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세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5일
사도 요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면서 예전처럼 기름부음이 마냥 쏟아졌고 내 머리가 휘융~ 도는 듯 사로잡히더니 금새 천국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는데 그 가운데 사도 요한과의 만남에 관하여만 쓰도록 하셨으므로 순종했다.
예수님께서 기진맥진한 나를 누이신 곳은 상급집의 풀밭이었다.
나를 부축하셔서 곁에 있는 시내에서 물을 떠서 마시우고 얼굴에도 적셔주셨다.
“단 물을 마셔라.”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이 얼굴에 적셔지니 신기하게도 기운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힘겨웠다.
내가 지쳐있게 된 것은 주님께서 지옥으로 데려가셔서 이단의 괴수였던 어떤 사람에 관하여 몹시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지옥의 장면과는 달리 그 장면을 볼 때 퍽이나 몸과 마음이 힘이 들었다.
평소에는 천국에 오면 회복이 금새 되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을 정도로 힘겨운 것이다.
왜 이처럼 힘이 들었는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아서 모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를 부축하셔서 집안으로 들이셨다.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소파에 나를 앉히시고 포도 한 알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나는 그것을 받아 먹었는데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이 너무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그런 바람을 아시고 다시 나를 부축하여 침대에 데려다가 누이셨다.
그리고는 책장에서 성경책을 가져다가 내 머리를 예수님의 무릎에 누이시고는 앉으신 채로 성경을 읽어주셨다.
꺼내어 읽어주신 대목은 요한복음 14장 1절과 2절 상반부였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1-2
성령의 권능을 받고 능력사역을 하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죽은 후 지옥에 가 있는 한 사람을 보고 힘들어 하는 내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연이어 모세의 홍해바다 사건을 읽어주셨다.
나는 당시에는 왜 많고 많은 사건 중에 그 사건을 읽어주신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무엇 하나 그냥 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시다.
의도를 가지고 그 부분을 내게 읽어주셨던 것이다.
그 내용에 관하여는 뒷 부분을 읽으면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요한계시록의 뒷 부분에 있는 천국에 대한 내용을 읽어주셨다.
예수님께서 그 대목을 읽어주시는데 갑자기 내 마음에 생기가 돋으면서 동시에 사도 요한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자 마음에 기쁨과 생기가 더욱 넘치는 것이었다.
“아, 사도 요한!
사도 요한이 보고싶어요!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내 입에서 말이 나감과 동시에 지식이 임했다.
그의 집은 삼층천에 있으며 그는 현재 집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오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가 한 번 가볼까?”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아름다운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삼층천을 향해 날아가시는 것이었다.
한참을 날아가니 어제의 그 들판과 낮은 산 그리고 하얗게 둘러쳐져 있는 길게 늘어진 하얀 담이 보였다.
사도 요한의 집은 더 깊은 안쪽 골짜기에 있었다.
일층천이나 이층천처럼 이곳에도 각자의 상급에 따라 빛의 밝기와 집의 규모나 모양이 달랐다.
그간 깨우쳐 주신대로 말하자면, 상급이 크면 클수록 지역에서 안쪽 깊숙이 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처럼 영혼의 내면에 주님의 사랑이 충만한 자들일수록 뾰족탑이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영성에 따 집의 빛의 밝기가 더욱 밝은 것이다.
사도 요한의 집이 그러했다.
큰 성곽 전체가 그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온통 화려한 보석으로 지어진!
거기에 그 집 내부전체로부터 강하고 밝은 빛이 외부로 비쳐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장엄 그 자체였다.
내가 너무도 엄청난 장엄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더니 예수님께서 곁에서 말씀하셨다.
“그의 맑고 깊은 영성으로 인해 나오는 빛이다.”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주님께 조르지 않았다.
내 스스로도 감히 그런 말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이제 깨닫게 되는 바, 당시 내 자신이 그런 빛을 감당할만 하거나 그 실내를 볼 수 있을만한 믿음도 영성도 갖춰져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가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것인지, 그리고 엄마가 사는 지역인 일층천 사람들이 왜 밝은 빛이 있는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와는 달리 그 분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의 육체를 떠난 영적 존재로서 천국백성이 된 분들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천국백성이 되면 저절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동입력되는 것이 첫째로 겸비함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지니게 되는 기본 마음바탕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교만과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세상에서 살다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오고 보니 쉬운 말로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무시와 외면을 당하면서까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너무도 황홀하게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는가!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하겠는가!
너무 기가 막힌 일을 당해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유구무언」이라는 말을 쓴다.
그 상황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본인들의 세상에서의 삶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다시 말해 천국백성의 겸비함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전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서 쌓은 적이 없으니 그 영성의 빛의 밝기가 환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영화에서 보면, 미천한 백성이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거나 왕이 있는 자리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그와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스스로 빛이 환한 곳에 오지 않는 것도 천국백성이 지닌 겸비함으로 인한 것이다.
자신의 행한 상급과 행실에 따라 영원한 등급을 가지고 살게 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것이 또한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인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 땅에서 불신자로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재산과 자녀의 복을 누리며 살다가 죽음에 임박하여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 분들은 무슨 복에 누릴 것 다 누리다가 갈 때도 천국을 가시는가..’ 싶었다.
지금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처리하심을 알게 되었기에 전혀 그분들이 부럽지 않다.
일찍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당한 모든 고난과 수고를 주님은 결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는 것도 상급이 쌓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그래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에구..고마우신 분 같으니라구..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핍박해줘서 상급쌓게 하시네..’
이런 말을 하며 즐겁게 핍박을 받는 거 어떠하신지.^^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즐겁고 기쁘게 겪기로 하자.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1-12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사도 요한의 집을 향해 멀찍이 마주 선 상태에서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셨다.
“요한아~.”
천국은 이처럼 나지막하게 불러도 다 들리나보다.
그러자 사도 요한이 버선발로 나오듯 달려 나와 예수님 발 앞에 경외심과 사랑에 겨워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손에 입을 맞추고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여태까지 만났던 성경인물 가운데 누구도 이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뜨겁게 표현한 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아주 적극적이었다.
사랑이란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표현하셔서 그 아픈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이다.
사도 요한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배우고 있었다.
그 사랑을 깨달았던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서 계속 그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
사도 요한이 예수님 곁에 서 있던 나에게도 다가와 허리를 숙여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나에게는 마치 꼬마 숙녀에게 어른이 입을 맞추는 듯한 사랑스러움이 담뿍 배인 태도로 그리하는 것이었다.
인자하고 훤한 달덩이 같이 생긴 사도 요한에게 나는 하염없는 존경심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저절로 그에게 스르르 다가가서는 그의 심장 부분에 내 귀를 갖다 대며 안기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 모습이 바로 사도 요한이 지상에서 예수님께 표현했던 그 사랑의 모습인 것을 알았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한복음 13:23
사도 요한이 나를 안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소리야.”
헉..소리라고??
「소리」는 인터넷 블로그에 쓰는 내 닉네임인데?
내가 놀라서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께서 미소띄신 채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는 사랑이 많은 자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므로 내 마음을 그도 이미 알고 그가 그 입으로 내 말을 한 것이니라.
내가 너에게 「소리」라고 할 마음을 준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너의 이름을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소리」라고 하라.
너는 내 말을 전할 「소리」니라.”
세상에 사는 동안의 내 이름이 「박소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마음을 미리 알아 내 이름을 먼저 부른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게 되면 우리 또한 사도 요한처럼 주님의 말씀이 내 입에서 대언되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어떤 은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과 내가 하나되면 은사는 저절로 나타나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러셨고 사도 요한도 그러한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10
사도 요한에게 말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누가복음이지만 초신자들에게는 요한복음을 잘 권해요.”
그 말을 들은 사도 요한이 조금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나는 그 글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이신 것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전하기 원했다.
그러나 글 주변이 짧아 그 만큼밖에 전하지 못한 거란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25
“계시록을 기록할 때 밧모섬에 계셨죠?
나는 계시록을 읽을 때 끝 부분에 있는 천국이야기는 너무 기쁜데 중간에 있는 환난 부분은 참 많이 두려워요.”
“나도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심히 두렵고 떨림이 있었단다.”
“성령받은 사람들도 환난을 당하나요?”
“주님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환난을 겪더라도 아주 가볍게 겪을 것이며 그리고 7년환난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7년환난 직전에 그들 각자를 동시에 부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최종적인 신부로서의 단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마지막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 주님께서 부르실 때 동시에 구름으로 들려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환난에 남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요?
성령받은 사람도 환난에 남는 자들이 있나요?”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환난에 남아, 남은 자들을 도울 사명자들이 있다.
그들은 환난 중에 남게 된다.
소수의 몇 명이 남아서 환난 중에 남은 자들을 돕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환난에 남게 되나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가벼이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심하고 혹독하며 깊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후서 3:3-4
사도 요한과 대화하고 있는 내 표정은 심각해져서 눈에 미간이 모아져 있었다.
마치 나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같이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이후 벌어질 사건들에 대해 자주 대화들을 나눈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려 주셨다.
그래서 7년환난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 변화산의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자, 이제 내려가서 적어야겠지.”
예수님께서 나를 안고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내게 안수하신 후 예수님께서 사라지셨고 잠시 후 눈이 스르르 떠졌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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