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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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스크랩] 서서 일하며 저주 받는 자와 누워 자며 꿈 꾸면서 복 받는 자

샤론의 수선화 2015. 11. 12. 13:37

창세기28/8,9,10,11,12,13,14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밧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 하였더라.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 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게 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이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 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참 사랑 하셔서 우리에게 복 주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들에게 어떻게 하면을 복을 얻을수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등장 시켜서 복 받는

자와 저주를 받는 자의 모습의 분명 하게 쪼개 나누어 적나라 하게 보여 주신다.


예를 들자면 가인과 아벨을 들어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 하시고,

베드로와 가롯 유다가 똑같이 죄를 범 하지만 베드로는 은혜를 입어 크게 쓰임을 받고 가롯 유다는 저주를 받고,


열 처녀의 비유를 들어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들림을 받고 미려한 다섯 처녀는 버림을 받는 이야기등을 들어서 분명

하게 복과 저주를 나누어서 우리에게 아벨, 베드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길로 돌이키라 간절히 원 하시는 것이다.


지금 기록한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도 똑 같은 말씀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로 두고 그의 아들 이삭으로 말미암아 쌍둥이 형제로 태어난 두사람을 들어서 한사람


야곱은 축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는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에서의 길을 걷는 자는 야곱의 길로 돌아 오라고

간구를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똑 같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경을 끼고 교회를 나가지만 에서의 신앙으로 저주 받을자와 야곱과 같은

신앙으로 복 받을자가 있다는것을 깨우쳐 야곱의 길로 돌이키라는 그 분의 마음이시다.


세상 속담에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반대로 서서 일하는 에서는 저주를 받고 누워서 잠 자며 꿈꾸는 야곱은 복을 얻는 것을 볼수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복과 저주를 받는 길을 알려 주시고 싶으신

당신의 마음을 담은 우리에게 쓰신 편지인것이다.


먼저 에서의 신앙을 살펴 본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에서는 지금 자기 즉 자신 행위를 보고 있다 그 자신의 행위가 아버지를 기쁘게 못 한다고 생각에 그것을 고쳐 보려고

또 다른 행위를 취 하고 있는것을 본다


이에 에서는 이스마엘에게,,,,,, 마할랏을 아내로 취 하였더라.


에서는 자기의 아내가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 해서 복을 얻지 못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거기서 돌이켜 보려고

아버지가 기뻐 하실 거라는 또 다른 아내를 취하여 아버지께 복을 얻어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누워서 자고 꿈꾸며 하나님을 보고 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은 누워서 자며 하나님이 서서 야곱을 위하여 일을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분명한 언약을 하시는것을 본다.


이것이 분명 하게 저주의 에서와 축복의 야곱의 신앙의 다른 점이며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복과 저주를 나누는

신앙의 샘풀로 보여 주신 것이다.


야곱과 에서는 똑같이 무엇인가를 보았다 에서는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고쳐 보려고 노력하고 수고 하는

반면에 야곱은 자기 모습을 보는게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쉬며 즐기고 있는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에서 처럼 자기를 바라 보며 때론 나는 새벽기도를 했어, 헌금을 했어, 직분을 받었서등

잘 한것에 우쭐 대기도 하다 때론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 음욕이 일어날 때가 있어, 십일조를 못했어 등으로 정죄를


하면서 스스로 정죄 가운대서 이런 것을 고쳐 보려고 노력 하며 자기를 바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신앙은 자기

자신을 믿는 저주 받은 에서의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것이다. 


마태복음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려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첫번째 요구가 먼저 자신을 부인 하고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요구 하신다.

부인, 아니 부에 인정할 인이다. 즉 너 자신을 인정 하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왜! 자기 딴에 잘 나고 선하다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창조주이신 그 분의 시각으로 보았을때 우리는 이미 틀려 버려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는 자들이기에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 죽음을 의미 한다. 우린 이미 아담안에서 더러운 사단의 성품을 받아 드려 하나님 앞에서 죽어버린 자들이기

때문이다 죽어 버린 시체가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하나님 저는 벌레요 구더기인 인생입니다.

그런 제가 당신 앞에서 무엇을 할수가 있겠읍니까 당신이 저주 하면 저주를 받을수 밖에 없는 무익한 자인것을 깨달아


자기에게서 돌이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에 기대와 소망을 두고 나는 쉬는것이다.


이 신앙이 야곱의 신앙이다.

야곱은 누워서 자며 꿈꾸고 그런 야곱을 위해서 복 받을수 있도록 하나님께 서서 일을 하시고 복을 주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에게 이런 복 주시기를 원 하셔서 간절히 성경을 통하여 말씀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신앙은 꿈을 꾸는것이다.

세상에서도 꿈이 있는 사람들이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아 갈수가 있다 세상에서의 꿈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노력 하고 수고를 해야지만 이제 신앙에서의 꿈은 먼저 자기가 부인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결을 시키는것이다.

저주를 받을수 밖에 없는 야곱을 위해서 서서 일 하셨던 하나님 그 분께서 이천년 전에 우리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을 환란과 고통의 저주에서 예수님 당신이 받으시고 속량 하사 우리가 복 받을수 있는 일을

이미 다 이루었다 고 선포를 하셨다


이제 신앙은 벌레요 구더기인 자기를 부인 해 버리고 그런 나를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복 즉 그 분이 다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발견 하고 그 약속을 내 마음에 받아 드리는 것이다.


로마서 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 하고 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 할찌라도 경건치 아니 한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하는 자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긴다고 하시고

일을 아니 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자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말씀 하신다.


일도 하지 않고 경건치도 아니 한자에게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잘못 보셔서 실언을 하시는가 아님 농담을 하시는가,,

아니다 일하지도 경건치도 못한 인생들을 의롭다 하실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사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흰눈 처럼 양털처럼 씻어 버려 의롭게 하시고 그 사실을 선포 하시는것이다.

에서는 일을 하는 자였다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그 마음 밑 바닦에는 자신을 믿고 있는것이다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수 있다는 마음으로 쉽게 말해서 나는 기도를 열심히 했어, 전도를 많이 했어,

열심히 봉사를 했어 이런 마음은 이제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 즉 대가로 여겨 내가 그렇게 신앙을 잘 했기 때문에


복 받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세우며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 신앙은 저주 받은 에서의 신앙이다.


 야곱은 일 한것이 없다 자기는 이미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는 자이기에 부인이 되어 버린것이다

그런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서  서서 일을 하신것이다


그 하나님의 하신 약속을 받아 드렸을뿐 이것이 값 없이 주시는 은혜인것이다


창세기25/23,25,26,27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리브가가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그 아이들이 장성 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두사람의 대조적인 성품과 능력을 단번에 볼수가 있다

에서는 씩씩하고 익숙한 사람 즉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다 외모적으로 털도 많고 용감해 들사람으로 


남자 다우면서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이 세상을 스스로 살아 갈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야곱은 이세상에 태어난것 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태어나지 못해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형의 힘을 의지해서 태어난 연약하고 능력이 없는 종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형처럼 들에 나가서 이 세상과 싸우며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집안에서 어머니 치미자락 붙잡고

기껏 팥죽을 쓰는것이나 배우며 살아야 했던 무능하고 연약하기만 한 사람이다.


참 감사하게도 성경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은 에서처럼 무언가 스스로 할수 있는 사람은 멀리 하고 이 연약하고

무능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자들 , 긍휼 즉 불상히 여기지 아니 하면 길이 없는 자들에게


당신의 관심의 초점이 향하여 있고 이런 자들을 찾아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복을 베푸시는것을 볼수있다


밤세워 그물을 내려도 한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밥등신 베드로처럼,,,,

38년이나 병으로 누워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병자처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스스로는 돌에 맞아 죽울 죽음에서 벗어 날수 없는 여자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이제 스스로에게는 길이없는 강도처럼,,,,,    


로마서 8/33,34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뿐 아니라 다시 살아 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


야곱처럼 스스로는 복을 얻을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서서 일 하셨던 그 하나님이 이천년에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서서 자기에게는 길이 없는 자들의 길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대신 저주로 피 흘려 그 피로 우리 죄를 씻으사 의롭게 해 놓으시고 또 의롭다고 선포 하시고

또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를 하신다고 말씀 하신다


이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또 나를 위해서 일하시고 계시는 그 분에게 소망을두고 나는 쉬면서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누리며  그 분의 인도함에 이끌려 가는 신앙이 바로 야곱의 복 받는 신앙이고 모든이들에게 이 복을


주시고파 날마다 말씀으로 부르고 계신다


마태복음11/28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isa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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