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에 우리 카페 회원이신 어느 목사님께서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지옥에 간다라고까지
하였었습니다.이에 대하여 적지 않은 회원님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사도신경에 대하여 바른 시각을 가질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 읽어보시지 못하신님들께서는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ː공지사항ː(회원필독)
오늘날 대체로 기독교인들은 예배 드릴 때마다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예수님의 12제자였던 12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내려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치 않습니다. 사도신경 곧 사도들의 신조(the Apostles, Creed)라는 것은 그 이름과는 달리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준 신조도 아니고, 사도들에 의하여 고백되어지고 쓰여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권위나 정통성에 있어서 십계명이나 주의 기도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도신경이 “일찍이 만들어진 것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최선의 대중적인 요약 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교리의 기준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구절이 여러 있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여진 것은 390년의 암브로우스와 404년 루피누스가 작성한 문서에서 부터입니다.
이들이 작성한 문서에서 기독교의 신조를 12개항목으로 소개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기 전에 신앙의 요체를 한 항목씩 고백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 붙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12사도가 모여서 우리가 믿고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한 사도가 한 가지씩 말해서 모아 논 것이 바로 이 12신조라고 주장하면서 이 신조에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의 저자(著者)들이 작성한 12신조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이지 그것이 실상이 아닌 것입니다 . 아시는 대로 사도 야고보는 일찍 순교해서 거기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그 외 다른 사도들도 대체로 일찍부터 여려 곳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12 사도가 한 자리에 모여서 신조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위의 저자들이 작성한 12신조가 사도들이 고백한 최초의 신경이라는 거짓된 기원에 대한 설명은 그 이전 325년에 이미 이와 거의 같은 니케아 신조가 발표되었고 그 이전에도 이미 이와 비슷한 다양한 종류의 신조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B.C. 2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칠십명의 유대인들이 번역했다고 주장되는 칠십인역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A.D 240년경에 오리겐이 변개시켜 번역한 헬라어 구약성경이 소위 '칠십인역' 이었듯이, 사도신경 역시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니라 7세기 후대의 로마카톨릭교가 문구의 첨가를 반복하여 만든 "로마카톨릭교회의 신조"인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발전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세례식 때 문답형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된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삼천명도 받고, 오천명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만 하면 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핍박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세례 받은 사람들 가운데 배교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제는 함부로 세례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세례를 줄 때 문답형으로 고백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당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느뇨?"하는 물음에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 문답형 고백을 거쳐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문답형 신앙고백이 자기 신앙고백형 신경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세례를 집례하는 자가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하고 물으면, 세례받는 자가 "예" 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했습니다. 그래서 각자 표준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외우도록 하고, 그 내용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교회 역사가 계속 이어지면서, 이단의 공격으로부터도 교회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과 싸우는 과정에서도 이 신앙고백의 내용이 점차 보완되고 추가되고 개정되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부합되게 정형화 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위의 과정들을 통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사도신경으로 발전되고 정리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8세기 초의 피르미니우스에 의해서입니다.
8세기에 피르미니우스에 의해 정리된 사도신경이 중세초기에 서방의 모든 교회들의 세례의식때 수례자 문답용으로 사용하였으며 9세기에 이르러서는 초신자들의 교육내용으로도 보편화되었습니다.결국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이 신경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신조가 되어 모든 공적인 예배(미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고백하는 신조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어진 것이 오늘날의 사도신경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엄밀히 따져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의 신앙고백서인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탄생한 이후에 있어 개신교회의 예배에서의 신앙고백도 변화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도신경에서 사도들의 신앙이라고 볼수 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수정하여 만든 개신교 사도신경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사도신경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세부분입니다 그 첫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저승에 가시었다가”로 번역) 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문구는 8세기 이전의 신조에는 없던 표현이 첨가된 것입니다. 즉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고 지옥(hell)에 내려가셨다가”(hedescended into hell) 라는 삽입구가 첨가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구의 첨가는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희한한 이야기가 됩니다.
이 문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치 않음으로써 이단이 된 아리우스파의 신조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359년), 그것은 예수님도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도 죽어서 일단 지옥으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점차로 퍼져 나가다가 결국 8세기에 개정된 사도신경에 정식으로 삽입된 것입니다.(Ibid., 21.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95.)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으로 내려 가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지옥에 가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에 어긋나는 표현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연옥교리에 부합되기 때문에 첨가 되고 계승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 지옥을 연옥으로 보고, 예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시던 삼일 동안에 그의 영혼이 연옥의 한 부분인 림보(Lim bus)에 내려가 구약시대의 의인의 영혼들을 구속(救贖)했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London: The Banner of Truth 1966, 687)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는 이 성경에 없는 부분을 빼 버리고 8세기 이전의 사도신경으로 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로 수정한 것입니다.
둘째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은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믿사오며“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영어의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공교회)를 번역한 것입니다. Catholic이란 뜻은 보편적 혹은 세계적인, 우주적인 이라는 뜻으로서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될 경우 별 문제가 없습니다. 현재의 개신교도 catholic church(보편적인 교회)라고 해서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세계의 모든 교회 공동체를 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믿는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이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이 쓰여진 배경을 살펴보면 그때에는 교회가 분열이 안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이 당연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후 동서교회로 갈라지고 또한 서방교회가 다시 로마교회와 개신교로 갈라진 형편에서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이 가톨릭교회라는 표현을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땅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고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주류, 이단으로 정죄하는 무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보편적인 교회(Catholic Church)” 라는 단어가 분열된 로마가톨릭교회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잘못 쓰여지고 있는 마당에 있어서 이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곧 로마 가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잘못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 시켜서 개신교에서는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로 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도 5세기의 [로마교회 구 신조]에는 그냥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Schaff, 16. 23. 28.) 그러나 8세기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가톨릭을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표현된 것입니다.(E E. Carims, Chirstianity Throughout the Crnturies(Grand Rapids: Zondervan Publ. House, 1981, 159.)
이제 말씀드린 대로 “카톨릭”(catholic) 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universal) 이란 뜻이어서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구태여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공언하고 나선 로마교회의 감독이 전 세계의 머리로서 땅위의 모든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교회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실제로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것”과 “거룩하고 보편적인 가톨릭교회를 믿는다”는 말의 뉘앙스(音調)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 서방 로마교회와 지상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던 동방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자신을 “거룩하고 정통적이며 세계적(카톨릭. catholic)인 사도직의 동방 교회”로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1014.) 부르고 있던 때라 서방의 로마교회가 이 “카톨릭” 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하자 자기 이름을 도적맞은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방교회는 로마교회의 권위주의적인 독선(獨善)을 드러낸 사도신경을 배척하고, 내용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동방교회의 영역에서 제정된 유서 깊은 니케아신조(the Niece Creed)를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고집하고 지금도 쓰고있는 것입니다.(Schaff, 16, 23, 28.) 아울러 역사적 뒷받침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도신경을 굳이 사도들의 직접적인 작품이라고 무리하게 주장하는 이유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Authur Devive, Creed Explained(New York: Benziger Brothers, 1892, 43~48.)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회가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이 “거룩한 카톨릭 교회”의 표현을 8세기 전의 사도신경으로 환원시켜 “거룩한 공회를 믿으며”라고 하므로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사도신경에서 다른 점은 “성도들의 교통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 문구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 라고 수정했습니다. 그 수정이유는 가톨릭에서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신조는 죽은 성인들과 교통하며 그들의 공적을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 있어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보속과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자들과의 교통과 기도를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있는 성도들의 교통과 협력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모든 지상의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만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사도신경의 성도들의 교통은 세상의 믿는 성도들만의 교통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죽은 성도들과의 교통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주교인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의미의 '성자' 또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들(고전 1:2)을 가리키지만, 로마 카톨릭교의 사도신경에서의 '성인'은 죽은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에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 되는 복자, 성자 즉 죽은 성인들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산 성도들과 죽은 성도들과의 교통을 신약성경은 전혀 말씀하지 않음으로서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구약성경에서 책망하고 있는 강신술을 권장하는 것과 같은 미신에 속한 것입니다.[신 18:11. 사 8:19-20] 이러한 신앙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고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의 이교의 신앙이 기독교에 접합된 것이며 이러한 신앙에 의하여 1546년의 트리엔트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실제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크리스마스에 싼타크로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허구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이생과 저생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분리해서 운영하시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모든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구절이 삽입된 것도 8세기 이후입니다. 그 전의 신경에는 그런 구절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인들과의 통공을 믿는"다는 구절을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구절로 수정한 것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본래 신앙으로의 환원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천주교의 사도신경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사도들의 신경이 될수 없으며 다만 로마가톨릭교의 신경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개신교의 수정된 사도신경은 성경의 내용에 위배됨이 없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에 가장 부합된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진리의파수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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