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on the way to heaven

믿음과 삶의 이야기

코로나 사태가 인위적이라면 백신 접종도 점점 더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 종말에 무관심하다는 건 기독교를 잘 모른다는 것...

샤론의 수선화 2021. 6. 20. 01:34

 

게시글 본문내용

1
"아니, 법이 왜 그렇게 되어 있대요?" 불완전한 사람이 만든 법을 두고는 이런 말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법은 다르다. "영원한 지옥이 말이 되냐?"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만큼 완전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한다. 실제로 지옥에 가면 그러한 지옥이 완전하다는 걸 알게 된다.

2
지옥에서 죄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는 시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흐름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참기 어려운 공포다. 이땅에서 지옥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도 다른 데 정신이 팔려 그 존재를 경시하며 사는 것부터가 영원한 무시간의 고통의 시작이다.

3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진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면, 이는 사탄이 배후에서 노략질을 한다는 증거다. 가령 영원한 지옥이나 휴거와 같은 종말론의 진리에 왠지 귀와 마음을 줄곧 닫고 싶다면 빨리 깨어날수록 좋다. 성경은 아주 중시하는 진리여서다.

4
신앙생활을 그럭저럭 해나가면 핍박받을 일이 별로 없다. 신앙의 중심을 딱 바로잡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히 순종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그때부터 안팎으로 안 당해도 될 핍박이 생긴다. 환경적인 핍박 못지않게 좁은 길을 벗어나 애매한 고난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고생도 더 많다.

5
내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데 큰 차이가 안 나타나는 때가 유일한 순종의 기회다. 조만간 들이닥칠 큰 환난의 때에는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날 하루가 사무치도록 그리울 것이다. 마냥 평범해 보이던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비범한 준비를 위한 절호의 기회들이었는지도 알게 된다.

6
강단의 설교가 실생활의 이것저것을 다양하게 안 다뤄줘서 그 이것저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을 생활화해서 신앙의 중심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이런저런 방법론을 알아도 그때뿐이고 열매로 정착되진 않는다. 성령충만이라는 신앙생활의 인프라가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7
미국에서 지난 20년간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4,182명, 지난 4개월간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4,178명인데, 보고율이 낮아 실제로는 더 많다. 평균 10년에 비해 1년 정도의 개발 기간으로 인체에 어떤 장단기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책임 안 지는 백신은 정상이 아니다.

8
미국 정부의 가정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유출된 거라면, 백신의 의약적 순수성 또한 의심받을 만하다. 정치성 없는 순수한 의사들이 이 백신에 사람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성분이 있다고 증언한 내용을 포함해 끝까지 백신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게 안전하다.

9
세상 권력과 기업과 사회 인프라가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듯 은근히 접종을 부추기거나 의무화하려는 시도는 헌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 감기나 독감처럼 코로나도 집단면역이 안 된다는 과학적 정당성도 있는 마당에 보건적인 공익만 내세워 더 중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사사로이 침해하지 말 것.

10
공부를 안 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있다면 그래서 생긴 무지 또한 죄가 된다. 늘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영역만 공부하고 말면 무관심한 영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감각해진다. 이런 성향이 쌓이면 구원의 필수나 선택 과목이 뭔지부터 시험 감독까지 제맘대로 정한다.

11
사람들은 우리 각자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돌아보면 외모는 일의 결과와 관련되고, 중심은 일의 동기와 관련된다. 외모는 처음부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동기만은 내가 바꿀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는 내용은 내 동기다. 정말 사랑이었나 자기 사랑이었나를 보신다.

12
어쩌다 동물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내가 괜스레 미안해진다. 인간들의 타락으로 그들도 현재의 행복을 어느 정도는 유예하는 법을 몸에 익히고 대체로는 만물의 회복을 기다리며 탄식하며(롬 8:21-22) 살아가는구나 싶어서다. 그들도 내심으로는 행복을 바란다는 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13
목회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쉬울 것 같은데 결코 쉽지 않았다. 쉬울 것 같아 보이는 데 속다 보면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진짜 실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다 보니 사랑할 힘도 전혀 없다. 주님이 더 드러나게 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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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때의 사역자들이 철저한 회개와 성결 없는 평화를 외치거나, 주의 재림의 길을 예비케 하는 데 우선순위를 안 두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귀에 달싹한 말로 인기를 얻으려 한다. 가까운 미래의 인류가 아주 힘든 때를 맞이할 거란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거짓선지자 되기가 너무 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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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코로나사태가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공작이었다면, 그 목적은 전 세계인들에 대한 백신 접종 실험, 장차 일어날 세계적인 경제 붕괴의 밑밥, 트럼프를 내쫓기 위한 정략적 공포 분위기 조성, 전체주의적 통제사회 리허설 정도일 수 있다. 치사율로나 증상으로나 코로나는 처음부터 펜데믹 깜냥이 아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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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재 코로나 상황은 펜데믹을 끝내고, 백신 접종은 독감처럼 정례화하고, 백신 여권은 주마다 입장이 달라 공식 도입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보다 의무감을 더 부추겨 실험적인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분위기에 괜히 휩쓸릴 필요가 없다. 코로나 사태는 일종의 거대한 사전 실험용 단막극으로 끝날지 모른다.

(미국 코로나 사태는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https://youtu.be/Hlwzrh7Hs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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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주의적인 종말론은 무천년설처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의 사건들을 현재적으로 상징화, 영화시키는 걸 실제 역사로 보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학문적이라 믿게 만들었다. "지성인이 어떻게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어?"라는 식의 자존심과 자유주의 신학의 윤리적 접근을 종말론에 짬뽕시킨 결과다.

18
코로나 사태와 백신을 보는 시각이나 가치관이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신자들이 많다. 이 중대한 사태가 마지막때 적그리스도 체제의 서막이자 예행연습이니 경계하자고 외쳐도 안 듣는 이들은 여전히 안 듣는다. 마치 휴거에 대해 많이 외쳐도 휴거될 자들만 듣고 깨어 준비하는 형국과 비슷하다.

19
백신 접종의 후유증은 당장 안 나타나도 수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고, 이는 제조사들조차 잘 모르고 책임도 안 지겠다고 발뺌한 부분이다. 각 국가의 정부가 나쁜 뜻으로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도 모르는 검은 손이 작용하고 있는데, 너무 교묘해서 가려져 있을 뿐이다.

20
현재 세계정부주의자들의 주된 아젠다는 기후 변화, 세계 인구 감축, 디지털 화폐, 세계단일정부, 반기독교 법안과 의제들 등이다. 이러한 마지막때의 트렌드가 인간들의 힘만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인류를 위하는 줄 알고 하는 모든 일들조차 성경의 예언을 성취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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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유신진화론과 무천년설, 진보적 정치 성향에 일치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보수 꼰대' 취급하려는 분위기가 오히려 기독교를 경직되게 한 쪽으로 몰아붙이는 듯하다. 단 한 마디라도 그 흐름을 거스려면 스스로 왕따당할 줄 알고 자유함 없이 서로 알아서 눈치를 본다.

22
"난 당장 살아가기도 바쁜 사람이라 종말론 같은 분야에는 별로 관심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신자들이 더러 있다. 마치 큐티를 강조하면 "난 묵상 체질 아닌데요"라고 말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개인의 종말이든 역사의 종말이든 종말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건 실은 기독교를 제대로 잘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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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성경에서도 보듯 세상의 죄악상에 대한 심판의 경고등일 수 있다. 교회의 회개가 우선적인데 교회마저 세상의 조치만 바라본다. 백신만 맞으면 세상의 뒤에 숨어 그럭저럭 이 사태를 무사히 피해 가리라고만 믿는다면, 세상을 뛰어넘어 교회만 가질 영적 기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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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말씀이 코로나 걸릴까봐 불안한 거랑 백신 접종으로 부작용 겪을까봐 불안한 거랑 같으시대." "그럴 수 있지." 길을 지나가다가 그냥 들려서 엿듣게 된 두 행인의 대화다. 코로나는 내가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안 걸리지만, 백신은 내 몸을 경우의 수에 피동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게 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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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인류역사의 최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체제의 예고편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백신 접종에 주어지는 갖가지 인센티브가 짐승의 표가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할 그 체제와 여러 면에서 유사해서다. 세상을 믿고 의지해온 신자들은 이번 기회에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사인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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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빅 테크 기업들은 도대체 코로나 사태나 백신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소리를 내면 재빨리 통제하기에 바쁜가. 내가 코로나 사태와 세계정부운동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지각이 있다면 의심해볼 만한 그들의 이런 전체주의적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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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들이 다 중요하지만 행함 있는 믿음이나 성령훼방죄, 마지막때에 깨어 있는 삶과 관련된 구원론이나 성령론, 종말론의 특정 분야는 특히 중요하다. 이 분야에 어떤 입장을 갖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까지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얼마나 진리 앞에서만 순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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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임금 사탄이 작심만 하면 코로나 사태 가운데서 백신 접종이나 다른 통제 도구들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시대 분위기다. 수많은 의사와 전문가들이 초반부터 '코로나 사기극'을 외쳐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인위적이라면 백신 접종도 점점 더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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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많고 시시콜콜 따지길 좋아하는 지성인들이 코로나 사태나 백신 앞에서만은 순한 양들처럼 일말의 의심도 없이 순종적이다. 혹여라도 그들의 좌파적 성향이 세계정부주의자들의 사회주의적 성향과 맞아떨어져서가 아니길 바란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마냥 선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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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내 짐을 맡기는 것이기도 하다. 염려하고 사는 데 익숙하다는 건 지금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따르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며 살아갈 때 나타나는 증상이 불안과 염려다. 진짜 성화는 불안과 염려가 큰 불신의 죄라는 걸 아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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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앙생활에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부터 최대한 풀려고 힘써야 한다. 그 부분은 제껴두고 이것저것 엉뚱한 것 갖고 씨름하다 보면 그 이것저것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다. 조금씩 건드리다 마는 삶에 자꾸 면역이 생기면 하나를 제대로 뚫어 다 엮을 수 있는 믿음의 비밀이 끝내 안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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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겉만 핥고 지나가는 기도생활은 실은 기도하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아무리 지식과 능력과 권세가 많아도 기도는 그러한 것들로 깊어지거나 잘 할 수 없다. 자기 존재의 전부 대신 일부만 들이는 기도는 기도의 주된 목적인 주의 임재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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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무한해보일 만큼 광대한 우주를 만드심은 자신의 무한하심의 그 신성과 능력(롬 1:20)을 사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상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전시하시기 위해서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무한하게 구현되고 시행되어야 할 곳이어서 각각 영원하지 않을 수 없다(마 25:46).

(안드로메다 은하로 살펴보는 충격적인 우주의 크기)
https://youtu.be/Xvgm0YWitYk

-안환균 목사의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코로나 사태가 인위적이라면 백신 접종도 점점 더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 종말에 무관심하다는 건 기독교를 잘 모른다는 것... https://cafe.daum.net/waitingforjesus/BOKT/24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