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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스크랩] † 큰 부자 청년의 심히 근심함과 부자 삭개오의 즐거움

샤론의 수선화 2015. 5. 20. 18:39

† 큰 부자 청년의 심히 근심함과 부자 삭개오의 즐거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고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누가복음18:23)"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누가복음19:5~6)"

 

1.큰 부자 청년의 심히 근심함

 

부자청년

1>큰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질문함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누가복음18:18)"

 

큰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 왔습니다.

큰 부자 청년이면 오늘날 대기업의 젊은 기업가입니다.

젊은 기업가가 예수께 왔습니다.

청년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가였습니다.

 

큰 부자임에도 내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 말씀하심

 

예수께서 큰 부자 청년의 질문을 받고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들은 청년이 아는 계명이었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눅18:20)"

 

부자 청년은 이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부모를 공경하고 그외 계명을 지키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청년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계명의 제 5계명부터 제9계명까지

말씀하시고 제 10계명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의도적을 마지막 제 10계명을 빼버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자청년이 자신있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부자청년의 한 가지 부족한 것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눅18:22)"

 

부자청년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부자 청년이 안지키는 계명이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꿰뚫어 보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보기에 말하는 것을 보면 완벽해 보입니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반듯하였습니다.

큰 부자 기업가에다 도덕적으로도 흠 없어 보였습니다.

 

제대로 촉망받는 젊은 기업가로 보입니다.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예수께서 보시는 것은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보십니다.

 

예수께서 부자청년이 한 가지 부족한 제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탐욕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

 

3>부자 청년 속에 역사하는 마귀의 궤궤(뉴월드오더의 뉴에이지)

 

큰 부자 청년은 보기에는 정직해 보여도

큰 부자가 된 것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어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웃의 소유를 줄어들게 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었다는 것은

이웃에게 돌아가는 것을 적게 하였고

청년은 많은 이익을 취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업경제는 큰 부자의 큰 수익과 밑바닥의 저임금입니다.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수익자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밑바닥의 근로자 수입은 저 임금으로

가족이 살아가기에 터무니 없이 많이 부족하여

살림하고 자녀 교육하기에 자동적으로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고수익자는 들어오는 수익은 창고에 쌓여 넘쳐 나고

저 임금자는 갈수록 느는 것은 마이너스로 높아지는

은행빚입니다.

 

이런 것도 하나의 뉴월드오더의 뉴에이지 시대를

여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세계경제 시스템이 고수익자와 저임금자의 격차를
크게 함으로 세계경제통합 구조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매드맥스라 영화를 보면 가진자의 지배와 저임금자의

밑바닥은 고 임금자의 지배아래 있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고임금자의 권력으로 복종하게 하는

우상숭배 아래 있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고수입과 저임금의 격차가 크질수록

인구가 줄어 들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저출산입니다.

결혼하는 나이도 길어졌습니다.

학교에 학생수가 많이 부족합니다.

성경의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육하고 번성하라입니다.

 

정상적인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란 남자가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수입과 저 임금의 격차가 크지니까 그 틈을 타서

마귀가 장난을 치는 것이 인구감소에 일조하는 동성애가 등장하였습니다.

 

동성애는 남자가 남자를 취하고 여자가 여자를 취하는 것을

아름답게 봄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고도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부자 청년이 큰 부자로 한쪽으로 치우쳐 고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시고 지적하셨습니다.

경제균형을 이룰려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소유를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옳은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제원리보다 뛰어난 것은

예수님의 가장 이상적인 경제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영생할 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오늘날 경제체제는 큰 수익을 얻는 자들의 특징은 정을 두지 않습니다.

큰 임금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을 인정하기 보다

큰 수익으로 저 임금자들에 적은 임금을 주고

지배하려는 경제체제를 유지할려고 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정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시스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곧 짐승의 표가 자연스럽게 받을 수 밖에

없는 법으로 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늘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경제 시스템대로 움직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큰 부자가 천국 들어 가기가 힘든 것은

재물을 가지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큰 재물을 바탕으로 영생을 얻을려고 하지만

부자청년이 원하는 것은 뉴월드오더로 가는 큰 재물을 가지고

저임금자들을 지배하는 시스템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큰 부자 젊은 기업가는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경제원리에 순응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가 원하는 경제시스템이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것을 거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보시는 부자청년의 모습에는

지옥으로 떨어질 괴로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소유를 붙들고 있는 것은 가진 소유로

얼마동안 누릴 수 있으나 결국은 그 소유때문에

심히 괴로운 것입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누가복음18:23)"

 

2.부자 세리장이 삭개오의 즐거움

 

삭개오 이미지 모음

 

1>부자 세리장이 삭개오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자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의 지배아래 로마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자기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자가 되었으나 맘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쁜 놈이라고 욕을 들어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에게 세를 바침으로 생활이 나아지지 않은데

같은 민족이면서 로마에게 빼앗기는 것을 가지고

부를 축적하는 세무서장 삭개오를 좋아할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삭개오라고 하면 일단 나쁜 이미지가 되어

이를 갈면서 매국노 취급을 하는데 삭개오의 마음도 편할리가 없습니다.

 

큰 부자 청년은 겉으로 깨끗하게 보여 그 속에 탐욕을 숨길 수

있어 큰 부자 청년에게 이를 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고 비리가 있는 부자로 소문난 자였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이지만 자기에게 욕하는 자들 때문에 부담감을

느껴 항상 마음에 무거운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삭개오는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함

 

큰 부자 청년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가 예수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소유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내세에 대한 영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목적은 부자라는 소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중에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 갔습니다.

예수를 보고자 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관심을 가집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그 곳에 이르러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19:5)"

 

사람이 사는 것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내 집에 무엇이 있습니까?

많은 소유로 가득 들어가 있습니까?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죄악으로 벌어들인 재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를 보고자 하는 자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을 예수께 소개한 적이 없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하여 모셔들렸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즐거움으로 삭개오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큰 부자 청년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눅18:22)"

말씀하신 것 처럼 삭개오에게 말씀하지 않아도

삭개오는 변화된 위대한 선포를 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사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19:8)"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무릇 사람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자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변화될 수 있는 자가

삭개오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은 자기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이 땅에 부자로 있는 것보다

하늘의 보화를 가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소유의 절반을 내놓아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는데

절반 남은 재산도 그동안 토색한 일이 많아 사 배로 갚으면

실상 삭개오의 소유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늘의 보화를 소유하는데 즐거울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구원을 이른 것을

보셨습니다.

삭개오가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큰 부자 청년은 가진 것을 가지고 버리지 못하는 탐욕으로

영생을 얻을려고 하였으나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였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13번째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탐욕이라는 우상 때문에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삭개오는 누구나 다 아는 로마의 앞잡이로 부를 축적하였으나

자신의 죄책감과 사람들의 시선으로 괴로움에 있다가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예수께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변화된 사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3:20)"

 

오늘날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완벽한 것을 지키었노라고

큰 부자 청년처럼 자랑하겠습니까?

 

내가 모든 계명을 지켜도 안보이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우상의 탐욕으로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그 탐욕의 괴로움 때문에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예수께서 우러러 보시고

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변화된 모습으로

내 소망이 이 땅에 있지 않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바라는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글쓴이: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perterkim@daum.net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감동예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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