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인간관계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사이에서 계속된 어떤 소통이 이루어지며
우리 역시 그중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혹시 믿노라 하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에게 분노하여 용서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다닐 것입니다.
성경책에서는 용서하라는 말씀이 있으니
막연히 나는 상대를 용서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의 마음에는 필연적으로 사랑의 마음이 따라다닙니다.
상대를 사랑함 없이 용서했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삶의 현장에서 직접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성경책의 그 부분을 읽었다고 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사랑해야 진정으로 용서되는 것이고
상대를 용서해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우리에 대한 주님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장 45절)
위 말씀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이 땅에 호흡하는 동안에는
언제라도 돌아올 기회의 시간이 있기에
무작정 심판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선한 자라 자만하며 다른 형제에게 분노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자일 뿐입니다.
내 형제가 나를 보기에 역시 악한 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란 걸 기억해야 합니다.
상대의 어떤 것이 맘에 들지 않아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어떤 사람에게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선함이 없습니다.
서로 부족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누가 누구를
용서 못 하고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호흡하는 동안에는 용서와 사랑을
늘 베풀어주시지만,
우리의 호흡이 다 하여 죽음이 찾아오는 그 날에는
내가 용서 못 하여 분노한 사실과 사랑하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
다 그 값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면 이미 늦은 시간입니다.
그때는 더이상 용서도 사랑도 할 기회가 없습니다.
오직...
구원받은 백성들만이 용서와 사랑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분노하는 마음이 올라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아래에 기록된 성경 구절이
저의 이 악한 마음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이 말씀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절대 가볍게 지나치듯 대하지 마십시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장 22절)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끝까지)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장 21-22절)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3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14-15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엄청난 죄도 용서하시는데
내 형제의 작은 죄를 어찌 용서할 수 없단 말입니까...
용서와 사랑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한다면...
이는 당연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하는 마음은 그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지
얼음장 같은 사람의 마음마저 녹여버립니다.
나에게 적대하던 사람의 심장까지 뜨겁게 만들어버립니다.
미국에서 참혹한 연쇄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살인자가
법정에 선 순간까지도 떳떳하게 자신을 정당화하며 거만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부모가 그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의 철옹성 같던 단단한 마음이 무너지며 눈물이 폭발했습니다.
그게 용서와 사랑의 위대한 힘입니다.
용서와 사랑의 힘은 참으로 크고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으로 그를 용서하고 찾아가서 사랑을 전해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장벽이 무너져내리며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변하면 주변도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대충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안 변하면 주변도 절대 안 변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변이 나에게 맞춰 변하길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아가 강한 사람들의 악한 마음입니다.
십자가에 자아가 죽은 사람은 반드시 상대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용서하란 말씀을 왜 하셨겠습니까...
용서가 쉽게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결국, 거듭나라는 의미입니다.
거듭나야 내 원수가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성품이 있는데
바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성령의 율법이기에 성령께서 그리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십자가에 내 자아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정말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특징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10장 27절)
거듭났는지 아닌지 가장 쉽게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바로 나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지 그 부분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내 원수를 용서함도 사랑함도 없이
나는 믿음으로 거듭났노라 구원받았노라 하는 분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거듭나면... 제일 먼저
내 자아가 죽는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어찌 자아가 죽은 사람이
남을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관념적 지식 믿음에 중독되면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됩니다.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주님에 대하여는
나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노라 고백합니다.
성경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이웃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 1서 4장 20절)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 원수에 대하여 사랑과 용서가 없다면 그 속마음은 실제
주님을 사랑함이 없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저, 지옥이 무서워 구원이라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형제를 용서 못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는 것은 평소의 열매로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열매를 보시겠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의도함 없이 드러나는 열매는 결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입술로 혹은, 지식을 내세워... 아무리 나를 정당화시켜도
주님은 그 속사람을 이미 다 아시기에
결코, 변명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
위에서 말씀드렸듯 주님은 우리가 숨을 쉬며
이 땅에 생존하는 한 끊임없이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하십니다.
어서 죄에서 돌이켜 돌아오시길(거듭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와같이...
우리 사람들끼리도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완벽하지 않으며,
선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선하지도 못하고 부족한 사람들끼리 용서 못 해 분노하고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는 버리운 자가 될 것입니다.
정말 내가 주님을 진짜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면,
내 이웃 형제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용서함 받아 구원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한 위선입니다.
보혈 피로 죗값을 치른 사람이
어찌 내 형제를 용서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용서하며 사랑하십시오.
내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것은 거듭남만이 가능하게 합니다.
용서하지 못할 자를 용서하는 것,
사랑하지 못할 자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는 그날... 주님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악하나 끝없이 용서하며 사랑을 베풀었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형제끼리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았느냐..."
과연 이 추상같은 주님의 물음에 어찌 답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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