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on the way to heaven

**복음속으로**

[스크랩] 믿음은 상사병에 걸리는 것

샤론의 수선화 2018. 7. 22. 17:35

세상을 향한 상사병은 영을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주님을 향한 상사병은 영을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혼자 끙끙 짝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타는 마음을 

가져본 기억이 있었을 겁니다. 

저 역시 없다 할 수 없습니다. 

짝사랑이 심해지면 상사병이 되고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지며 

머릿속에는 온통 그 짝사랑하는 사람으로 장악되어 떠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니 함부로 고백하기도 겁나고, 

용기 내어 고백했다가 상대가 외면하면 그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쉽게 다가가기도 어렵습니다. 

이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힘든 장면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거나 좋아한다는 내색만 보여줘도 

용기를 갖고 고백할 터인데... 

그저 혼자 끙끙 마음고생 하다 보면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고, 

밥맛이 없으며, 남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고생하다가

포기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짝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요... 

주님은 성경을 통해 이미 우리를 사랑한다고 많이도 고백하셨는데

이 땅의 사람들은 그저 외면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속이 타들어 갑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드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님이 가지고 계신 조건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는 지옥이 두려워 주님을 천국에 보내는 보험용 정도로만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지 솔직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이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도...

사랑하게 되면 완전히 그 대상자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사랑하는 대상자를 위해 뭔가 더 해줄 게 없나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를 더욱 기쁘고 즐겁게 해줄까만 생각합니다. 

전화를 한 번 하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대화합니다. 

데이트하고 헤어질 때 너무나 아쉬워서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내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생각하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만이 컬러로 보이고 주변 사람들은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굳건히 그 사람을 믿습니다.  

이게 간절하고 애타는 사랑에 빠진 자의 진짜 모습입니다. 


겉으로 사랑하노라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기쁘게 해줄까 하는 마음도 없고, 

데이트하다가 헤어져도 별 아쉬움도 없고, 

그저 그 사람이 가진 화려한 조건 때문에 그와 만나길 힘쓴다면, 

그건 아주 질이 나쁜 회칠한 사랑입니다. 

그 속마음을 상대방이 알았다면

이 얼마나 큰 배신감과 절망감이 들겠습니까...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조건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그렇게나 하나님을 많이 알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함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은 원하던 조건이 사라지면 바로 냉정하게 뒤돌아섭니다. 


혹시 우리도

그런 이유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지 내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그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조건에 집착하면서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건 가짜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천국을 사랑하는 겁니다. 

천국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중간에 끼워 넣은 겁니다. 

주님은 그 속마음을 이미 다 아시기에 더 슬퍼하시는 겁니다.

진짜 주님만을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늘 즐거운 고민을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다 순종해보려고 다짐합니다. 

주님과의 교재가 끊어지지 않으려 쉬지 않고 기도하길 힘씁니다.

사랑하는 주님만을 생각하면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흐릅니다.

감히 주님보다 다른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게 주님에 대한 진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지를 뒤로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여 가출했던 탕자를 아십니까? 

그러나 탕자의 아버지는 그가 언제 돌아오나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크게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먼 발치에서부터 

아들을 기다리며 그가 오자 너무 기쁜 나머지 아들에게 입을 맞추며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옷을 입혔으며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그와 같다는 것을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로써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이런 애타는 마음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내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천국이라는 조건 때문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정녕 주님을 진짜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죄 가운데 물들어있는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정녕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고 그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요구에 화답해야 합니다. 

내 자아대로 행하지 말고, 주님의 요구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경책은 매우 두껍습니다. 

기록된 그 많은 말씀들을 어찌 다 따르냐고 회피하지 마십시오. 

그 두꺼운 성경책은 우리에 대한 주님의 세레나데입니다. 

사랑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라는 아주 단순한 요구입니다.

그 단순한 요구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기록했기에 두꺼울 뿐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두꺼운 성경책을 살피며 무엇을 따르고 지킬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진짜 사랑 안에 그 모든 것이 포함되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수밖에 없고, 

내가 굳이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억지로 지키려는 육의 율법이 아니라, 

사랑의 율법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이 사랑의 율법이 더욱 견고해야 하고, 

바울 역시 이 사랑의 율법을 더욱 세워져야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적인 육의 속성을 고의로 나타내겠습니까?

내 유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겠습니까? 

아닌 줄 알면서 죄 된 행동을 하겠습니까? 

설령,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나마 죄를 저질렀어도 

양심에 찔리는 그 고통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매일 기도하길 힘쓰랬다고 그걸 어찌 임의로 지킵니까...

그러나, 주님을 진짜 사랑하면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기도합니다.

남을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말랬다고 그걸 어찌 계속 임의로 지킵니까...

그러나, 주님을 진짜 사랑하면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말 못 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 십자가의 길, 회개, 순종... 이 모든 것은 

주님을 진짜 사랑하면 누가 뭐라 안 해도 응당 당연히 따라갑니다. 

이런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율법입니다.  

즉,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리하도록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기에 가능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6-27절) 

이는 내가 내 의지로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육의 율법은...

주님을 진짜 사랑함이 없기에 내 의지로 지키기 참으로 힘듭니다.

이것은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면 이것은 육의 율법에서 해방되어

나 자신도 모르게 기쁜 마음으로 이미 지키고 있는 사랑의 율법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 1서 5장 2-3절)


위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그 계명이 무거워서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 쉽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을 사랑하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줍니다. 

전혀 힘들지 않고 무거운 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10km 앞에 어떤 사람이 기다리며 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가는 것은 정말 힘들고,

걷기에 먼 길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진짜 사랑한다면 걷는 정도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달려서 찾아갑니다.

전혀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고 먼 길이 아닌 가까운 길로 느껴집니다.    

위에 기록된 말씀은 이와 같은 것을 말함입니다. 

이는 사랑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만들어낸 마음의 차이입니다.

주님을 정녕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은 지키기 힘든 

무거운 계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키기 힘들다고 여기는 것은 주님을 진짜 사랑하지 않고

천국이라는 조건만 사랑했기에 계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이 지키기 힘들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아직도 주님을 진짜 사랑함 없이 육신의 틀에 갇혀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주님의 계명이 가볍게 느껴진다면...

주님을 진정 사랑하기에 육신의 틀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영적 자유함을 누린다는 큰 증거입니다. 

입술로는 그 누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적 양심에서 나오는 열매는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본의를 감춘 입술만의 사랑 고백이 아니라, 

양심... 즉, 속사람의 사랑 고백을 면밀히 살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심판 날에 입술이 아닌 내 양심에 기록된 마음으로 

자기의 죄를 이실직고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기록된 양심으로)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장 11-12절)

아직도 육신의 틀에 매어 주님이 아닌 조건을 더 사랑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임재 안에 매여 아무 조건 없이 주님 자체만을 사랑하여 

속박 없는 참된 자유함과 기쁨을 느끼십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온전히 주님을 믿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는 가벼운 짐으로 다가온다면 

그 사람은 거듭났고, 정말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조건 없이 주님을 사랑했기에 천국은 덤으로 그들의 것이 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상사병...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 병은 고칠 필요가 전혀 없고

더욱 깊어질수록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