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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잘나가던 그들… 왜 목사가 되었나

샤론의 수선화 2011. 11. 2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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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그들… 왜 목사가 되었나

[2011.11.23 18:46] 트위터로 퍼가기 싸이월드 공감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를 닮은 주명수(57) 서울 밝은교회 목사는 오른손을 유난히 많이 휘두르며 말했다. 교인들은 말투가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그의 설교에 가끔 웃음을 터뜨렸다.

주씨는 과거 검사였고 지금은 변호사인 목사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정진영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그와 사법고시 23회 동기다. 엉덩이가 헐도록 공부하던 고시생 시절 후배들 전도로 예수를 믿었다는 주씨는 검사 시절 야간 신학교를 다니다가 1984년 신학이 아닌 검사를 때려치웠다. 그가 자서전 ‘할렐루야 변호사’에 밝힌 당시 생각은 이렇다. “그래, 더 이상 양다리 걸치고 살지 말자… 신학교 졸업한 다음에 신학교 교수를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하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나를 전문가로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꾼으로 삼으려 하셨는지는 몰라도, 나는 변화산의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세상으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고 그는 솔직하게 덧붙였다. 어쨌든 사표를 쓴 그는 가족을 이끌고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에서 돌아와 10여년 만에 ‘투잡’(두 직업) 목사가 된 것이다.

“바닥이에요. 이렇게 목회하는 게 다 주의 은혜예요. 이미 드러누웠어야 하는데 그저 잘 조절하고 병원 자주 출입하면서 약을 벌써 11년째 먹고 있어요. 약을 많이 먹으니까 몸이 엉망진창이에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일하다 떠나겠다는 생각이에요.”

사회에서 잘나가다 종교인이 되는 유명인사는 왕왕 있어 왔다. 승려나 신부는 드물고 목사가 많았다. ‘목사 변신’으로 신문에 실린 사람만 80년대부터 최근까지 최소 23명이었다.

출신별로 개그맨 곽규석 신소걸 김정식, 배우 문오장 임동진 김영두 고광우, 가수 이종용 윤항기 장우(코코 장) 최성욱 장욱조 조하문 오방희 김용남 홍수철, 운동선수 이영무(축구) 박철승(사격), 외교관 문봉주, 검사 주명수, 방송기자 조정민, 성우 전아 등이다. 이 중 17명(73.9%)이 연예인이다.

원맨쇼와 성대모사 달인이던 고 곽규석씨가 연예계 선두주자였다. 57년 영화 ‘후라이보이 박사 소동’으로 데뷔한 그는 구봉서와 명콤비를 이뤄 60, 70년대 전성기를 누린 개그맨이다.

그는 70년대 초 사업에 실패했을 때 “빚을 청산해 주시면 남은 인생은 주님만 섬기겠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곽씨는 그때 만난 하용조 당시 전도사와 함께 동료 연예인을 전도한다. 이때 구봉서와 영화배우 고은아 신영균, 가수 윤항기 이종용 서수남 등이 전도됐고 76년 연예인교회가 세워졌다.

84년 목사가 된 그는 이듬해 미국 뉴욕에 교회를 세우고 종신했다. 곽씨는 “목사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장로로 돌아가 하용조 목사 가방을 들고 싶다”고 했다고 그의 딸이 전한 바 있다.

곽씨가 숨진 99년 9월 한국에서는 윤항기(69)씨가 목사로 시무하는 경기도 성남의 교회에서 추모예배가 열렸다. 윤씨의 휴대전화 컬러링(통화연결음)은 자신이 부른 ‘여러분’이었다.

“저나 집사람, 동생(윤복희)도 그분 통해서 전도되고 성경공부도 하게 된 거예요. 대한민국 연예계에 믿음의 씨앗이 된 거죠.”

‘후라이보이’ 곽씨가 연예계 1호 목사였다면 윤씨는 가요계 1호 목사였다. 윤씨 뒤로 가수만 9명이 더 목사가 됐다.

“처음에 목사 되고 나선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딴따라가 무슨 목사가 돼가지고’ ‘지가 뭘 얼마나 할까’ 그런 식이었어요. 한 10년 동안 굉장히 갈등을 많이 했어요.”

-못해먹겠다 싶었군요.

“90년대 말에 관두려고 했는데 건강하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거예요. 나약한 인간이 약속을 저버리니까 (하나님이) 아내를 데려가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개하고 목회를 계속하게 된 거예요.”

윤씨는 77년 말 자신이 폐결핵 말기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고쳐주시면 남은 인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었다. 그는 살아서 목사가 됐고 음악신학교를 열었다.

“단지 교회 음악을 공부하려던 거였는데 음악목사 안수까지 받게 됐어요. 어찌됐든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요. 친구 장우가 우리 학교에 강의하러 왔다가 공부도 하고 늘그막에 목사 안수를 받았죠. 조하문도 나한테 안수를 받았고.”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를 부른 조하문(52)씨는 캐나다 토론토의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있다가 최근 귀국했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97년 성경 한 구절에 회심했고 2002년 목사가 됐다. 목사라는 굴레라도 써야 다시 타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코코 장’ 장우(69·본명 장영기)씨는 감기에 걸려 킁킁 콧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았다.

“저는 윤 목사 때문에 목사가 된 거죠. 원래는 제가 어느 (교회) 집회에 윤 목사를 불렀어요. 워낙 은혜를 받아서 윤항기한테 전화했더니 카바레에서 일하고 있더라고. 빨리 와 보라고 했더니 달려왔어요. 몇 달 지나고 전화 와선 ‘나 신학 하고 전도사다’ 하는 거예요. ‘야, 정말 할렐루야다’ 했지.”

장씨는 고등학생 때 패싸움을 벌였다가 소년원 신세를 졌었다. 교회도 안 다니는 형과 고모가 넣어준 성경을 읽으면서 그는 기독교를 접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또 있어요. 교회는 입 밖에도 못 내게 하던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에 오셔가지고 ‘야, 너 교회 나가냐’ 물어요. 새벽기도를 가보라는 거예요. 그게 유언이 돼서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갔죠.”

끼로 먹고살던 사람이 막상 목사가 되려니 족쇄를 차는 심정이었나 보다. “행동거지가 자유롭지 못할 거란 생각이 날 압박했고 생계 문제로도 막막했었다”고 장씨는 말했다. 지금은 한 대형교회의 북한선교 담당목사로 있는 오방희(53·본명 오애숙)씨도 여자 연예인으로서 같은 고민을 했었다.

“주변에서 신학 공부를 권했는데 신학교 가면 빨간 매니큐어, 빨간 립스틱도 못 칠하잖아요. 얽매이는 것 때문에 굉장히 싫었었죠.”

오씨는 유행가 ‘미리내’로 뜨고 5집까지 낸 가수였다. 그는 85년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때 기도해준 목사를 통해 신앙에 눈떴다고 그는 말한다.

“병실 텔레비전에서 유행가가 나오는데 얼마나 유치하게 들리던지. 가사가 남녀간 사랑, 이별, 한탄, 이런 거 아니에요? 그 후로는 유행가 안 하고 하나님만 찬양하겠다고 한 거예요.”

‘밥풀떼기’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개그맨 김정식(52)씨도 목회를 시작하고 오씨처럼 연예계엔 완전히 발을 끊었다. 그는 기자의 연락을 불편해 했다.

“옛날에 연예인이었다는 게 솔직히 목회에 방해가 돼요. 제 얘기가 나가면 집회 요청이 들어옵니다. 저는 피멍 들 정도로 엎드려서 기도하고 가는데 거기선 제가 연예인이었던 게 중요하지, 지금 얼마나 은혜로운 일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요청을 무조건 마다하기는 어렵고….”

뼛속까지 목사로 변한 것 같았다. 그는 유학하던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사 부탁으로 기도원에 갔다가 눈물을 쏟고 변했다고 한다. 귀국 후 장애인 복지 사업에 몰두하던 그는 어머니가 실려 들어간 응급실 앞에서 “어머니를 살려주시면 (목회) 하겠다”고 기도했고, 약속을 지킨 경우였다. 한 예술학교 학과장이기도 한 김씨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목회의 연장”이라며 “그런 값어치가 없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둬야죠”라고 했다.

배우 출신 목사 임동진(67)씨는 연극을 목회의 연장으로 봤다. 전화했을 때 그는 새내기 연극인들과 예배를 드리러 대학로에 가 있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소재로 한 연극을 준비해 내년 일본에서 공연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임씨는 전부터 독실한 교회 장로로 알려져 있었다. 2007년 그가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런 임씨는 정작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했다는 걸 목회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참 가짜였어요, 가짜. 교회 가면 탤런트 장로, 연예계 가면 장로 탤런트. 이 호칭이 부담인 줄도 모르고 체면치레하는 장로였단 말이죠.”

그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기사회생하면서 목회를 결심했다. 경기도 용인에 교회를 세운 지 만 5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는 건강한가.

배우 최초로 목사가 된 사람은 고 문오장씨였다. 그는 심한 위염을 앓던 중 전도됐고 87년 목사가 됐다. 반공 드라마에서 공산당원으로 나온 그를 두고 “얼큰하게 취한 김정일이 ‘그 새끼 언제 평안도 사투리를 그렇게 배웠어. 통일되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하고 욕을 하더라”고 80년대 납북됐다 탈출한 배우 최은희는 전했었다. 문씨가 경기도 고양에서 맡던 교회는 현재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70년대 중반 ‘너’라는 노래로 스타가 됐던 이종용(62)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세운 한인교회를 18년째 맡고 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만족감에 젖어서 축축했다.

“미국에 온 지 내년이면 30년째인데 목회가 아주 보람 있고 재미있어요. 체질이 바뀐 것 같아요. 죽은 풀이 다시 살아나고, 시든 풀이 파릇파릇해진 것처럼. 그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죠.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삶의 결과는 구치소였죠.”

그는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76년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었다. 구치소에서 사형수의 권유로 성경을 읽었고 6개월 뒤 변해서 출소했다. 그는 “가수활동 할 땐 허전함 고독 절망 두려움이 가득하면서도 아닌 척하고 살았다.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야 하나님 말씀이 보였다”고 했다. 79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예수를 연기하면서 희생적 사랑에 눈뜨고 목회를 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때 날리다 목사가 된 전문직업인이 연예인뿐이겠는가. 일본 오사카온누리교회 목사 문봉주(62)씨는 72년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던 외교관이었다. 주미 뉴욕총영사, 주뉴질랜드 대사 등을 지냈다. 정년퇴직 후 목사가 된 그는 지난해 파송됐다.

“80년대에 도쿄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었는데 그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하려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가 10년 이상 평신도로 사역을 했어요. 그땐 목사님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목회가 이런 줄 몰랐어요. 보통일이 아니더라고요.”

-남편 퇴임 후 한가로운 노후를 꿈꿨을 아내에겐 날벼락이었겠습니다.

“처음엔 집사람이 ‘콜링’(부르심)을 받았으면 혼자 하지 왜 나까지 사모를 하라는 말이냐면서 힘들어했죠. 더군다나 작년 8월 1일자로 부임했는데 엄청 더웠습니다. 100일간 비 한방울 안 왔어요.”

모든 기도와 설교를 일본어로 한다는 그는 “주일예배 참석인원이 성인만 300명을 넘는데 일본에서 이 정도면 초대형교회”라며 “평신도로서 집회할 땐 갔다 오면 끝이지만 지금은 교인들을 쭉 보니까 변하는 게 보이더라”고 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으로 목사가 된 이영무(58)씨는 태국 방콕에 있었다.

“김경주 축구선교사가 현지 팀 부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외국용병 7명을 다 한국선수로 기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지도자가 필요해서 제가 본의 아니게 연말까지 하게 됐습니다.”

‘기도 세리머니’ 원조인 그는 후배 선수들을 전도하다 한계를 느껴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를 세웠다. 10년쯤 선수 중심으로 목회하다 지금은 축구 선교에 전념한다고 했다.

-축구로 어떻게 선교가 됩니까.

“공산국가나 아랍권에 기독교가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우리는 그런 곳에 자연스럽게 가서 축구를 하고 어린이들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간 나라가 50∼60개국 돼요.”

비로소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쯤 ‘여자배구 대부’로 불리는 전 배구감독 김철용(57)씨가 목회를 꿈꾸며 신학 공부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글 강창욱 기자·그래픽 이영은 인턴기자 kcw@kmib.co.kr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영심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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