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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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만난사람들

[스크랩] 정원목사의 간증 (임재와 갈망)

샤론의 수선화 2011. 8. 18. 22:27

정원목사의 간증 (임재와 갈망)

 

나는 어릴 적부터 주님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각종 부흥회라든지 산상 집회와 기도원에 많이 따라 다녔습니다.

평소의 교회 예배에서는 주님의 실상을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어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알고 만나기를 몹시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님은 너무나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졌고 다른 이들이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여 그분의 음성도 듣고 가까이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럽고 부러웠습니다.

 

나는 몸도 약하고 공부도 그리 시원치 않고 가난하였지만 그러한 어떤 것들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도 부럽지 않았으나 주님을 가까이 경험하였다고 하는 이들은 너무나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러한 은사자라고 알려진 이들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워낙 악하고 못되어서 그런지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을 해도 주님은 아주 멀리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군대 영장을 받았습니다.

한달 후에 군에 가야한다는 영장을 받자 나의 결심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한달, 군대에 가기 전에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체취를 맛보리라.. 나는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산 속에 있는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아주 영이 맑은 누님 뻘 되는 기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위였는데 주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전에도 그러한 갈등이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은사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에서 거룩과 아름다움과 사랑의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성질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거칠은 면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주님의 은혜는 거칠어야 받을 수가 있는가? 하고 갈등을 하곤 했습니다.

 

이 누님도 그리 삶이나 성품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누나가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 누나는 학문이 거의 없었고 평소에는 전혀 눈치가 없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기도를 받으면 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들의 영적인 상태나 수준, 어디에서 균형이 무너져있는지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의문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누나가 옆에서 기도를 같이 해준다는 말에 용기가 백배해서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그 누나가 경험한 주님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나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기도를 마쳤을 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안 되나봐..' 하는 결론을 얻었을 뿐이지요..

이 때 기도하면서 있었던 해프닝들을 언젠가 다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낙심해있는 나에게 누나는 대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나는 너와 항상 같이 있다.

네가 지금 나를 몹시 원망하는 구나.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내용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납니다. 아니, 토씨뿐이 아니라 그 누나의 목소리의 크기, 억양.. 등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순간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것은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왜 그런 이야기를 남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지.. 나는 그게 너무나 억울하고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그 누나 앞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었으니까요..

나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고가 나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을 때도 그저 조용히 있는 스타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나는 조용히 감사를 표했지요.. 그러나 내 방에 돌아가서는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시냐고.. 내가 당신의 이름을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는데 왜 나에게 대답하시지 않느냐고.. 나는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영장이 나와서 나는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하나의 희망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기 쉽다던데 그렇다면 내가 군대에서 하나님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힘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훈련은 고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동작이 굼뜨고 민첩하지 않아서 피도 많이 흘렸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평소에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별로 걱정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유격 훈련을 받게 되었을 때 외줄 타기 코스가 있었습니다. 낭떠러지 사이를 연결한 외줄을 타고 건너는 것이지요. 나는 안전 장치를 하지 않고 건너려고 했습니다. 조교가 놀래서 물었지요. 사회에서 이런 것을 한 경험이 있느냐 고요..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억지로 안전대를 매어주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내가 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별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즉 주님이 나를 가까이 만나주시지 않는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군대에서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훈련소에서만 신약을 두 번 읽기도 했습니다.

훈련 중에 잠시 진흙탕에서 쉬는 동안 나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잠을 자는 시간에 나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습니다. 나는 줄곧 울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고 달콤하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나에게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깊은 주님, 가까운 주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주를 찾는 동안 주님이 나의 기도에 전혀 응답을 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여러 위기의 순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연대 알씨티 훈련을 나갔을 때 각 소대 별로, 분대 별로 텐트를 쳐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서 텐트를 칠 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줄을 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칡넝쿨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철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나를 평소에 벼르고 있던 고참이 모처럼 날을 잡아서 나를 때리기 위해서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나는 참 많이 맞았습니다. 맞아서 이빨도 부러지고 얼굴도 피투성이가 된 적이 많았습니다.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해있었고 그저 진리를 알고 싶었고 바깥의 내 육신은 어떻게 되든지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몹시 몸이 힘들고 안 좋은 상태라서 나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은 맞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서 줄을 구할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기도였습니다. 우리 부대는 산 속의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칡넝쿨은 발견할 수 없었고 이렇게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굵은 나무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밧줄이 필요합니다. 밧줄을 주십시오..

한참을 기도하고 나는 혹시나 하고 산 속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갑자기 눈 앞에 집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집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젊은 아가씨가 한 사람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주 착하게 생긴 아가씨였는데 이런 산골에 젊은 아가씨가 혼자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광을 열었는데 거기에 아주 튼튼하고 새것인 밧줄이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듯이 들고 가기 좋게 묶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녀는 돈도 받지 않고 나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과연 그 집이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천사였는지 갸우뚱해집니다.

 

내가 그 줄을 들고 가자 모두가 다 탄성을 질렀습니다.

나에게 그것을 시킨 고참은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러나 나를 때릴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다 좋아했고 그 때문에 우리 분대가 전체 성적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 나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간 행군 중에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얼굴에도 먹칠을 합니다. 총기도 번쩍거려서 보이게 되지 않도록 잘 닦아냅니다. 심사관들이 숨어서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지적되어 점수가 나쁘게 되면 그 날 밤은 잠은 다 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밤 눈이 어두워서 그만 내 위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래 전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훈련을 나가는 날 근처에 고참에게 맞다가 안경이 깨어졌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듬다가 나혼자 대열을 이탈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소리를 쳐서 다른 이들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온힘을 다해서 숲을 뒤지며 전우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 그 산 속에 오직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이대로라면 무사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니 맞는 것은 둘째치고 부대에 무사히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 방법이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도와주세요...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요.. 나는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눈 앞에서 번쩍이는 인식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분별하기 위하여 철모의 뒤에 붙이는 인식표였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내 근처로 사람들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나는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앞에 번쩍이는 인식표의 주인공은 바로 대열의 내 앞에 있었던 병사이었습니다.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에서 번쩍이는 인식표를 찾았습니다. 그도 바로 내 뒤의 병사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습니다.

내가 대열에서 이탈했으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대열이 나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제 자리로 왔던 것입니다. 나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내 위치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의 개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면 이제 주님의 사랑과 살아계심에 대하여 만족이 되고 기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나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러한 기도의 응답을 이미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자신에 대한 접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응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이었지 주님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도 주님을 꾸준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번은 중대장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나를 교육과 훈련에서 40 일동안 빼달라고.. 그리고 빈방을 달라고.. 그 동안 나와 부대를 위해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겠다고.. 아마 군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중대장은 무섭고 사납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대장들도 그 앞에서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소대의 소대장은 우리에게 중대장은 호랑이와 같고 한번 걸리면 죽는 날이니 그 앞에서는 행동을 아주 조심하라고 많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으니 무섭고 말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소위 FM이라고 할까요. 철저하게 교육과 훈련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한명이라도 훈련에서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대장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묻더니 상부에 보고를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에 중대장은 나를 불렀습니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자기만 미친 놈이 되었다고 한참 혼이 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한명 정도는 열외로 할 수 있다고 한참 설득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이거 완전히 미친 놈이라고.. 너 예수 장이냐? 하고 핀잔만 받았다고 나 때문에 졸지에 예수장이가 되었다고 껄껄 웃었습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가 웃는 것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그는 이상하게 그 이후로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훈련 중에 찾아와서 말을 걸기도 했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부대 전체가 며칠 걸리는 힘든 훈련에 나가는 출정식 때는 그는 나를 불러서 단 위에서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시키곤 했습니다.

아마 그는 나를 참 신자로 생각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나는 주님을 만날 길이 없어서 그저 죽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밤에 초소에서 보초 근무를 설 때 기도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와 고단한 몸을 눕힐 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 제목은 한결 같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시에 워치만니의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것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지쳐버린 어느 날 나는 이제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주님이 내게 나타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나는 훈련 중에 큰 돌을 가지고 한쪽 손을 쳐서 엉망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니 이러한 방법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손목의 동맥을 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리하지 않은 칼이 어설프게 피만 흐를 뿐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러한 방법이 너무 무식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쉬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식사 시간에 식당에서 군용 쥐약을 훔친 것입니다.

그것은 양도 많았고 아주 간단하게 해결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내 시체를 처리할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써왔던 일기와 모든 메모들을 다 없앴습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남긴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입니다.

당신이 너무나 멀리 계십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옥에 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번이라도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기도였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쥐약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이 삶이 끝이 나고 지옥에 가더라도 잠시라도 주님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날 아무 일없이 기상나팔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의아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죽기는커녕 손톱만큼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나는 이 몸을 떠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비로소 사람의 목숨이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갈급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참이 되어 군대생활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 때 나는 어느 날 군대 안의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나의 갈급함을 이야기하였으나 그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내가 다 알고 있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교리와 이론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방언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필요하다면 주실 텐데 뭐 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고민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제대를 한 이후에도 여러 목사님들에게 나의 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목회자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부림 끝에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기 직전에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직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한 가지 소망이었습니다.

그 주님의 경험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부대에서 권총 도난사건이 있었고 주범으로 몰려 어처구니없는 취조와 고통을 겪었으며 탈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기도원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그러한 와중에 나는 주님을 경험하고 방언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의 눈물과 갈망이 드디어 해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집회에서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해결이 아니었고 하나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알아갈수록 더 많은 갈망과 사모함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기독교는 이러한 주님의 실제에 대하여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나의 주님을 찾기 위해서 계속 몸부림치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영적으로 아주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는 너무나 둔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남들이 쉽게 받는 방언에도 십년이 더 넘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남들이 쉽게 경험하는 것을 나는 몇 십배나 노력하고 추구하고 눈물과 사모함으로 주님께 나아갔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주 조금씩 하나씩 영적인 실제와 원리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선물인 은사나 방언을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만일 저에게 방언을 주신다면 저는 일생동안 하루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일생동안 오직 주님만을 추구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방언을 받은 후 나는 내 기억으로는 주님을 기억하고 의식하지 않고 산 날은 없었습니다.

나는 밤에 잠이 들기 전에 항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잠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그것을 얻었기에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다가 금방 은혜를 체험하고 아주 좋아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쉽게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이 사모하는 것 같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결혼 전에는 청년들이 열심히 주를 찾는 듯 하다가 결혼을 하고 현실적인 삶에 부딪치게 되면 그 열정을 잃어버리고 타협을 하고 주님에 대하여는 관심을 잃어버리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과 기질은 모두 다양합니다.

 

열심히 꾸준히 주를 부르는 이는 주의 가까이함을 입을 것이며 갈망을 잃어버린 자들은 주님도 그들을 멀리 하실 것입니다.

찾는 자는 찾을 것이고 관심이 없는 이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이며 누가 대신하여 찾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수아의 말을 이해합니다.

오늘날 너희는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

그 말에는 그의 심령의 간절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고별 설교를 하겠습니다.

다시는 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좋은 분이십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만을 좇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저는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아니.. 온 세계가 이 주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집은..오직 주님을 추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강력한 메시지에 놀랬을까요..

그 모든 청중들은 다같이 외칩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물론 그들은 그러한 감동과 결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심령과 목숨으로 우리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서 믿는 것이지

순간적인 감동이나 기분, 희열에 의해서 믿을 수 있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새벽 시간에, 밤의 기도 시간에 처녀들의 외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 주님.. 내 평생에.. 주님을 좇겠습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녀들이 타협하고 주를 버리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그녀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혼들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감정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며 주를 찾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아팠었습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달콤한 임재와 꿀같이 흐르는 주의 사랑을 구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감동과 희열에 빠지기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꾸준하게 인내하고 주를 구하며 주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나는 이제 그리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지만 오직 주를 구하며 그의 소유가 되고 그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기 원하는 이들이 일어나기를 여전히 소원합니다.

 

이제 나는 주를 구하며 그분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은혜가 빨리 오지 않는 다고 속상해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급하게 가지지 말라고..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주님의 때가 올 때까지 순종하며

당신을 그 발 앞에 복종시키라고..

내가 수 많은 시간동안 좌절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

 

나는 이제 주님의 임재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영성의 흐름과 원리에 대하여 조금이마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평생의 씨름과 사모함의 결과였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고전 13장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어릴 때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장성하게 되면 우리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벗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리고 육성으로 살 때에는 많은 계획과 소원과 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좋아하고 저것을 사랑하며 여기 저기에 우리의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조금씩 열리게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많은 꿈과 열망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한가지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소유하는 것

주님께 소유되는 것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직 주님의 뜻과 그 품을 그리워하는 것..

오직 그 한 가지 소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성의 사랑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가족이나 배우자의 사랑에서

여러 가지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요 헛것에 지나지 않으며

오직 영원한 것, 참된 것은

주님 뿐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간절하게 주를 구하였으나

주님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어느 시점에 그분이 임하셨듯이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그분의 은혜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오직 주님을 사모하고 사모하고 또 사모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오직 주님과의 만남. 그 정점을 위하여 달려가고

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데에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주의 이름을 불러도 주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임재가 가까운 곳에서 임하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그것을 너무나 오랜 세월 구하고 구하고 사모했던 것이기에 그것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

 

그 주의 임재가 나에게 너무나 만족과 행복을 주었기에 나는 이것들을 주를 사모하는 많은 이들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지막 사는 날까지 그 주의 사랑과 임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 많은 몸부림의 결과 주님이 은총의 문을 조금 여셨기에 아직도 너무나 많이 굶주리기는 하지만.. 이제 조금씩 그의 임재를 여는 문을 같이 열고 싶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이 그분의 임재를 소멸하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주님이 임하시는 통로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세월들은 나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할 수 있는 한 그 원리와 방법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다른 이들도 그 주의 사랑과 영광을 많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의 주님을 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행복이나 만족이 아닌

주님 자신과 주의 뜻을

구하고 또 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 순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주를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그것이 곧 행복이며 천국입니다.

 

자신이 주를 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내와 꾸준함과 사모함으로

겸손한 자세로

대가를 지불하며

꾸준하게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주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오직주님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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