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on the way to heaven

믿음과 삶의 이야기

[스크랩] 왜 하필 소 이야기일까?

샤론의 수선화 2018. 5. 27. 23:35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얻기가 쉬우니라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14:1~12



지혜로운 여인, 미련한 여인이야기속에 웬 소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소가 없으면 어디 구유만 깨끗핳 것인가?

외양간 전체가 깨끗할 것인데 왜 잠언은 굳이 구유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보물을 숨겨놓았길래 내 가슴은 설레이는가?


또한 하필이면 왜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 거만한 자와 명철한 자,

신실한 증인과 거짓 증인,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 정직한 자와 악한 자를

논하는 중에 소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소"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신실한 증인도 되고 거짓 증인도 된다는 말씀이 아닐까?

지혜로운 여인도 되고 미련한 여인도 되게 만드는게 바로 이 소 때문일까?


잠언은 지혜를 의인화 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자 함이라면

지혜를 동물화 시켜 이 역시 생축으로 오신 예수를 말하고자 함일까?


그러고보니 구약 제사에는 반드시 드려져야 할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제물은 내 대신 죽는  "예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에베소5: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 2:12


구유가 깨끗하다는 것은 구유에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구유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가 있다면 구유가 어찌 깨끗할 수 있겠습니까?

실로 예수가 있다면 구유에는 예수님의 피와 물과 살점들로 흥건할텐데 말입니다


그 피가 창세전부터 주시고픈 생명이라는것과

그 물이 상고적부터 흘러 주시는 생수라는 것과

그 찢겨진 살점 하나 하나가 말씀이 육체가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점들이니

그 살 한 점 한 점이 하고픈 말씀들이라는 걸 먹고 마신 자들은

더이상 영이 없는 짐승이 아닙니다


나도 짐승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구유에 가득차 있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온갖 짐승들이 이 구유통에 놓인 생명 양식을 먹음으로 혼만 있던 짐승에서

약속대로 부어주시는 새 마음 새 율례의 영, 상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잠언서가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집을 얻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집은 생축으로 드려진 예수께서 헐고 다시 지은 집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바로 이 집을 짓습니다

이 집은 기둥 일곱이 있는 집입니다

일곱은 일곱 말씀으로 일곱맹세, 일곱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일곱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거할 처소로서의 집을 다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결코 사후에 거하는 집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깨서는지금 여기서부터 우리를 당신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를 끊임없이 알려주십니다

아들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아바지 있는 곳에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때 아버지와 아들은 모든 시공을 초월해 계신다는 걸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아버지 보좌에 있는 일곱 눈 일곱 영이 온 세상으로 보내어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장소성에 관하여 차원이 다른 장소성이라는 걸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 처소(집, 성전, 교회, 새예루살렘성)라 말함은 아들로 인해 우리들속에 알려지시는

아버지와 함께 사귀며 화목하는 영적거처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거처를 마련해주신 몸이 바로 부활의 그리스도 예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수많은 우리들이 각각 지체가 되어 이룬 한 몸, 교회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묵상함은 바로 이런 연유일 것입니다

우리가 각각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주와 한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말씀(머리)에 성실할 때 분명 그리스도의 몸(수많은 지체들이 함께 한 주를 섬기는 몸)은

순환되리라는 확신 때문 일 것입니다


더이상 땅적 가치관이 하늘을 함몰시키는 악순환이 아닌

하늘이 땅을 정복한 하늘 차원의 선순환에 소망을 둘 때 반드시 21세기를 향한

아버지 뜻이 실현될 것입니다


잠언은 지혜로운 여인만 다루지 않습니다

미련한 여인도 다룹니다

이유인즉 본디 우리가 다 미련한 여인이기때문입니다

이 미련한 여인은 집을 허문다합니다


왜 허물까?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는 말씀 그대로 거만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혜가 없으니 거짓 증인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하지만, 그러니깐 열처녀 모두에게 등불이 있는 것처럼

겉모양은 다윗의 등불인 예수를 믿는다 내 속의 거만함을 폭로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혜이신 예수를 구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에 거만함은 자기 속의 악함과 음란함과 미련함과 추함을 모르기에 나타나는 성격일 것입니다

세상은 거만한 자를 두고 당당하고 멋지다고도 평할 것입니다

어쩜 카리스마가 넘친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유통에 담긴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속의 오만가지 미련함과 더러움과 음란함과 악함이 악취를 풍깁니다

이러한즉 내 스스로 나를 증오 혐오하며 죽어라 자학합니다

드뎌 내 집안에 원수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여 애통합니다

이런 순간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이 들립니다

이젠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근거로 사랑합니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예수를 근거로 사랑합니다

이런 자는 이웃도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그도 나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한 몸된 한 지체로 보는 한 집을 허물지 않습니다


아버지!

소이야기속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로 인해 아들과 함께 나를 거처로 삼고 내 영을 살리시고 성령 충만케 하사

아비의 훈계(말씀)를 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출처 : 토론토아름다운장로교회
글쓴이 : 안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