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화염권좌 ... 존 번연의 지옥기행 : "구원의 기회를 저버린 기억의 고통"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존 번연의 역작 「천로역정」쯤은 들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존 번연은 평생 그 책 한 권만을 집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생 60여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그 중에는 17세기 영국 국교회파의 핍박을 받아 12년간 감옥에 투옥되었던 존 번연이 옥중에서 집필한 자서전 「죄인 괴수에게 임한 은혜」를 비롯, 말년의 역작인 「천로역정」에 못지 않은 훌륭한 문학 작품을 다수 남겼던 것입니다.
이 책은 존 번연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애써 거부하려는 벗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빌어 ‘천국과 지옥의 환상’(Visions of Heaven and Hell)이라는 원제 아래 출판한 책입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세기가 넘는 장구한 세월이 지났건만 수많은 독자들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한 놀라운 경고와 분명한 확신을 끊임없이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구의 경건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의 환상을 가장 “성경적”으로 묘사한 책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번에 한국에서는 최초로, 규장이 정식 계약 절차를 거쳐 ‘존 번연 클래식 콜렉션’ 첫 번째 책으로 선보였습니다. 이 책의 원본은 미국 휘테이커 출판사(Whitaker House)에서 펴낸 ‘Visions of Heaven and Hell’입니다.
존 번연은 ‘나’라는 일인칭 화자(話者)를 사용하는 주인공 ‘에페네투스’를 등장시켜 자살 직전에 구원을 받아 천사의 인도로 천국의 영광과 지옥의 고통을 낱낱이 방문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에페네투스’가 작가 존 번연 자신을 대신한 인물이라는 걸 쉽사리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이 저자 존 번연이 직접 목격한 천국과 지옥의 생생한 진상이라는 설명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에페네투스는 ‘안내자’인 천사를 따라 ‘복 받은 자들’이 거하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에 눈이 부셨고, 구약에 기록된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야’도 만나게 됩니다.
에페네투스는 엘리야의 입을 통해 어떻게 복 받은 자들이 천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지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성경이 암시하거나 말하는 바와 전혀 위배되지 않으며 성경의 이곳 저곳에서 부분적으로 말하고 있는 천국에 대한 묘사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의 1부는 이처럼 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2부는 반대로 지옥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지옥에 가자마자 ‘복 받은 자들’과 반대 입장인 ‘멸망당한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지옥에서 무신론자 홉스(16, 17세기의 영국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아마도 존 번연은 동시대 사람이었던 홉스의 사상을 근거로 하여 지옥에 간 홉스와 만났다면 그와 어떤 대화가 오갔을 것인가를 상상하며 이 대목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물론 지옥을 방문한 존 번연은 분명히 그곳에서 신음하는 홉스를 보았을 테지만…).
생전에 하나님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홉스가 지옥에 가서 자신의 착각이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게 했는지를 술회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기까지 합니다.
이 몇 가지 부분만 들춰봐도 성경과 철학이 말하는 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인간의 불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꼬집으면서, 이토록 총체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소설화하여 감동적이고도 장엄하게 영적으로 묘사한 책은 일찍이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봅니다.
「천로역정」이 그러했지만 성경의 사상을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내는 작가 존 번연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이토록 선명하고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순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실체가 궁금한 사람, 막연히 천국과 지옥을 믿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필독서로 삼아야 할 책입니다.
특히 이 책에는 존 번연의 일생을 간추린 챕터가 있어, 존 번연에 대해 간략하고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16세기 르네상스 화가인 루카 시뇨렐리와 미켈란젤로의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그림들이 삽화로 삽입되어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도록 도와줍니다.
■ 에페네투스, 지옥을 둘러 보다
에페네투스는 천사를 따라 천국을 떠나 땅으로 내려와 짙은 어두움에 둘러싸인 지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불 붙은 유황보다 더 독한 매연이 코를 찔렀고, 귀도 저주 받은 영혼들이 내지르는 참혹한 고함 소리에 멍멍했습니다. 지상의 아무리 심한 아비규환일지라도 이 상황과 비교하면 차라리 듣기 좋은 음악이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옥의 변경에 와 있다. 멸망자 마귀의 힘을 무서워하지 말라. 이미 내가 하나님의 권좌로부터 받은 위임장이 너를 모든 위험에서 건져줄 것이다. 이곳에서는 악귀들과 저주 받은 영혼들한테서 이런 영원한 멸망을 당한 까닭을 들을 수 있다.
그들에게 묻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면 그들이 네게 대답해 줄 것이다. 악귀들이 너를 해치고 싶어도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이 그들을 단단히 결박해놓았으므로 해치지 못한다. 그들은 감각을 느끼기 때문에 분노에 떨고 안달하고 고함 지르고 혐오스러운 사슬을 물어뜯으나 모두 허사이다."
■ 루시퍼의 화염권좌
에페네투스가 말했습니다. "지옥의 연기 자욱한 용암 못에는 루시퍼가 하늘의 확정된 명령의 사슬로 단단히 결박당한 채 화염권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사나운 눈에는 지독한 고통과 사무치는 원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옥의 분노가 이글거렸다. 지옥 전체가 괴성으로 진동했는데 이는 루시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악을 쓰며 토해내는 참람한 말 때문이었다.
그의 말투에 교만과 자부심이 가득 묻어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분노도 악의도 아닌 권력뿐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루시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늘을 차지하고 내가 쥐고 있어야 할 찬란한 홀을 쥐고 있다.
그가 나를 죽음과 슬픔과 저주로 가득 찬 이 흑암의 집, 내가 당연히 상속 받아야 할 빛이 사라지는 법이 없는 들판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가둬놓았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지옥마저 내게서 빼앗아 이곳에서 나를 모욕하겠다는건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늘을 뒤엎고 그의 찬란한 권좌를 산산조각 내고 말 것이다. 그 때는 내가 패했으나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늘의 아치 지붕 밑에 거하는 날개 달린 영들 가운데 나만큼 공정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패하여 영원한 멸망의 선고를 받고는 이 캄캄한 곳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하지만 인류가 나의 저주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을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된다. 내 힘으로는 하나님에게 내 분노를 퍼부을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 배나 쏟아 부을 것이다."
천사는 루시퍼가 참람한 말을 쏟아낼수록 지옥의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형벌을 가중시킨다고 하였습니다.
■ 서로를 저주하는 두 친구
에페네투스는 그 자리를 떠나 가다가 처참한 슬픔이 내리 누르는 곳에서 마귀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가련한 두 영혼을 만났습니다. 마귀는 두 영혼이 펄펄 끓는 불못에서 기어 나오면 즉시 그들을 다시 불못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두 영혼은 서로 아귀다툼을 하면서 저주를 퍼 부었습니다. 한 영혼이 고통 당하는 동료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가뜩이나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너 같은 저주 받은 얼굴을 날마다 쳐다봐야 하다니! 가뜩이나 고통스러운데 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너는 무척 고소하겠지. 네가 나를 유혹하고 올무를 놓았다.
네 탐욕과 질투와 속임,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한 일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네가 나를 위해 선한 본을 보여 주었다면 틀림없이 천국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텐데. 아,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인가! 너를 따라 가다가 그만 이 혐오스러운 곳에서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되었구나! 아예 네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니 네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 영혼이 이런 가련한 운명에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말을 듣고 있던 동료는 이렇게 맞받아쳤습니다. "나라고 너를 저주하지 못하겠는가! 그때 그 장소에서 네가 나를 유혹하여 끌어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던 나를 꾀어낸 것은 바로 너이다. 나는 탐욕이 있었고 너는 나로부터 탐욕을 배웠지. 하지만 나는 너로부터 음란과 거짓말과 선을 비웃는 태도를 배웠다. 너도 나를 넘어지게 했으므로 나도 너를 비난할 수 있다.
네 몰골만 봐도 세상에서 짓던 죄가 새록새록 생각나서 영혼에 깊은 상처가 생긴다. 그곳에서 너와 사귀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너와 함께 지내는 불행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들간의 대화를 들으면서 에페네투스는 세상에서 함께 죄를 짓는 자들은 지옥에서도 함께 형벌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으며 서로 사랑할지라도, 지옥에서는 서로를 혐오하게 될 것입니다.
■ 황금빛 유황을 마시는 여자 구두쇠
에페네투스는 두 비참한 영혼이 있는 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한 여자 영혼이 마귀의 강압으로 활활 타는 유황을 입으로 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페네투스는 마귀에게 왜 비참한 영혼에게 지옥의 용액을 마시게 하면서 기뻐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이 여자는 많은 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구두쇠로 공의에 대한 응징일 뿐이다.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있으면서도 쓰는 것이 아까워 겨우 끼니만 잇고 살았다. 불룩한 돈가방을 곁에 두고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지내거나 다른 사람이 내는 돈으로 허기를 면한 때가 많았다. 이 여자는 세금이 무서워 집도 없이 살았다.
자신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남을 속여서 재산을 불리면서도 사기를 당할까봐 남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지도 못했다. 돈 때문에 제 몸에서 음식을 빼앗고 제 영혼에서 자비를 강탈했으니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가! 이렇게 땅에서 금을 신으로 모셨으니 지옥에서도 그것을 먹여주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마귀가 말을 마치자 여자는 사실이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마귀가 내 입에 쏟아 붓는 것이 금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금이라면 불평하지 않을 거에요. 그가 내게 먹이는 것은 금이 아니라 악취가 진동하는 유황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금을 이곳에도 가지고 왔다면 행복할 텐데. 나는 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잘 압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금이 지금 내 손에 있다면 천국에 뇌물을 바쳐 당장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에페네투스는 여자가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재물을 그토록 우상시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돈을 사랑하면 영혼은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돈를 사랑하도록 버림받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 뜨겁게 달군 철침대
에페네투스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뜨겁게 달군 철침대에 눕혀져 유황에 거의 질식된 비참한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니, 무섭도록 비참하다! 이 고통을 잠시라도 면할 수만 있다면 백만번의 세상과 기꺼이 바꿀 마음도 있는데! 백만년이 지나도 이 고통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 이 얼마나 불행하고 절망적인 상태인가? 이 영원히 저주 받은 고통이여! 내가 얼마나 고의적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던가! 죄의 짧고 찰나적인 쾌락을 택하고서 영원한 고통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다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큰 죄를 지은 것인가!
죄를 버리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를 얼마나 숱하게 받았던가! 죄의 길은 영원한 죽음의 방으로 이어져 있으니 그 길을 버려야 한다고 얼마나 자주 경책을 당했던가! 그러나 귀먹은 독사가 자기를 부르는 자의 소리를 듣지 않듯이 나도 그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다. 쾌락은 잠시요 그 후에는 곧 영원한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그들이 내게 얼마나 자주 타일렀던가! 이젠 이 모진 고생을 하면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뼛 속 깊이 절감한다. 이젠 확실히 알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했을까? 왜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태만과 무관심이 나를 찔러 죽였다. 이 지긋지긋한 고통을 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우습게 여겼다. 구더기가 죽지 않는다는 게 바로 이것이구나. 행복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구원의 기회가 여러 번 내 앞에 주어졌는데 그것을 차버리고 말았다. 쾌락은 인류를 영원한 파멸로 이끄는구나!
하나님이 손을 내미셨는데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숱하게 무시했으며, 하나님의 책망을 그동안 숱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이제 무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전능자께서 내 재앙을 보고 웃으시며, 내게 닥친 파멸을 보고 조소하신다. 그때는 내가 마음을 닫아 걸었다. 그러므로 내가 선고받은 이 영원한 고통은 내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응이다. 내겐 지푸라기만한 희망도 없으며, 영원히 멸망당했다."
■ 세상의 바닷물을 다 끌어와도 끌 수 없는 불
오성(悟性)은 과거의 쾌락과 현재의 고통과 영원히 계속될 장래의 슬픔을 생각하고서 고통을 당하며, 양심은 쉴 새 없이 영혼을 갉아먹는 벌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오. 우리의 비참함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또 한 가지는 고통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오. 우리를 태우는 불은 세상의 바닷물을 다 끌어와도 끌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격렬하오.
우리가 이곳에서 당하는 고통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길이 없소.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죽어가는 생명을 그렇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유지케 하는 능력으로 드러난다오. 천사의 능력으로도 버텨낼 수 없는 고통이라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요소는 이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다양하고 총체적이고 극단적인 고통이 지속적이기까지 한 것이오. 잠깐 고통을 쉴 수 있다면 한숨을 돌릴 텐데 그런 것이 없소. 극단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고통인 것이오
고통이 조금이라도 완화되는 순간이 있다면 적지 않은 위로가 될 텐데. 한 순간도 중단됨 없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것이 우리의 상황을 너무나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이오. 지금 당하는 고통을 영원히 당해야 한다오. 이 현실이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고, 이 증오심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오.
■ 영벌의 치명적인 선고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곳에 속해 있는 사회나 사귐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라오. 고통을 가하는 마귀들과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이 모두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존재들이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잔뜩 겁에 질린 비명과 절규,
그리고 우리를 이곳에 들어오게 하신 분에 대한 참람한 말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전부라오. 그리고 이곳에서는 동료 영혼들도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이 조금도 위안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장소 역시 우리의 고통을 더욱 깊게 만든다오. 감옥, 지하감옥, 무저갱, 불못과 유황, 영원히 식지 않는 용광로, 영원히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지옥 그 자체, 과연 이곳은 고통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오. 이러한 두렵고 절망적인 장소가 우리의 비참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오.
냉혈한들인 고문자들이 우리의 괴로움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오. 고문자들은 사탄의 추종자들인 마귀들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 이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얻고 있소.
지금까지 내가 열거한 구체적인 사항들만으로도 너무나 절망적이지만,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이오. 영원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 줄 당신은 모를 거요.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는 예수님 음성이 쟁쟁하오. 그 치명적인 선고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텐데!
하지만 전능자의 권능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더하고 계신다오. 영원히 당해야 할 고통을 어찌 다 당해야 할지 막막하나 그것이 내가 견뎌야 할 몫이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비참한 처지라오.“
■ 전능자의 공의를 가벼이 여긴 죄
"너는 너 자신이 이 모든 고통을 당해도 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땅에서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숱한 경고를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았지? 오히려 지옥에 관해 말해주는 자를 비웃었다.
너는 전능자의 공의(justice)를 향해 멸망시킬 테면 멸망시키라는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원대로 된 것을 불평한단 말인가? 너는 구원의 제의를 받고도 거절했으면서도 무슨 낯짝으로 불평한단 말인가?
불평을 하자면 나는 너보다 억울한 것이 더 많다. 너는 기회라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죄를 짓는 그 순간에 지옥행을 선고받았다. 네게는 수 없이 구원과 용서와 사죄의 기회가 있었으나, 나는 한 번도 자비의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죄를 짓는 그 즉시로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고 말았다. 만약 단 한번이라도 구원의 제안을 받았다면 너처럼 경솔히 그 구원의 기회를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천국을 마다하고 멸망을 택한 너를 이제 누가 불쌍히 여겨주겠느냐?"
비참한 영혼은 이 말을 듣더니 마귀를 향해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아, 이제 제발 나를 고문하지 마라! 이렇게 멸망당한 게 모두 내 탓인 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아, 그것을 잊을 수만 있다면! 구원 받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내게 가장 큰 병이다. 나는 멸망을 당했고, 이것은 정당한 처분이다.
저주 받은 마귀야!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네 유혹 때문이다. 네가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죄들을 짓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나를 훈계한단 말인가? 나는 네게 끊임없이 시험을 당했고, 네 사악한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말을 들은 마귀는 냉소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너를 이곳으로 떨어지도록 유혹한 것이 나의 소행이었음을 나도 인정한다. 네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다 그렇게들 말했지. 그들은 우리가 너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는 사자들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아 다녔다(벧전 5:8).
나는 네가 다른 사람들처럼 전도자들의 말을 믿고 돌아서서 우리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까봐 조마조마했었다. 하지만 너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따라와 주었고, 우리가 할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 주었으니 우리가 네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일이다."
■ 거짓 증인들에게 가해질 형벌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멸망당한 영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고문하는 마귀들은 지옥의 분노로 용암과 유황을 끊임없이 그들에게 퍼 부었고, 그들은 극심한 분노와 고통을 못 이겨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에페네투스가 마귀에게 고문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마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벌을 받을 만한 자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천국에 가는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듯 행세했으나, 정작 자신들이 지옥을 너무나 사랑한 탓에 이곳에 온 저주받은 자들이다. 땅에서 지옥의 중요한 대리자 역할을 했으므로 지옥에서 특별한 대접을 해 주는게 마땅하다.
우리는 영혼에게 벌을 가할 때 각자 받아야 할 몫을 넘기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안심하고 제한 없이 고통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가르침과 행실로 그릇된 길로 인도한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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