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롬10:20-21)
연인들 간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항상 등장하는 레퍼토리는 '삼각관계'입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사랑한다든지... 한 남자를 두 여자가 사랑한다든지... 어느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선택해야만 모든 갈등이 종지부가 찍어지는 구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에서도 예외없이 삼각관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전개가 됩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몹시 사랑하고 서로를 소유하기 위해 벌어지는 갈등이지만, 하나님의 러브스토리에서는 하나님께 관심도 없는 타락한 두 여인을 향한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삼각관계인 것입니다.
인류가 범죄한 이후 하나님은 온 천하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로로 사용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들어가 열방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짐승취급하였고 정작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이 땅에 친히 내려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첫 애인에게 뺨을 맞고 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심으로 처절하게 버림받고 짓밟히신 예수님... 이쯤되면 세상 드라마에서는 더 이상 스토리 진행이 어려운 막장 드라마가 되었을텐데...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바보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참 기가 막힌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다른 애인을 택하셔서 첫 애인을 시기나게 해서라도 마음을 돌이키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냥 미련없이 포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첫 애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르지고 찾지도 않은 이방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맞아들이신 것입니다. 정작 주님과 혼인할 대상은 단연 첫 애인인 이스라엘이 되어야 마땅한데... 이스라엘은 신랑을 철저히 거부하고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언약 백성이 아닌 이방 교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첫 애인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나게 하셔서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절대주권적 섭리였습니다. 세상 원리라면 그렇게 철저히 신랑을 버린 여자가 있다면 두번째 만난 여인과 보란듯이 결혼하여 확실하게 복수하고 끝났을 스토리인데... 하나님의 러브스토리는 그렇게 두 여인 중 한 여인을 버리고 한 여인을 취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두 여인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한 새 사람(참 이스라엘)을 지어 당신의 신부로 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2:14~16상)
인간 세상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사랑...
어떤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도 연출할 수 없는 최고의 러브스토리가 바로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조건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셨다면... 교회가 은혜로 얻은 구원도 완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도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처럼 버리실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세상 끝날에 칠년대환란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민족적으로 회개시키실 것입니다. 이 거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마지막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날 향한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들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우리를 죽음으로 사랑해 주신 신랑의 품에 날마다 안겨 머리를 파묻고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주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스라엘과 불신자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122:6)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사66:10)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두 여인에게
조건없이 쏟아부어주신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적용>
오늘부터 1박2일동안 선교회 팀리더리트릿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으며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마음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의 실타래들을 풀고 날 사랑하신 나의 신랑 예수그리스도께 시야를 고정하고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 관심도 없었고 세상과 짝하여 간음하듯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으로 손 내밀어 주신 주님... 구원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었던, 꺼져가는 심지같던 저를 찾아오셔서 당신의 영원하신 사랑의 품 안으로 끌어당겨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그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었다면... 신랑 아닌 자의 채찍질을 당하며 평생 고생하다가 영원한 지옥불못에 처절히 던지워질 운명이었는데... 주님께서 저를 신부로 맞아주시고 소유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는 여전히 연약하고 실수가 많고 날마다 넘어지는 가련한 자입니다. 주님의 붙드심이 없다면 혼자 서 있을 수도 없는 마른 장작개비 같은 존재입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만 거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그래서 기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지요! 늘 주만 바라보며 주님과 눈 맞추며 살겠습니다. 제 모든 삶을 보고 계시고 제 모든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고 계신 주님께서 나의 신랑이시라는 것만으로도 족한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제 영혼을 소유해 주신 나의 신랑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 춤추며 노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호찬양집 구매하러 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믿음과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당신님의 뜻을 이루소서(주기도문 강해4) (0) | 2018.06.27 |
---|---|
[스크랩]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0) | 2018.06.24 |
[스크랩] 의사가 당신은 죽을병에 걸렸다고 처방할 때의 반응 (0) | 2018.06.19 |
[스크랩] 힘겨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 (0) | 2018.06.17 |
[스크랩]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의 실제 (롬6:1-14) (0) | 2018.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