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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오해가 화를 부른다(막12:1-12)

샤론의 수선화 2021. 10. 29. 23:39

 

https://youtu.be/rGveVLHlwns

오해가 화를 부른다(막12:1-12)

권호만barnabak

포도원 농부들의 오해
마가복음 12:1-12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오해’라는 희곡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딴 들판 한 가운데서 여인숙을 경영하는 어머니와 딸이 있었습니다.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찾는 나그네들 외에는 별로 손님이 없는 여인숙이었습니다.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욕심이 차올랐습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벌자는 욕심에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여행객에게 마취약을 먹이고 주머니를 털고 시체는 강물에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 가출하여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타지에서 성공한 아들이 이제 많은 돈을 갖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하여 그날 밤은 투숙객으로 가장하여 잠을 잡니다.
이것을 모르고 어머니와 딸은 그날 밤 또 한 번의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마취약을 먹이고 잠들어 있는 투숙객을 죽이고 강물에 시체를 버립니다.
그 후 가방을 뒤지던 어머니는 자기가 죽인 투숙객이 바로 사랑하는 아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돈에 눈이 멀었던 어머니가 죽였다는 것이 ‘오해’입니다.
오해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엄청난 오해를 했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포도원을 임대받아 농사를 짓던 농부들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농사를 지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에 그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임대해주고 타국에 갑니다.
율법에 보면 과일나무를 심으면 3년 동안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년째 열매는 첫 수확으로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드리게 되어 있고 5년이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19:23-25)
포도원 주인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5년째가 되어서 약속했던 세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농부들이 종을 잡아 심하게 때리고 거저 보낸 것입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농부들의 행태는 너무나 불쾌했지만 주인은 참고 다른 종들을 계속 보냅니다.
그러나 농부들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를 바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종들을 때릴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심지어 종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고민을 하던 주인은 마지막 결심을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 그들이 존대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결과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아들을 죽이면 그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농부들이 아들을 무참하게 죽여 버린 것입니다.
결국 주인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라서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주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비유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농부들은 주인에 대하여 큰 오해를 하였습니다.
큰 오해가 자기들의 신세를 망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농부들이 왜 이랬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임대를 해서 농사를 지었으면 당연히 세를 주어야 하는데 왜 그 마땅한 세를 주지 않았을까?
세를 주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왜 종들을 삼하게 때렸을까?
왜 죄 없는 종들을 죽이기까지 했을까?
더군다나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농부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오해를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저 추측만 할 뿐입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농부들 못지않게 여러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 알지 못했고 아니면 알면서도 오해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오해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해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농부들의 오해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는, 포도원이 내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때가 되매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했던 것은 이미 약속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포도원을 만들어서 세를 준 주인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이유가 나오지 않았기에 추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포도원이 주인의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없어지고
자기들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먼 나라에 갔기 때문에 오래 동안 포도원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맺기 까지 4년 동안 포도원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 포도원 주인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까 포도원이 주인의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약해졌지 않나 사료되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가 되었던 포도원은 농부들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의 세를 달라고 할 권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을 경영해서 얻은 수확에서 일정부분 주인에게 세를 바쳐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를 하는 것 중에 참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이것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내가 만든 자연만물을 잘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순간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고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청지기는 마땅히 주인에게 세를 바치고 세를 바치므로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하여 많은 예물을 주님께 드리고 난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16절)
다윗은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에서 받은 주의 것으로 주님께 드렸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분들이 십일조를 내시고 계십니다만 십일조에 대하여 우리가 오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시면서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십분의 구는 내 것이라는 생각이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분의 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십분의 구는 우리가 사용하고 십분의 일은 나에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모습을 보이지 않자 포도원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인의 것을 인정하는 세를 바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세를 바치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포도원 주인하고 우리가 농사짓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오해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를 주고 떠난 후에 주인이 한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는 농부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농부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열심히 농사를 져서 수확한 것인데 그동안 주인이 한 일이 무엇인가?
주인은 한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들의 수고로 이루어졌는데 무슨 세를 바친다는 말인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빠지고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모든 일이 잘 되었다는 인간의 교만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크게 이긴 사건이 사무엘상 15장에 기록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사울이 아말렉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고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사로잡습니다.
엄청난 승리를 거둔 것인데, 승리를 거두자 사울이 했던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좋은 것은 살려두고 나쁜 것만 진멸합니다.
두 번째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거둘 수 있는 승리였는데, 사울은 그 승리가 자기에게 있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3:6)
그러면서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씀합니다.(7절)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수고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10)


오늘 우리들 마음속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여 모든 것이 자기의 수고의 덕분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 있는가? 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발달된 과학기술덕분이 아니가?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런 오해를 물리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더욱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된다는 오해입니다.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은 사실 주인을 대신하여 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은 주인의 말이었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주인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을 대신하여 간, 종들이 받은 모습은 너무나 화가 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인을 모독하는 모습이었고 주인을 멸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소출 얼마를 받는 것은 주인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에게 이런 멸시와 모독을 당한다는 것이 더욱 화가 난 것입니다.
화가 났지만 참고 인내하면서 주인은 마지막으로 종들은 무시했지만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고 기대하면서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우리의 것이 되겠다고 오해하여 주인의 아들을 죽입니다.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하는 주인의 기대는 농부들의 오해로 인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주인이 아들을 보내면서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고 기대를 한 것은 그러면 지금까지 너희들의 잘못을 다 용서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된 말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아들을 보내기 전에 벌써 그들을 진멸하였을 것입니다.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면 다 용서하겠다는 맘을 가졌기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주인의 아들도 이런 아버지의 뜻을 전달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고 아들을 죽임으로 화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사랑의 아버지시고 인내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다시 자녀로 삼으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담아서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내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라 그러면 너희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겠다.
너희들을 다시 사랑하고 구원하고 축복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해를 하여 아들을 죽이게 됩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마음으로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12절)
유대인들처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선행과 내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오해를 종종 합니다.
오늘이 종교개혁주일입니다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면죄부를 통하여 고행을 통하여 선한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오해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고 화를 만들고 맙니다.
아들을 영접하면 다 용서하고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아들을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농부들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해서 화를 자초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들도 이런 오해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못할 때가 종종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오해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잘 이해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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