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on the way to heaven

**천국지옥 에대해**

지옥에 간 목사, 천국에 간 흉악범//Kingdom of Heaven OST Additional Tracks Disc4

샤론의 수선화 2021. 9. 23. 01:14

Kingdom of Heaven OST Additional Tracks Disc4

https://youtu.be/JHvXmuBAeeM

 

지옥에 간 목사, 천국에 간 흉악범

지옥에 간 목사, 천국에 간 흉악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경우, 이 구절을 단순히

일요일날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선데이 크리스찬을 향한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인 22절을 보면

이들은 선데이 크리스찬이 아니라

외적인 열심으로

주의 일을 했다고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태복음 7:22)

 

이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선포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치유하고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행했는데..

 

주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판결하십니다.

(마 7:23)

 

 

 

다시 말해, 

21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의 

진짜 의미는..

 

형식적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교회안에서 주님을 위한다는 

이런저런 외적인 행위가 많이 있지만,

실상은 주님의 마음에 합한 상태에서 

주님 뜻대로 하는 행위들이 아니었기에..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실제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20,30년 이상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 교회안에서의 직분과 

이런저런 봉사이력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얼마나 하고

무슨 외적인 일들을 얼마나 했든..

 

그것이 주님 뜻대로 행한게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이땅에서 이렇게

경건한 모양의 행위들을 하면서

신앙인으로써의 삶을 살았음에도

주님앞에 불법자로 판결받은 이들과 정반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옆에서

죽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던 우편강도의 경우가 

매우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눅 23:39~)

 

이 우편강도의 경우는,

일생을 죄악에 찌든 행악자로 살다가

결국 로마법정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죽기 직전의 상황에까지 몰리게 됩니다.

 

신앙인으로써

성전에서 주여 주여 부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 선포하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이런저런 권능을 행한 이들과..

 

대놓고 악행을 일삼는 

그런 삶을 평생 살다가

결국 그에 합당한 판결을 받고 

사형장에 끌려간 행악자..

 

보여지는 삶 자체만 놓고보면

이들 가운데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지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눈에 비춰지는 우리 기준에서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행한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한 

경건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죽으면 당연히 천국 갈거라 믿고

죽음앞에서도 당당했을 것입니다.

 

1,2년도 아니고 수십년을

주님의 이름으로 그런 행위들을 한거라면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게 당연해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어긋난 중심의 방향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지옥에 가게 됩니다.

 

반면, 우편 강도는

평생을 행악자로 살다가..

 

죽기 직전,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자비를 구합니다. 

 

그리고는 주님과 함께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눅 23:43)

 

결국 이땅에서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

정작 죽어서는 또 정반대의 곳으로 가게 되는..

 

사람 기준으로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보여지는 현실에 따른 기준과 잣대를 정하고 

그에 따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성경속 이런 상황이 

전혀 형평성에 맞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오직 하나,

우리 중심의 온전함 여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땅에서 일평생

그 어떤 선해보이는 외적 행위를 많이 했든..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내가 행한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우편강도처럼

수십년을 포악한 삶을 살았더라도..

 

그가 결국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주님앞에 자기 중심을 바로잡았다면..

 

주님앞에 자기 죄를 회개한 그 행위가 

하나님이 카운트하시는 선한 행위가 되어

주님 계신 곳에 함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이미지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남겨주신 댓글입니다.

 

 

 

ㅋㄹㄴ가 터지기 전까지

30년간 절과 무당집을 왔다갔다 하며

미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삶을 살았는데..

 

ㅋㄹㄴ 팬데믹 이후 

소위 말하는 음모론에 관심이 생겨서

그 부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하다가..

 

성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앞에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지금은 그렇게 만난 주님과 골방에서 대면하며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삶을 보면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진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절과 무당을 오가며 

귀신들과 동행하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ㅋㄹㄴ가 터지고

관련 음모론을 파헤치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됐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제대로 분별하여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나아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음모론을 파다가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분들의 얘기는

종종 들어왔지만..

 

댓글을 통해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초월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고 그리는 생각의 틀을 넘어서

매우 다양한 방식과 경로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에게 

사람이나 공동체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셔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들이

지금 시대엔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전 영상에서

생각의 부재에 빠진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메세지를 전한 바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있는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으로 

자기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온전한 영적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얼마든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방식과 경로를 통해서도

당신께서 직접 일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넘게 무당집과 절을 오가며

귀신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음모론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됐고

그로 인해 결국 하나님께서 

그분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셨고..

 

지금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안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며 살고 있다는 것인데..

 

지금 현재 어떤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이분이 이렇게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

그분과 동행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종교적 프레임에 갇혀 있는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에도 몇몇 분들이

"그래도.. 그래도.."

신앙생활은 반드시 교회공동체에 

속해서 해야 한다는식의

말씀(댓글)을 하셨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배도했지만

그래도 건강한 공동체들도 있으니 

반드시 그런 공동체를 찾아서 거기에 속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의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는 구절의 

표면적인 의미만을 근거삼아

자기 종교적 기준을 고집하는 것인데..

 

이 구절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선

이미 영상을 통해 자세히 나눈바 있으니

오른쪽 상단의 추천영상을 클릭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본인들이 사고하는 기준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맞춰져 있음에도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적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분별하고 이해한다면..

 

공동체에 속해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종교(인본)적 기준은

반드시 재설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런 종교적 기준이 

진리에 합당한 절대기준이라면..

 

음모론을 파다가 주님 영접하고 

골방에서 예배 드리고 있는 저 분은

옳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고..

 

저분이 지금.. 

하루하루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간증은

거짓된 간증이라는 말이 됩니다.

 

공동체에 속해서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절대적 잣대라고 한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강권적인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공동체에 속해서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절대적 잣대라고 한다면..

 

아무리 정부지침 때문에 교회들이 문을 닫고

또 배도한 교회들이 대부분이라 해도

건강한 공동체가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초신자라면 더더욱 하나님께서 

그런 공동체를 찾도록 강권적으로 인도해주시지..

 

골방에서 예배드리며 살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저렇게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본질인지를 깨닫는다면..

 

배도에서 구별되어 정결한 공동체로

인도하기도 하시지만..

 

어떤 교회공동체에 속하지 않고도 

강권적인 은혜로 역사해 주시며

함께 동행해 주시는 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주류교단에 속해 있는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 기준으로 보면 이단은 아닐지라도..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내건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영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시대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만 올인하는

거룩한 공동체는 찾기 힘든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강권적인 역사로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30년을 영적인 방황을 하다가 

음모론 때문에 우연히(?) 

예수님을 믿게 된 저 분과는 정반대로.. 

 

수십년간 제도권 교회내에서 

정석적인 신앙생활을 해온 많은 분들은

오히려 본질에 대한 초점이 

갈수록 흐려지는 것을 봅니다.

 

여기.. 

어떤 목사님 한분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수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함으로

방언 받고 성령이 임하도록 인도하고..

 

말씀과 치유사역에 열심을 다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병이 치유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는 등..

 

주님의 이름으로 

수십년간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그런데 ㅋㄹㄴ가 터진 이후엔..

 

정부의 방역지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예배문을 어렵지 않게 걸어잠근 채

지금껏 유지해 오고 있으며..

 

ㅂㅅ을 맞아야만 다시 예배문을 열고

또 해외를 오가며 사역을 할 수 있으니

1차, 2차, 부ㅅㅌ샷까지 맞아가며

자신이 하는 사역이 지장받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목사님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ㅂㅅ의 실체가 어떠한지에 대해선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 

 

ㅋㄹㄴ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당집을 오가며 우상숭배를 하던 분과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사역을 하던 이 목사님의

영적인 상황은 정반대가 되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요?

 

이것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림막이 내면에 

쳐져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 우편에 있었던 강도는

죽음을 눈앞에 목도하자 

스스로 마음이 겸비하여져서

주님앞에 회개하고 자비를 구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공포스런 상황에 의해

그동안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가림막이 제거된 상태였기 때문에..

 

비로소 주님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던

아합과 므낫세왕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자 

그제야 마음이 겸비해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앞에 엎드려진 것도

그런 케이스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겸비함으로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림막이 내면에 쳐져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앞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내면의 가림막이

자신이 겪은 (영적)체험이나 

그동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이런저런 행위(사역)들이라면..

 

더더욱 자기자신을 

겸비함으로 돌아볼 수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시대적 차원의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아예 분별력을 상실해 버리게 됩니다. 

 

지금 시대적 차원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사람들을 멸망길로 이끌기 위한 사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의 영역에만 갇혀서

눈이 어두워져 버린 사람들은

시대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분별력이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에

사탄이 설치한 미혹의 덫에 그대로 걸리게 됩니다.

 

지금 교계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적 차원의 문제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적어도 95% 이상이

개인적 차원의 영역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사님들이

당장 자신이 역점을 쏟는 사역은

교회건물 안에서의 그 사역이고..

 

해외에서 선교하는 분들이

당장 모든 집중을 다하는 사역은

해외에서 선교활동하는 그 사역이고..

 

교인들 역시 각자의 개인적 삶의 영역에

매몰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개인적 차원의 영역이 

그 내면에 틀로 자리한 상태에서.. 

 

수면위로 드러나 있는 현실에 

압도당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교묘한 전략으로 사람들을 멸망길로 인도하는

사탄의 전략을 분별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이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개인적 영역이

종교적 틀로 자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종교적 틀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견고한 가림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 틀에 갇혀 버리면

세상에서 통용되는 옳고그름의 가치기준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판단의 절대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게 아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이런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만..

 

당장 내가 하는 사역이

개인적, 교회적 차원에 국한된

일들이라 해도.. 

 

내 중심의 초점이 

이땅이 아닌, 내가 하는 사역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맞춰져 있기 떄문에..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시대적 차원의 일들을 바르게 분별하고

또 그에 맞게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중심이 아니면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획일화시키게 만드는 

현실에 그대로 압도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이 기만적 상황의 실체에 대해 

근거자료를 보여주고 얘기해도..

 

처음부터

겸비한 마음으로 분별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보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져 세상 흐름에만 순응해 버립니다.

 

30년을 무당집을 왔다갔다 하는 삶을 살다가

ㅋㄹㄴ가 터지자 이게 뭔일인가 싶어(?)

음모론을 공부하다가 

주님앞에 회심하고 돌아온 이 분의 경우..

 

우편 강도의 경우처럼

그 내면에 회개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림막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무당집과 절을 30년간 오가며

그 내면에 무당귀신과 

부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면..

 

음모론을 공부하는 것까지야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치더라도..

 

그 행동이 성경을 보는 것으로 이어지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로 이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은혜이자 복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태가

보지 못하는 소경된 상태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개인적 영역에만 갇혀

실상은 그걸 이용하고 있는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어 멸망길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결국은 죽음 직전의 우편강도가 최종승리자가 되어

주님 계신 곳에 영원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으로 수십년간 이런저런 사역을 하고

주여주여 하며 수십년간 신앙생활을 했지만..

 

정말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경외하는지의 여부는..

 

마지막 때,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 시대적 차원의 문제앞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지금 그 일들이 명명백백 드러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던 

비유를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화에는 많은 장르들이 있습니다.

 

휴먼, 멜로, 코미디, SF, 액션, 

스릴러, 공포, 전쟁, 판타지 등등..

 

이런 많은 장르들 가운데

휴먼, 멜로, 코미디(반반)같은 장르가 

개인적 차원의 영역에 해당하는 영화들이고..

 

SF나 전쟁 등이 

개인적 차원의 영역을 초월한 영화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해당 장르의 스토리는 절대

다른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지 않습니다.

 

휴먼 멜로같은 장르에서 

SF 스토리가 갑자기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영화와 현실이 다릅니다.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인 지금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내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일들만 

지속될거라 여깁니다.

 

영화에서처럼 

휴먼, 멜로, 코미디같은 

개인적 영역에 국한된 일들만

내가 사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SF, 공포, 전쟁같은 장르의 일들은

내 삶의 영역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지진, 홍수, 테러, 전쟁 등 

산발적 재난들이 일어나지만..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내가 사는 현실은 지금처럼 지속될거라 여깁니다.

 

지금 이스라엘, 미국, 호주, 베트남 등등

여러 나라에서는 

아주 강압적인 ㅂㅅ주입정책을 시행하면서

사람들이 ㅂㅅ을 맞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에 사는 

한 교민분이 쓰신 글에 의하면..

 

지금 베트남에서는 계엄령을 실시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100% 강제주입을 시키고 있다면서.. 

 

도시 전체를 봉쇄해놓고

집집마다 노크를 하고 다니며

ㅂㅅ을 맞도록 강요하고.. 

 

맞지 않은 사람들은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고

그냥 방안에서 굶어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비단 베트남에 국한된 일일까요?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곧 모든 나라에서 펼쳐질 일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앞으로도 나와는 상관없다 여기면서..

 

아무리 ㅋㄹㄴ로 인해

삶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해도..

 

이전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강제적으로 

ㅂㅅ을 맞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된다 해도..

 

심상치 않은 시대 변화의 흐름으로 

인식조차 못할거라는 것입니다.

 

마치 방금 가스불을 켜놓은 냄비안에 

개구리를 삶으려고 집어넣었는데..

 

정작 개구리는 

살짝 뜨뜻해진 느낌만 있지

큰 변화는 없다고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만 살펴보더라도.. 

마지막 환란에서는

SF, 전쟁, 공포, 스릴러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일들이..

 

몇몇 지역에 국한된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요동치게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에 대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마 24:21)

 

 

무엇보다 이 일은 누구도 예외없이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거라"고 말씀합니다.

(눅 21:35)

 

그래서 성경을 바로 알고 그에 맞게

시대적 상황을 분별하는 이들은..

 

당장 지금 내 눈앞에 보여지는 

근시안적 현실을 넘어선 시대적 차원의 일들이 

우리앞에 서서히 도래하고 있고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게 마음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개인적 영역의 삶을 내팽개치고

산속에 올라가 휴거되길 기도만 한다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은

개인적 차원의 영역에 해당하는 삶이지만..

 

그런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서서히 드리워지는 시대적 차원의 일들을 

성령안에서 바르게 인식하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상황을

영적으로 깨어서 분별하지 못하면..

 

개인적 영역에만 매몰돼버린 채,

당장 이런 시대적 문제가

내 개인적 삶의 영역에도 드리워져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눈과 귀가 가려진 채 

세상 흐름에 그대로 휩쓸려

미혹된 방향으로 나아가 버립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특징은

영적인 눈이 바로 떠진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과 동행하며 나아가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덫에 걸리거나 늪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중심으로

내 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보고 

그분과 동행하며 나아가는데..

 

내 눈으로 보여지는 귀로 들려지고

몸으로 느껴지는 개인적 영역에만 갇혀서..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시대적 현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건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데..

 

그 공동체가 

이런 시대적 현실에 대해

어떻게 분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면..

 

미혹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적 차원의 현실을

바른 안목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대놓고 선을 악하다, 악을 선하다 하며 

미혹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이들이나..

 

아니면 이런 시대적 현실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는 이들이 주도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속히 그런 공동체를 벗어나 구별되야 합니다.

 

지금 시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단순한 세상 문제가 아닌,

우리 구원과 직결되는 

너무나 엄중한 영적 문제이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거짓에 미혹되지 않고

바르게 분별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영적인 차원의 이런 문제들을

바르게 분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만약 공동체가 

그런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공동체가 존립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바른 분별과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받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약 공동체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선하다 하는 

미혹된 흐름을 부채질한다면..

 

지금같은 시대엔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미혹의 늪에 빠져 있는 것과 같기에

본인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거기서 벗어나 구별되야만 합니다.

 

콘서트홀같은 화려한 예배당과

최첨단 음향시스템을 갖추고 

영화스크린같은 LED 화면을 띄워놓고 

수십명의 찬양단이 나와서 노래하며

누가 봐도 부족함 없어 보이는 

예배형식을 갖추고 예배드린다고 하지만..

 

정작, 눈과 귀가 멀어버린 채,

지금의 시대적 현실에 대해 되려

악을 선하다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미혹 길로 인도하거나

아니면 철저히 침묵하고 외면함으로..

 

소경과 벙어리가 되버린 교회들이 

너무나 많은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누룩이 온 덩이에 퍼져버린 상태임에도

깨닫지 못한 채 다 함께 멸망길로 나아간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또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안에서 

그분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바르게 분별할 수도, 

바르게 행동할 수도 없는 

그런 환란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전세계 누구도 예외없이 모두가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휴먼, 멜로, 코미디같은 

개인적 영역의 일들만 일어나던 내 삶에..

 

경험하지 못한 시대적 차원의 일들이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ㅂㅅ을 맞지 않으면 

일할 수 없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이런 시대적 차원의 일들이

직접적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다는 것은..

 

이제 그동안 우리가 살았던

개인적 차원의 현실 영역을 넘어서..

 

어떤 시대적 차원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에게 더욱 강한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적 현실앞에 

바른 분별과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주님의 위로와 실제적인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흐름에 휩쓸려 아무 생각없이 나아가다가

결국 멸망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종종 댓글로

ㅂㅅ 때문에 식구들이 나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고

직장에서 압박이 심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이런 시대적 차원의 일들을 마주하며

믿음으로 인내하고 계신 많은 분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그래서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짧게라도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마음을 붙들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며,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긍휼한 마음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리를 전하는 메신져로써의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떄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6:27, 롬 2:6, 계 22:12)

우리가 마음을 붙들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은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우리가 행한대로 다 보응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앞에

첫추수로 들림받는 합당한 신부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엘샤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