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on the way to heaven

**천국지옥 에대해**

[스크랩] 누가 봐도 천국 갈 사람이 확실해 보였는데 정작 천국에 없을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샤론의 수선화 2018. 2. 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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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회자들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신자의 구원이 중도에 탈락될 수 있다고 본 이들이 50퍼센트였다. 익명성이 보장된 조사의 결과와는 달리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는 이만큼 높지 않다. 실제로 설교 강단에서 소신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2
누가 봐도 천국 갈 사람이 확실해 보였는데 정작 천국에 없을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사람이 보는 눈과 하나님의 관점이 달라서다. 요즘 신자들의 큰 문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마 6:1) 교회 다니고 선행하고 잘 믿는 척한다는 것이다. 초점이 구원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다.

3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딛 1:16). 입으로 시인하는 내용이 진실되다는 증거는 행위로 나타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주여, 주여"라고 입으로만 시인하고 실제로는 전혀 안 믿고 산다. 믿음이든 불신이든 삶이 고백하는 게 진짜다.

4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낮다. 세상이 좋다고 좇아가는 것을 신자도 똑같이 부러워하고 그것으로 주눅들고 열등감에 빠진다면 그 신자의 자존심이 아주 강해서다. 훗날 주 앞에 서면 세상에서 신자의 진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는지가 심판의 주된 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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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세상에서 각광받는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고, 같은 이유로 부자는 자신의 돈, 지성인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지 못한다. 교회마저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좇아가면 그것이 곧 말세다.

6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웨슬리주의와 칼빈주의가 서로의 신학 노선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서로 각자가 강조하는 강점들을 배워 신자들이 거룩한 삶에 깨어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 주의 일을 사람이 다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고 최선을 다해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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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로서 나의 최대 관심사는 더 많은 영혼들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받은 소명이 달라 각자가 중시하는 사역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세상의 악에 구조적으로 맞서는 것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도 귀하지만 그 에너지로 지옥에 맞서는 일도 똑같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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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4). 아브라함의 삶에는 제단을 쌓았다는 대목이 많다. 다윗처럼 그에게도 인간적인 약점과 실수가 있었지만 다윗처럼 그도 시종일관 예배의 사람이었다. 참된 예배자는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진 않는다.

9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그 전쟁은 사흘이나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것 같다. 평화롭게 통일이 이뤄지면 가장 좋겠지만 전쟁을 거친다면 최대한 짧게 끝나길 기도한다. 진정으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길 원한다면 전쟁을 마냥 두려워만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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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강아지를 앞에 놓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찬양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너무 좋은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없이는 유교적이거나 율법적인 기독교가 만연한 시대에 건강한 믿음의 길을 지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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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뤄주시면 그제서야 그분을 기뻐하겠다고들 하지만,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면 소원이 응답된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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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마 23:3). 어떤 설교자의 인격이 미덥지 못해도 그가 말하는 것에는 유익한 내용이 들어 있곤 한다. 그가 전하는 교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그의 결함을 내 불순종의 근거로 돌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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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회의 청년부 수련회에서 `7문7답 전도지`의 내용으로 갓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며 요즘 청년들이 신앙과 삶에 대해 가진 질문들은 꽤 다양하고 현실적이란 걸 실감했다. 물론 기독교세계관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없지만 성경과 세상의 경계지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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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어도 주님과의 관계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지식만으로 이 관계를 대체하려는 자들은 큰 실패를 맛보게 되기 쉽다. 지식은 내가 내 존재로 반응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주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내 존재 전체로 반응하고 가꿔가지 않으면 얻거나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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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우리가 발휘하는 지성과 축적해온 지식은 천국에서 영원히 경험해나갈 지성과 지식에 비하면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사람의 진정한 존재 가치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해 무한하신 그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무한히 성장해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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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되어온 칼빈주의가 아닌 진정한 칼빈주의가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성화의 과정을 중시한다 해도 그 시작과 끝, 곧 절대 이중예정론과 중도 탈락 없는 구원의 틀을 유지하는 한 의도치 않은 오해는 계속될 것이다. 칼빈주의가 개혁되려면 그 부분까지도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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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요구하시지 않는다.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능력은 주와의 친밀한 교제에서만 나온다. 그 예배는 신자가 중심만 제대로 잡으면 온전히 드릴 수 있다. 여기에 진심을 안 들이고 세상에 마음 빼앗겨 사는 영적 간음이 온갖 불순종의 출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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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공로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회복을 통해 구원받고 나서 각자가 받은 사명을 이뤄나가는 데 매진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이들이 많다. 끝까지 주의 은혜로만 섬기지 못하고 내 힘과 지혜로 일하다 보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주께만 의탁하는 관계성의 진리를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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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자의 기도에 응답할 경우 그가 그 응답의 내용으로 주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취할 것으로 아시면 하나님은 응답을 늦추신다. 내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노력이 기도와 병행되어야 기도의 응답도 균형있게 누릴 수 있다. 기복적이기만 한 기도의 한계는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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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기도한 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일로 하나님께 상처받거나 그분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는 신자들이 많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한 채 나 중심의 기도만 일방적으로 드리면 나만 손해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종교심으로는 진리의 하나님을 올바로 못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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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믿었다가 타락한 성경 인물들이 많다. 구약에서 발람, 제사장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 사울, 압살롬, 게하시, 신약에서 가룟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데마, 디오드레베(요삼 1:9) 등을 들 수 있다. 솔로몬도 꽤 혐의가 짙지만 모든 이의 구원 여부는 결국 하나님만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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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한 번 믿어 신실한 일꾼이 되었다가 하나님을 떠난 대표적인 성경 인물이 데마다. 그는 초기에 사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 언급된 사역자였다(골 4:14, 몬 1:24). 지금도 이런 인물이 사역자들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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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에는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명목상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아예 떠난 가나안 교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새롭고도 진지하게 일깨우려면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게 최선이다. 미지근한 구원론이 미지근한 교인들을 양산해온 실수를 마냥 되풀이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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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믿고 교회 다니니까 구원은 받았고 완전 은혜로 천국 가게 되었다고만 가르치면 구원 이후가 없거나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 같아서 교인이 신자로, 신자가 성숙한 신자로 자라가려는 동기나 열의가 현저히 줄어든다. 마치 날수를 다 채워 제대하기만 기다리는 군인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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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전도는 막연히 알고 믿고 있다고 여기는 복음을 새롭고 설득력있게 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일개 인간이 되어 구속자로 이땅에 오신 진리를 새롭게 드러내고, 구원 이후 철저히 그를 주인 삼고 살아가는 법도를 강하게 일깨우는 것 외에 다른 부흥의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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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교는 주님의 양들에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먹이려는 목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설교의 목적과는 무관하다. 목자장이신 주의 소원대로 양들의 구원과 성숙이 설교의 첫째가는 목적이라면 설교는 아무리 못해도 낙제는 면한다.


-안환균 목사(그말씀교회, 변증전도연구소)의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Steph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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