 며느리인 말론의 아내 '룻'(친구)과
기룐의 아내 '오르바'(돌아오는 자)만 남게 되었습니다.(룻 4:10)
나오미는 그제서야 자신과 남편이 모압 땅에 이주해 온 것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며느리입니다.
결혼한지 몇년 되지도 않아 청상 과부가 되었으니
그들의 젊음이 너무 아까와 고향으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출발하도록 권하였습니다.
그 두 며느리는 이스라엘 집안으로 시집와 모압에서
섬겼던 우상과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배우게 되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열매가 룻에게 나타납니다.
둘째 자부 오르바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룻은 결단코 시어머니를 좇아 베들레헴을 돌아오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의 결단으로 세 가지로 포기하였습니다.
1) 자신의 청춘의 인생을 포기하였습니다.
2) 고향과 민족을 등졌습니다.
3) 시모 봉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이같이 결단한데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려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신앙을 선택함으로
인생이 바르게 열릴 것임을 믿은 여인이었습니다.
한편 보아스는 베들레헴 근교에 많은 밭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지주로서 그 지방의 유력자 였습니다. (룻 2:1)
이 '유력 자'란 뜻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큰 용사'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용맹스러운 영웅이다'라는 뜻으로서
이 말은 보아스가 적들과의 투쟁을 통하여 이름난 용사였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의 위치는 그 지방에서 '영웅적이며 부유한 지주'로
충분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베들레헴의 자기 밭으로 와서 밭의 추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열심히 줏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눈은 동시에 신앙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룻에 대하여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룻에게 한 말을 보십시요.
[룻2: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는 이미 모합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좇아
이곳에 온 것과 늙은 시모를 봉양하는 효성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을
다 전해듣고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머물려는 가련한 작은 새에게
날개와 같은 은혜를 네 가지로 베풀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1] 날개는 보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룻에게 다른 곳을 가지말고 이 곳에
안전하게 머물도록 허락하였습니다.
[2] 날개 안은 따뜻합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고…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의
말씀대로 이는 위로와 안심을 주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3] 세째는 보장입니다.
그녀를 위하여 일꾼들에게 이삭을 다 베지말고
오히려 조금씩 뽑아버려 그녀로 넉넉히 줏게 하였습니다.
[4] 네쩨는 배부름입니다.
주인의 자리에 함께 참석하여 요리한 곡식을
마음껏 먹게 한 것입니다. (룻 2:14)
룻기에서 주인공은 룻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아 시행하는 남자 주인공은 보아스입니다.
룻기에서 가장 하나님의 섭리를 먼저 깨달은 사람은 나오미입니다.
그 때문에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른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알았고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야할 것도 제일 먼저 알아서 지시한 사람도 그녀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탐한 것도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판단이나 의지대로 행하지않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오직 행하며 베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보아스로 룻을 통하여
다윗의 증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말씀 따라 사는 삶이 섭리따라 사는 삶이며
섭리 따라 사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길임을
보아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날 나에게 위기가 있다면 오늘의 주신 말씀을 따르십시다.
우리의 앞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을 물어주실 것입니다.
3. 보아스 신앙 인품의 툭징
1) 부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의 남용이란 무엇일까요?
[1] 자기만의 소유를 위하여 부를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것으로 자기만의 기쁨과 위로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2] 자신에게 주어진 부를 더 쌓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컨대 값싼 노동력, 과도한 이자 적용, 상대방의 약점을 자신의 유익의
기회를 삼고 생대방의 재산을 헐값으로 매입하는…등
가난한 자와 무지한 자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것입니다.
[3] 부를 미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즉, 불법, 불의, 정욕, 향락, 지배, 군림, 핍박, 학대…등을 일삼으며
약한 자들을 부리며 자신의 농락거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딤전 6:17-18]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보아스는 자기 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여지기를 원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선한 일과 선한 사업에 자신의 부를 사용한 것입니다.
자신이 룻의 기업을 물으려면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해야합니다.
결국 자기 돈으로 산 기업은 나중에
일리 멜렉의 소유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계대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 룻을 취할 경우 그 집안은
남자가 모두 죽은 저주의 집안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에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 적인 삶보다 영적인 삶을 선택했습니다.
부란 혼 적인 삶에서는 군림의 역활을 하게되는 세력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에서는 좋은 일에 사용되어지는 도구가 됩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부를 선한 일의 도구로 사용하며 산 사람입니다.
2) 신앙으로 자신의 욕망을 잘 다스리고 살았습니다.
[신 25:7-9]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에 따르면 남편이 죽은 여인은 형제에게 나아가
죽은 형제의 대를 잇게 해 달라고 간청할 수 있는
관습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 법을 잘 알고있는 나오미는 룻에게 그 법대로
보아스에게 나아가 간청하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이에 룻은 몸을 단장하고 추수가 끝나는 날
타작 마당에 나아가 보아스 곁에 가만히 누었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놀라 일어나자 룻은 자신의 간청을 말하였습니다.
더우기 이 시대는 도덕적, 신앙적으로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에
서로가 허락한 남녀 관계는 얼마든지 져지르면서도
죄책감없이 살 수 있는 분위기엿습니다.
더군다나 룻은 젊은 여인이자 예뻤고
마음 또한 착한 정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소유하고 싶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현실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충족보다
미래적 상황 전개를 말씀에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제일 적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기보다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룻의 간청을 거절로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먼저 위로의 말로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룻 3:11]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다만 네 기업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먼저 그에게 묻고 나서 거절하면 내가 무르리라."
그리고 룻의 겉 옷을 펼치게 하고 보리를 여섯번 되어
부어주고 룻으로 하여금 시모에게 갖다주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은 시모 나오미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섯번이나 보리를 달아준 것입니다.
이는 단지 그가 먹을 것을 풍성히 보냄으로 현실적으로
나오미에게 배가 고픈 것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섯번이란 숫자의 의미를 전하게 한 것입니다.
즉, 여섯이란 숫자는 '노고와 봉사'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러나 일곱의 수는 '안식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안식년은 6년 봉사후 7년 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나오미에게는 안식년의 때가 이른 것임을
보아스의 암시를 받은 것입니다.
보아스의 사랑은 육신에 속한 것도, 혼에 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랑을 룻과 나오미에게 베푼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따른 책임과 도리를 지키는 신앙인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보아스는 오늘날 나의 기업을 물어주시는 예수님의 예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구약은 항상 신약의 예표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룻기에서 또한 보아스의 역할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형이요,
우리들에 대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물어주신 것의 예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스가 룻의 근족이었듯이
주님은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하나님 가정의 형제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받은 이 세상을
마귀의 유혹과 계략에 빠져서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더우기 성도들 중에는 지금도 사단의 세력에 눌리며
삶을 억울하게 갈취를 당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마귀가 덤벼들어 빼앗으려들면
우리의 힘으로는 그 세력을 막을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욥'도 하루 아침에 재산, 가족, 건강,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방인 룻을 자신의 신부로 맞아들였습니다.
주님도 이방인인 우리들을 자신의 신부로 맞아 들이십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을 찾아 주었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하여주셨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통하여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족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로 영적인 자녀들을 낳아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게 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보아스는 후손인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와 후손들로 재림하여 이 땅을 다스리실 때에 우리와 후손들로 왕같이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잃고 위기와 방황 속에 있는 성도분들은 지체치말고 속히
오늘 나에게 기업을 물어 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요.
룻과같이 하나님을 선택한 나의 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비록 지난날 한 때 나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실수로 잃어버렸던 기업들을
오늘 보아스처럼 오신 주님이 친히 나서셔서 모두 찾아 물어주실 것입니다.
/ 보아스(Boaz)
[룻 3:13]
1. 인적사항
'보아스'는 광야에 있을 때,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였고, 여리고 기생 '라합'에게서 난 '살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와 '엘리 멜렉'과의 관계는 랍비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엘리 멜렉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보아스' 란 그의 이름의 뜻은 '그에게 힘이있다' 라는 의미로
시리아 역본에 의하면 그는 '율법에 있어서 유력자'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유력한 자'(2:1)로 표현 한 것으로 보아
신앙과 재력 모두를 갖춘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 멜렉의 기업을 물어줌으로 모압 여인인 '룻'과 결혼하였으며
'오벳'을 낳아 '다윗'의 증조부가 되었습니다. (4:13)
2. 시대적 배경
B.C.1390-1050년 사이를 사사기 시대라고 하는데
이 당시의 이스라엘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몹시 타락해서 제각기 살기에 바쁜 시기였습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는데
'엘리 멜렉'(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과
'나오미'(기쁨)부부는 베들레헴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이스라엘과는 적대 관계에 있었던 모합 땅으로
양식을 얻기위하여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신앙 중심의 삶에서 벗어난 환경 중심의 삶으로
경제적 추구를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어느덧 그곳에서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엘리 멜렉이 죽고 이어서 두 아들 '말론'(질병)과
'기룐'(상실하다)의 두 아들도 이어서 죽어버렸습니다.
결국 나오미와 젊은 두 며느리인 말론의 아내 '룻'(친구)과
기룐의 아내 '오르바'(돌아오는 자)만 남게 되었습니다.(룻 4:10)
나오미는 그제서야 자신과 남편이 모압 땅에 이주해 온 것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며느리입니다.
결혼한지 몇년 되지도 않아 청상 과부가 되었으니
그들의 젊음이 너무 아까와 고향으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출발하도록 권하였습니다.
그 두 며느리는 이스라엘 집안으로 시집와 모압에서
섬겼던 우상과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배우게 되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열매가 룻에게 나타납니다.
둘째 자부 오르바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룻은 결단코 시어머니를 좇아 베들레헴을 돌아오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의 결단으로 세 가지로 포기하였습니다.
1) 자신의 청춘의 인생을 포기하였습니다.
2) 고향과 민족을 등졌습니다.
3) 시모 봉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이같이 결단한데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려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신앙을 선택함으로
인생이 바르게 열릴 것임을 믿은 여인이었습니다.
한편 보아스는 베들레헴 근교에 많은 밭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지주로서 그 지방의 유력자 였습니다. (룻 2:1)
이 '유력 자'란 뜻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큰 용사'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용맹스러운 영웅이다'라는 뜻으로서
이 말은 보아스가 적들과의 투쟁을 통하여 이름난 용사였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의 위치는 그 지방에서 '영웅적이며 부유한 지주'로
충분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베들레헴의 자기 밭으로 와서 밭의 추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열심히 줏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눈은 동시에 신앙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룻에 대하여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룻에게 한 말을 보십시요.
[룻2: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는 이미 모합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좇아
이곳에 온 것과 늙은 시모를 봉양하는 효성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을
다 전해듣고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머물려는 가련한 작은 새에게
날개와 같은 은혜를 네 가지로 베풀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1] 날개는 보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룻에게 다른 곳을 가지말고 이 곳에
안전하게 머물도록 허락하였습니다.
[2] 날개 안은 따뜻합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고…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의
말씀대로 이는 위로와 안심을 주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3] 세째는 보장입니다.
그녀를 위하여 일꾼들에게 이삭을 다 베지말고
오히려 조금씩 뽑아버려 그녀로 넉넉히 줏게 하였습니다.
[4] 네쩨는 배부름입니다.
주인의 자리에 함께 참석하여 요리한 곡식을
마음껏 먹게 한 것입니다. (룻 2:14)
룻기에서 주인공은 룻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아 시행하는 남자 주인공은 보아스입니다.
룻기에서 가장 하나님의 섭리를 먼저 깨달은 사람은 나오미입니다.
그 때문에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른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알았고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야할 것도 제일 먼저 알아서 지시한 사람도 그녀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탐한 것도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판단이나 의지대로 행하지않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오직 행하며 베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보아스로 룻을 통하여
다윗의 증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말씀 따라 사는 삶이 섭리따라 사는 삶이며
섭리 따라 사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길임을
보아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날 나에게 위기가 있다면 오늘의 주신 말씀을 따르십시다.
우리의 앞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을 물어주실 것입니다.
3. 보아스 신앙 인품의 툭징
1) 부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의 남용이란 무엇일까요?
[1] 자기만의 소유를 위하여 부를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것으로 자기만의 기쁨과 위로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2] 자신에게 주어진 부를 더 쌓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컨대 값싼 노동력, 과도한 이자 적용, 상대방의 약점을 자신의 유익의
기회를 삼고 생대방의 재산을 헐값으로 매입하는…등
가난한 자와 무지한 자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것입니다.
[3] 부를 미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즉, 불법, 불의, 정욕, 향락, 지배, 군림, 핍박, 학대…등을 일삼으며
약한 자들을 부리며 자신의 농락거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딤전 6:17-18]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보아스는 자기 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여지기를 원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선한 일과 선한 사업에 자신의 부를 사용한 것입니다.
자신이 룻의 기업을 물으려면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해야합니다.
결국 자기 돈으로 산 기업은 나중에
일리 멜렉의 소유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계대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 룻을 취할 경우 그 집안은
남자가 모두 죽은 저주의 집안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에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 적인 삶보다 영적인 삶을 선택했습니다.
부란 혼 적인 삶에서는 군림의 역활을 하게되는 세력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에서는 좋은 일에 사용되어지는 도구가 됩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부를 선한 일의 도구로 사용하며 산 사람입니다.
2) 신앙으로 자신의 욕망을 잘 다스리고 살았습니다.
[신 25:7-9]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에 따르면 남편이 죽은 여인은 형제에게 나아가
죽은 형제의 대를 잇게 해 달라고 간청할 수 있는
관습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 법을 잘 알고있는 나오미는 룻에게 그 법대로
보아스에게 나아가 간청하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이에 룻은 몸을 단장하고 추수가 끝나는 날
타작 마당에 나아가 보아스 곁에 가만히 누었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놀라 일어나자 룻은 자신의 간청을 말하였습니다.
더우기 이 시대는 도덕적, 신앙적으로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에
서로가 허락한 남녀 관계는 얼마든지 져지르면서도
죄책감없이 살 수 있는 분위기엿습니다.
더군다나 룻은 젊은 여인이자 예뻤고
마음 또한 착한 정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소유하고 싶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현실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충족보다
미래적 상황 전개를 말씀에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제일 적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기보다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룻의 간청을 거절로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먼저 위로의 말로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룻 3:11]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다만 네 기업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먼저 그에게 묻고 나서 거절하면 내가 무르리라."
그리고 룻의 겉 옷을 펼치게 하고 보리를 여섯번 되어
부어주고 룻으로 하여금 시모에게 갖다주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은 시모 나오미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섯번이나 보리를 달아준 것입니다.
이는 단지 그가 먹을 것을 풍성히 보냄으로 현실적으로
나오미에게 배가 고픈 것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섯번이란 숫자의 의미를 전하게 한 것입니다.
즉, 여섯이란 숫자는 '노고와 봉사'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러나 일곱의 수는 '안식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안식년은 6년 봉사후 7년 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나오미에게는 안식년의 때가 이른 것임을
보아스의 암시를 받은 것입니다.
보아스의 사랑은 육신에 속한 것도, 혼에 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랑을 룻과 나오미에게 베푼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따른 책임과 도리를 지키는 신앙인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보아스는 오늘날 나의 기업을 물어주시는 예수님의 예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구약은 항상 신약의 예표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룻기에서 또한 보아스의 역할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형이요,
우리들에 대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물어주신 것의 예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스가 룻의 근족이었듯이
주님은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하나님 가정의 형제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받은 이 세상을
마귀의 유혹과 계략에 빠져서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더우기 성도들 중에는 지금도 사단의 세력에 눌리며
삶을 억울하게 갈취를 당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마귀가 덤벼들어 빼앗으려들면
우리의 힘으로는 그 세력을 막을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욥'도 하루 아침에 재산, 가족, 건강,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방인 룻을 자신의 신부로 맞아들였습니다.
주님도 이방인인 우리들을 자신의 신부로 맞아 들이십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을 찾아 주었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하여주셨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통하여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족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로 영적인 자녀들을 낳아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게 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보아스는 후손인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또한 우리와 후손들로 재림하여 이 땅을 다스리실 때에 우리와 후손들로 왕같이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잃고 위기와 방황 속에 있는 성도분들은 지체치말고 속히
오늘 나에게 기업을 물어 주시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요.
룻과같이 하나님을 선택한 나의 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비록 지난날 한 때 나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실수로 잃어버렸던 기업들을
오늘 보아스처럼 오신 주님이 친히 나서셔서 모두 찾아 물어주실 것입니다.
출처 :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
글쓴이 : onuk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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