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의 집을 뒤따라 무단 침입하려했던 남성은 '체포'된 것일까 '자수'한 것일까. 서울 관악경찰서는 29일 오전 7시15분쯤 서울 신림동 자택에 있던 A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이 밝힌 체포상황으로만 보더라도 A씨는 경찰이 자신의 주거지 근처까지 탐문수사를 하는 것을 인지한 뒤엔 자수의사를 알렸다. 경찰이 A씨 주거지를 찾아가 긴급체포했지만 법적으로 이 상황을 '체포'로 볼지 '자수'로 봐야하는 지는 의미가 있다.
경찰이 신청할 예정인 구속영장의 발부 여부나 기소이후 재판의 형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형법 제52조엔 "죄를 범한 후 수사책임이 있는 관서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형사소송법엔 '자수'에 대해 "서면 또는 구술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해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범' 영상 속 30대 남성을 긴급체포 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9일 오전 7시15분쯤 '강간미수 동영상' 속 남성 A씨(30)를 주거침입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의 범행은 지난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신림동 강간범 영상 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폐쇄회로 영상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유튜브 영상 캡처) 2019.5.29/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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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A씨가 수사망이 좁혀 오는 것을 알게 된 후라도 경찰관에게 자수의사를 구두로 밝혔다면 기본적으로 '자수'로 인정될 수 있다.
김운용 변호사(다솔법률사무소)는 "범행시엔 바로 도망갔지만 수사가 진행되자 자수의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범행사실을 인정했다면 긴급체포는 과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A씨 사례 외에도 유사한 사례들이 여럿 있다. 2010년엔 부산지역 조직폭력집단 칠성파 두목으로 알려진 이강환씨의 체포를 두고 '자수'여부가 문제됐다. 당시 이씨 측은 경찰서에 자수의사를 밝히고 가는 중에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2015년 서울 조계사에 은신하다 경찰 진입이 임박하자 자진퇴거해 조계사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에 의해 체포됐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자수냐 체포냐를 두고 한 위원장과 사법기관이 대립했다.
최근 '자수가 거절된 것'으로 보도된 국제PJ파 부두목 조모(60)씨 사례도 법조계에선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다. 형사법적으로 '자수'가 거절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란 지적이다. 조씨가 '광주에서 조사를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며 자수의사를 밝혔지만 경찰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로 보고 거절했다고 보도됐지만 원칙적으로 '자수 거절'이란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자수의사를 밝히면서 조건을 걸 수도 있고 결렬되면 자수가 이뤄지지 않을 순 있지만 그런 걸 '자수 거절'이라고 표현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피의자의 '자수'를 거절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자수 거절이 아니라 '자수 요구조건 거절'이라고 해야 맞다"며 경찰이 자수여부를 결정하는 주체처럼 보도된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A씨에 대해선 '주거침입'이냐 '강간미수'냐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오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신림동 강간미수범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
반면 경찰과 법률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상황만으론 '강간미수'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강간미수가 적용되려면 최소한 '강간의사'를 갖고 실행에 옮긴 행동이 폭행이나 협박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건물 CCTV에 찍힌 A씨의 행동은 여성의 뒤를 따라가 현관 문을 열려는 동작과 그 앞에서 잠시 배회한 것에 그친다. 그것 만으론 A씨가 강간의사로 무단 침입하려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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