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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사라 게사라법(FRB폐지・금본위제・전쟁폐지)의 역사적 배경 2021年03月12日 nihon

샤론의 수선화 2021. 3. 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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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사라 게사라법(FRB폐지・금본위제・전쟁폐지)의 역사적 배경

2021年03月12日 nihon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196

 

 

 

 

 

 

ネサラゲサラ法(FRB廃止・金本位制・戦争の廃止)の歴史的背景

2021年03月12日 nihon

 

 

 

네사라 게사라법(FRB폐지・금본위제・전쟁폐지)의 역사적 배경

 

2021年03月12日 nihon 번역 오마니나

 

 

트럼프 혁명의 혁명강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네사라 게사라법에서는 FRB의 폐지, 금본위제, 전쟁의 폐지 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강령의 진정한 의도를 보기 위해서는, FRB나 금본위제를 둘러싼 역사적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의 설립은, 미국 독립 당초부터 획책되었다. 이것은 통화발행권이라고 하는 도깨비 방망이(그 구조에 대해서는 --->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195)를 획득하므로서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지만, 대중측(산업측)에도 통일 달러(통일 지폐)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통화발행은 주립은행이 담당하고 있었다. 즉 주마다 다른 지폐가 발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를 넘나드는 거래와 무역에서는 환전이 필요하게되어, 이때 지폐별 교환비율(환율)도 문제가 된다. 이에 따라 시장확대와 교역확대를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런데, 정부는 독립전쟁, 미영전쟁, 남북전쟁 등 잇따른 전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물론 이것들은 대금업자(국제은행단)가 획책한 것이다). 그래서 신용이 없는 정부를 대신해 국제은행단이 정부의 빚권(국채)을 지폐 대신 유통시켜 통일통화(달러)로 한다고 하는 비정상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1913년 미국에서 FRB가 설립되어, 국제은행단이 주와 정부로부터 지폐발행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FRB 설립의 목적은 미국 시장을 지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세계대전을 위해 폐지된 금본위제

 

이듬해인 1914년에 1차대전이 발발한다. 이 전쟁의 자금으로 많이 활용된 것이, 미국의 자금이다. 그때까지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어 국가간의 차관을 중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외에 자금을 빌려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1차대전 전, 유럽 각국의 재정은 군비확장 경쟁과 산발하는 전쟁으로, 이미 대단히 곤궁한 상태였다. 대전은 미국의 자금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대전에 돌입하자 주요국들은 금본위제를 중단했다. 금본위제는 통화의 안정을 위해 1818년에 도입된 제도지만, 거꾸로 금융가들에게는 통화 발행량이 금준비액에 따라 제한된다는 난점이 있었다. 그 제약을 털어내 거의 무제한의 통화발행을 가능하게 한 것이 금본위제의 정지다. 그리고, 금을 대신해, 통화의 원자가 된 것이 미국의 연방채권이다. 연방채권은 불과 4년 만에 10억달러에서 250억달러로 불어났다. FRB는 미국 국민의 장래의 세금을 담보로 해 공돈을 손에 넣게 된다.

 

1차대전 후에 금본위제는 한 번 부활하지만, 2번 째의 대전을 위해 다시 금본위제를 배제하려고 금융업자들은 손을 써나갔다. 그 수단이 된 것이 1929년의 세계공황이다.

 

우선, 1차 대전 후, 미국의 저금리책에 의해 미국의 금을 런던으로 이동시켰다. 그것을 원자(原資)로 영국이나, 독일을 제외한 열강은 일단 금본위제를 부활시킨다.

 

1929년 FRB는 재할인율을 3%에서 갑자기 6%로 올렸다.그리고 핵심은행인 뉴욕연방은행은 산하의 은행 및 증권사에 대한 대출금리를 5%에서 20%로 올렸다. 필연적으로 주가는 대폭락한다. 1600억달러의 주식 자산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물론 금융가들은 이미 주식을 팔고 대량으로 연방채를 매입해두었다. 자산은 찬탈되었다. 이 금융의 완화와 긴축으로 국민의 자산을 찬탈하는 방법을 금융가들은 "양털깎기"라고 부른다.

 

1933년 루스벨트는 뉴딜정책과 함께, 경제와 금융의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은행의 금화 환전업무를 중단했으며, 국민이 금을 갖고 있지 못하도록 금지, 국민들로부터 금을 온스당 20.67달러에 사들였다. 이제 달러와 돈을 교환할 수 없다. 미국의 금본위제의 실질정지다. 이러한 금은 국제은행가들의 손에 영국에서 법정가격인 1온스당 35달러에 팔렸다. 금 본위가 된 영국은 통화강세가 되어, 필연적으로 수출부진을 맞이한다. 이렇게 해서 영국은 식민지를 중심으로 한, 파운드 블록을 형성. 세계는 블록 경제화되어 간다.

 

그러나, 장기화하는 불황 속에서 영국도 금본위제를 포기. 1936년에는 끝까지 금본위를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도 금본위제를 포기한다(마지막까지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들이 오쿠노 인(奥の院)의 계통과 겹치는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해서, 다시 FRB와 국제금융인들은 금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무한정으로 화폐를 찍어낼 수단을 얻는다. 제2차 대전을 발생시킬 자금 준비는 갖추어진 것이다. 미국의 연방채권은 1930년의 160억달러에서, 1946년에는 2690억달러로 불어났다. 뉴딜을 방패막이로 한 적자재정정책에 의해.

 

달러 쇼크라는 연극

 

※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에 의해 금본위제가 부활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일시적인 조치로 여겨졌던, 1933년의 금소유 금지는 전후에도 계속 되었다. 즉, 전후에도 달러지폐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브레튼우즈 체제는 1달러가 금 1/35온스(약 0.9그램)와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관념적인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달러의 신용력을 인위적으로 높게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즉 사이비 금본위제다).

 

유일하게 정부 간의 결제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도록 각국 정부가 요구할 경우,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세계은행의 규정이 있을 뿐이다.(덧붙여 이것은 현재에도 유효)

 

1971년의 달러 쇼크는 영국과 프랑스가 그 요구를 하고 미국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소동이 벌어졌을 뿐이다.일종의 연극이지만, 이후 공연히 통화는 금과의 링크를 끊어, 전세계로 달러가 흘러가게 된다.

 

이처럼 FRB(중앙은행), 전쟁, 금본위제의 폐지는 삼위일체이며, 금융업자들의 권력기반과 무기였다. 따라서 이러한 폐지에는 대금업자들의 지배기반을 송두리째 해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http://blog.nihon-syakai.net/blog/2021/03/11763.html#more

 

 

 

"GCR(글로벌 통화 리셋)이라는 것"

2020-12-17 Ron Giles http://cafe.daum.net/flyingdaese/Vz9V/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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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의 건널목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새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